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아이가 매번 우유를 따르며 쏟는다. 글씨를 쓸 때면 ‘ㄹ’ 방향이 헷갈리는지 ‘ㄹ’을 쓸 때마다 헷갈려하고, 옷에 걸어 둔 옷걸이에는 늘 옷이 어설프게 걸려있다. 이런 반복되는 서툼이 답답해 한 마디 해 보려다 나에게 그런 타박을 할 자격이 있는 지 나의 서툼을 돌아본다.
뒷심이 허술해 늘 주변이 어수선하다. 청소 한번 하겠다고 야심 차게 시작하지만 청소에 힘을 쏟아낸 탓인지 정리까지 힘이 닿지 않는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나의 서툰 정리 실력이 더욱 두드러진다. 다가오는 계절을 위해 두툼한 옷들을 꺼내고 철 지난 옷가지들은 단정하게 개어서, 차곡차곡 넣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한참이다. 손이 느릿 탓인지, 재주가 없는 건지, 귀찮은 건지, 쌓여있는 옷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요리에서도 서툼이 빠지지 않는다. 식사 한 번 준비하는데 왜 그렇게 어수선 한지, 식사 한 번에 왜 그렇게 치울게 많은지. 요리는 원래 그런 거라 생각하려다가도 친정엄마나 어머님께서 음식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잘하고 싶은데, 능숙하게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괜히 주눅이 든다. 그 주눅 든 마음이 싫어 잠시 모르는 척 하기도 하지만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서툰 내 모습에 한 소리 하기 전에 사전 방어라도 하듯 내가 나를 타박해본다. ‘난 진짜 왜 그럴까?’ 생각을 내뱉는 순간 작아지는 기분에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나를 괜찮다해줘도 모자랄 판에 타박이라니. 타박한 모습에 또다시 타박을 한다.
<강물처럼 말해요>
그림책 속에 말이 서툰 아이가 나온다.
말이 서툰 탓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일이 익숙한 아이다. 원하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답답한 아이의 마음이 색과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탁한 색, 흐릿하고 표정 없는 이미지, 때로는 등을 돌린 채 쉽게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으로 말이다. 덕분에 아이의 위축된 마음, 속상한 마음, 작아지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말이 서툰 아이의 아침은 무겁고 조용하다.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제대로 발표를 할 수 없어 진땀이 나는 순간은 색의 번짐과 붓을 빙글 돌려 뭉개 그린 이미지로 알 수 있다.
이런 아이를 위로하는 아빠의 표정도 보이지 않으니 아이만큼 답답한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신해 줄 수 없어서, 대신해 줄 일이 아니라서 더욱 답답한 부모의 마음.
아빠가 데려다준 곳에서는 아이의 마음이 좀 편해졌나 보다. 그곳(강가)의 이미지가 선명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빠의 묵직한 말 한마디에 눈을 감는 아이가 보인다. 그리고 양쪽으로 펼쳐지는 그림책.
아이가 눈을 감고 상상하는 이미지가 펼쳐진 그림책 속에 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아이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강물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몸에 스치는 강물의 움직임을 상상하는 아이.
소용돌이치고,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부딪치는 움직임. 그런 강물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서툼을 인정한다.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구나. 강물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들도 입안에서 소용돌이치고, 물거품이 생기고, 굽이치고 부딪히고 있는 거구나. 그것이 내가 말하는 방법이구나.’
나의 서툼을 내가 인정해 주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남들과 다르지만, 서툰 나를 주변에서는 이상하다 하겠지만,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부족한 내가 싫어 숨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서툰 모습도 나의 모습이라는 ‘인정’.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비로소 앞으로 한 발 내 디딜 용기가 만들어진다. 그 용기를 품고 하나가 서툴다고 나의 전부가 서툰 것도 아니라며 뻔뻔한 마음도 내세워본다.
‘내가 정리 뒷심이 좀 부족하지. 그래도 시작하는 게 어디야. 요리가 서툴긴 하지. 그래도 건강하게 먹으려고 애쓰잖아.’
나의 서툰 모습을 품은 마음으로 아이의 서툰 모습도 봐주기로 했다. 우유 좀 쏟으면 어때서, ‘ㄹ’ 따위 거꾸로 좀 쓰면 어때서, 옷걸이에 옷이 느슨하면 어때서. 아이의 서툰 부분에 마음이 불편해질 시간에 아이가 가진 것에 집중해 본다.
'우유를 잘 먹고, 고마움을 글로 쓸 줄 알고, 옷걸이에 옷을 걸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
오랜만에 본 영화, 아니 영화 같은 그림책 덕분에 빡빡했던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