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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Jun 30. 2021

아낌없이 주지 않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글, 그림: 쉘 실버스타인

"자꾸 그렇게 생선 머리만 먹으면, 얘들은 정말 당신이 생선 머리를 좋아하는 줄 알아요."


내가 아이였던 어느 날, 생선구이를 반찬으로 엄마 아빠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생선 머리를 드시던 아빠를 보며 엄마가 한 말이었다.


'엥? 아빠가 생선 머리를 좋아한 게 아니었어?'


철이 없게도 그때의 나는 아빠가 생선 머리를 정말 좋아서 드시는 줄 알았다. 생선 몸통 부분을 아빠 밥 위에 올려드려도 '나 괜찮은데?' 하고 거절하시며 되려 생선 머리는 맛있게 드시니 정말 좋아서 드시는 줄 알았다. 엄마의 말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난 철없는 모습을 좀 더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인에게 그림책 몇 권을 물려받았는데 그 더미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었다. 어렸을 때 보던 그림책이라 반가워하며 제일 먼저 읽었는데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렸을 때 함께 놀던 소년과 나무. 어른이 된 소년에게 나무는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어준다. 돈을 줄 수 있냐 물으니 사과를 주고, 집을 줄 수 있냐 물으니 가지를 내어 주고, 떠나고 싶어 배가 필요하다고 하니 몸통을 내어 준 나무. 마음에서 괜히 화가 났다.


'그렇게까지 줘야 했어?'

'남는 것도 없으면서.’


‘나무가 우리에게 이렇게 고맙구나.’라 느꼈던 예전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어른이 되고, 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보니 그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모습에서 나의 부모님이,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 얼굴에 선크림이 묻을까 맨얼굴로 다니다 생긴 기미, 평균보다 체격이 큰 아이를 안아 재우다 얻은 디스크 직전의 허리와 발뒤꿈치 통증, 아이들 밥은 챙기지만 내 밥은 대충 해결하다 생긴 속 쓰림 등이 아이에게 아낌없이 내어 준 내 몸 같았다.


먹을 것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딸기값이 유독 비쌌던 시기가 있었다. 딸기를 좋아하는 두 아이들을 생각하며 과감히 샀던 날. 비싼 딸기는 맛이 다르려나 싶어 하나 먹어보려다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마음으로 딸기를 먹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엄마 이기게 당연한 희생이라 여기며 했던 크고 작은 행동들이 사과를 주고, 가지를 내어주고, 몸통을 내어준 나무 같다 라는 생각했다. 나무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며 불만을 터뜨린 마음을 나에게도 던져본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무에게 아낌없이 받으며 염치없어 보였던 소년을 떠올리며 훗날 나의 기미, 아픈 허리와 발, 그리고 속 쓰림을 알게 될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그렇게 희생해줘서 고맙다 하려나, 왜 그렇게까지 했냐며 속상해하려나.

친정아빠도 함께 생선구이를 맛있게 드시기를 원했던 마음처럼 아이들도 나에게 같은 마음일 거라 믿었다. 그 마음을 담아 다짐했다.


훗날, 아이들이 나를 보며 미안해하지 않게,

내가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지지 않게.


아이들이 나를 보며 속상해하지 않게,

나를 보며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 같다 생각하지 않게,

나를 적당히 챙기고, 내 몫도 적당히 챙기기로.


과일 홀릭인 두 아이들을 위해 냉장고에 과일이 채워진 날, 몇 가지 과일을 깨끗이 씻어 두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다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찬장에서 적당한 접시를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고는 아이들 그릇에 있던 과일을 조금 덜어내어 내 몫을 따로 만들었다.


'이건, 내 것.'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온 가족이 생선구이집에 밥을 먹으러 간 날이 있었다. 아이들을 챙기는 남편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에게 생선가시를 발라주면서 본인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 남편에게 예전에 엄마가 아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오빠, 아이들에게 다 주지 말고 오빠도 먹어. 안 그러면 오빠는 생선 안 먹는 줄 알아."


그날, 집으로 돌아와 다 같이 과일을 먹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들 먹고 난 뒤에 남는 것을 나와 남편이 해결했을 텐데 그날은 접시를 4개 꺼내어 각자의 과일을 나누어 담았다. 아낌없이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떠올리며.


"그거 알아? 엄마, 아빠도 과일 좋아한다. 아주 잘 먹어."


으름장을 놓듯 아이들에게 말하고 나니 조금 머쓱해졌다.


'너무 냉정했나?'


엄마가 왜 저런 말을 하나 싶은 아이들의 표정이 보였다. 머쓱해진 마음에 내 몫의 그릇에서 몇 개의 과일들을 아이들 그릇에 덜어주며 말했다.


"원래 이건 엄마 과일이라 엄마만 먹는 건데, 엄마가 너희들을 진짜 사랑하니까 조금은 나누어줄게. 하지만 나머지는 엄마 몫, 알지?"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자신들을 진짜 사랑한다는 말에 웃고, 사랑하니 나눠준다는 말에 본인도 엄마, 아빠를 사랑하니 나눠준다며 나와 남편에게 과일을 건넸다. 그렇게 과일이 식탁 위에서 오고 갔다.


딱 그 정도.

아낌없이 주지 않아 내 몫과 아이들 몫이 함께 있는, 그래서 적당하게 딱 좋은 후식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히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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