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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 방랑자 Oct 26. 2019

고양이는 아픈 것을 너무 잘 숨긴다는 것을 몰랐다.

가족이 아프다. 많이 아프다. 


얼떨결에 맞이한 가족 치고는 고양이와 나는 생각보다 꽤 잘 맞았다.


고양이는 원래 자기 좋을 때만 스킨십을 허락하는 동물이고

나는 나대로 싫다고 하면 굳이 만지는 성격은 아니어서 애초부터 우리는 무난한 궁합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걸 감안하고서라도 그 동물과 나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 편히 나와 고양이가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막상 고양이의 보호자로서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주위에 선언 아닌 선언을 하고 난 후의 삶은 그 전의 삶과는 비슷해 보였지만 확실히 달라져있었다.

일단은 예전에는 알 수 없었고 느껴보지 못했던 타인의 날 선 분위기와, 가까운 사람들의 의외의 반응들이 그러했다.


세상에 존재만으로도 미움받는 존재라니. 

이렇게 억울할 데가 있나.


고양이가 싫다고 말하고 가버린 엄마의 날 선 반응에 나는 마음이 많이 베었지만, 그런 나에게 천진하게 다가와 놀아달라며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아 애옹애옹 애교섞인 울음소리를 내며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면 괜히 처량 맞아 보여서 더 정이 갔는지 모르겠다.


서로의 존재가 아직은 어색했지만 점점 우리는 가까이 앉게 되었다.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해서 전능하신 누군가가 나에게 벌을 주고 싶으셨나 보다.

아니면 예쁘고 건강하고 성격 좋은 고양이를 순전히 운으로 만날 수 있게 될 확률이 애초에 너무 낮았던지.


고양이는 3일을 잘 놀다가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병원을 가서 방사선 촬영을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어린 고양이한테는 치명적이라는 파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다.


고양이는 아픈 것을 너무나 잘 숨긴다. 녀석은 이렇게 자고 있을 때도 많이 아팠었나 보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이면서 다시 3일이 지났다.

고양이는 다시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먹은 것도 토하고, 마신 물도 토하고 

작은 몸으로 게워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토했다.


처음 병원을 가서 들은 얘기가 생각이 나서 두 번째 구토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고작 일주일을 같이 지냈을 뿐인데, 언제 이렇게 정이 들었나.

하지만 그는 이미 이 집에서 내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너무 속상해서 나는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그때는 파보에 감염된 줄은 모르고 파보에 걸렸다면 어떡하지, 죽을 확률이 너무나 높다는데,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어떡하지, 내 작은 고양이와 돈 따위의 사이에서 내가 고민하면 어떡하지 따위가 너무 무서웠다.

소리 내서 울고 있는 내가 무서웠는지 고양이는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서 숨고는 울고 있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와 함께 했던 거의 모든 시간이 아픈 시간이었을 텐데.. 그 와중에 내 착한 고양이는 나와 눈 맞추고 눈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고 해 줬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고양이를 데려왔더라.

일주일 전의 내가 어땠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 평생에 처음으로 나 말고 다른 존재를 책임지기로 마음먹고 처음 곁을 내준 생명에게 이러시다니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내 옆에 아무도 남겨두지 않을 작정이신가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해서 괘씸하셨나요? 


괘씸하다 느끼셨을 수도 있다.

나는 나를 두고 떠나버렸던 그 모든 인연들에 진절머리가 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는 절대 내 옆을 떠나가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린 것이 너무나 어리 석어 보였을 수도 있다.

너만 떠나가지 않으면 내가 먼저 떠날 일은 없을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만의 가족을 만들고 싶었던 내 욕심이 너무 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내 가족이 있었고, 일을 하러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 작은 고양이는 너무나 나밖에 없었다.


그런 불공평함이 못마땅해서 나에게서 빨리 데려가버리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네가 아픈데.


나는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아픈 내 고양이는 그저 내 옆에 기대고 앉아있었다.


아픈 애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착할까.

먹은 거 없이 토하고 기운이 없어도 작은 고양이는 내 손길이 닿으면 갸릉갸릉거리며 잠시 눈을 감고 내게 기대앉았다.

자기 때문에 우는지도 모르고 울고 있는 내 곁에 앉아 기대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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