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설계'라는 이름의 상술
사방이 막힌 듯한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10년 뒤 1억 만들기’, ‘30년 뒤 은퇴 자금 마련’ 같은 장기 계획에 본능적으로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 뿌리에는 우리가 ‘재무관리’라고 부르는 것의 근본적인 왜곡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먼저 ‘재무관리’라는 용어의 이중성을 파헤쳐야 합니다. 기업도 재무관리를 합니다. 기업의 재무 담당자(CFO)는 ‘어떻게 하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까?’, ‘어떻게 돈을 써서 회사를 성장시킬까?’를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그들에게 재무관리는 명백히 ‘성장’과 ‘발전’을 위한 공격적인 전략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체가 ‘개인’으로 바뀌는 순간, 재무관리의 정의는 정반대가 됩니다. 서점, 은행 창구, 재무설계 상담실에서 우리가 듣는 첫 번째 조언은 언제나 ‘절약’과 ‘저축’입니다. “커피값을 아끼세요”, “지금의 소비를 희생하세요”, “종잣돈이 모일 때까지 참으세요.” 왜 똑같은 용어를 쓰는데 기업에게는 ‘투자를 통한 성장’을 이야기하고, 개인에게는 ‘현재의 희생’을 강요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에게 재무설계를 가르쳐 온 주체는 ‘선생님’이 아니라 ‘상품 판매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의 수익 모델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들의 수입은 고객의 자산이 늘어났을 때가 아니라,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고 유지할 때 발생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당신의 ‘인생 가치 극대화’가 아니라 그들의 ‘판매 실적 극대화’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제시하는 계획이란, 결국 당신의 불안을 자극해 그들의 상품(적금, 펀드, 연금)을 사도록 유도하는 정교한 상술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라’고 가르쳤고, 우리는 그것이 정답인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이 왜곡된 프레임이 2030 세대에게 제시하는 가장 흔한 정답지가 바로 “일단 1억만 모아라”입니다.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1억을 모으면, 그 돈으로 진짜 투자를 할 수 있고 부동산도 살 수 있다”는 말은 달콤합니다. 물론 이 전략이 통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산 가치가 폭등하거나 금리가 높았던 특정 시기, 특정 조건에서만 유효했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나온 2030은 눈앞에 보이는 과거의 성공 사례만 보고 그것이 영원한 진리일 것이라는 ‘확증 편향’에 빠집니다.
하지만 1억을 모으기 위해 청춘을 갈아 넣는 지난한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막상 그 돈이 모였을 때의 ‘세상’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합니까? 우리의 장기 계획은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일 것’이라는 안일한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년의 현실을 보십시오. 3,000을 넘나들던 코스피는 순식간에 2,000으로 추락했고, 전 세계를 멈춘 코로나19가 있었으며, 그전에는 서브프라임 사태와 IMF가 있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위기들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경제는 우상향하지 않느냐.'는 말은 결과론적인 위로일 뿐입니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직장을 잃고 가게 문을 닫아야 했던 개인에게 통계적 회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고작 3년 전의 '나'와도 사는 곳, 하는 일, 고민이 다른데, 어떻게 감히 30년 뒤를 위한 완벽한 정답지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불확실한 미래를 상수로 둔 고정된 계획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미래가 안정적이라 가정하더라도, 우리에겐 더 냉혹한 수학적 현실이 남아 있습니다. 흔히 “아껴서 부자 되자”고 말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절망적입니다.
우리의 소비는 소득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소득의 8%를 더 아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게 1년 12달을 꼬박 모아야 겨우 평소 생활비의 ‘한 달 치’가 마련됩니다. 10년을 그렇게 아껴야 겨우 10개월을 버팁니다. 이것이 과연 효율적인 전략입니까? 게다가 열심히 모은 돈의 이자가 붙는 속도보다, 물가가 오르고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면 어떻게 될까요? ‘복리의 마법’은 자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물가’에도 적용됩니다. 결국 당신의 구매력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질 칩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이 반문합니다. “그렇게 모은 종잣돈으로 투자를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돈이 모이면 투자가 쉬워질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1만 원으로 3% 수익을 내던 현실이, 1억 원을 가졌다고 갑자기 10%의 고수익을 내는 실력으로 둔갑하지 않습니다. 자본의 크기는 결과값(수익금)을 증폭시키는 ‘확성기’일 뿐, 당신의 본질적인 투자 역량(수익률)을 바꿔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본의 규모 자체가 수익률을 높여준다면, 세상은 아주 간단했을 것입니다. 누구나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대출을 받아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순간, 자산 증식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파멸의 속도’가 빨라질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냉혹한 수학적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빌리는 돈(대출)의 비용, 즉 ‘금리’는 어떻게 결정됩니까? 시장의 평균 수익률에 은행의 마진(+α)이 더해져 결정됩니다. 즉, 레버리지를 쓰는 순간 당신은 이미 시장 평균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야만 본전인 ‘불리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1,000만 원으로 30만 원(3%)을 버는 건 어렵지만, 1억 원을 빌려 30만 원(0.3%)을 버는 건 쉽지 않냐”며 레버리지의 유혹에 빠집니다. 이것은 대출 이자라는 거대한 ‘비용’을 은폐한 착각입니다. 5%의 이자를 내면서 0.3%의 수익을 목표로 하는 투자라면, 결국 이자를 갚고 수익을 남기려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더 위험하고 변동성이 큰 자산에 손을 대야 합니다.
게다가 레버리지는 하락장에서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내 돈 100%로 투자할 때 -10% 손실은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돈 10%에 대출 90%를 섞은 레버리지 투자라면, 고작 10%의 하락만으로도 내 원금(자본)은 전액 소멸합니다. 이것이 레버리지의 진짜 얼굴입니다.
결국 정상적인 자본주의 메커니즘 안에서, 평범한 월급쟁이가 단순히 ‘안 쓰고 모으는 행위(단순 축적)’나 ‘남의 돈을 끌어다 쓰는 행위(무리한 레버리지)’만으로 부의 추월차선에 오르는 길은 수학적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막연히 '우선 큰 돈 모으면 처음에는 힘들어도 점차 편해진다.'는 계획은 재무설계가 아니라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재무설계는 쓸모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재무설계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DMP(Default Money Plan)는 뜬구름 잡는 신종 이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제공인재무설계(CFP) 과정에서 다루는 가장 정통적인 표준(Standard)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교과서적인 재무설계의 본질은 ‘금융 상품 쇼핑’이 아닙니다. 개인의 생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입니다. 그 핵심은 ‘자산 증식’ 이전에 ‘자기 가치의 증대’에 있습니다.
저축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훌륭한 ‘보조 바퀴’일 뿐, 인생을 책임지는 ‘메인 엔진’이 될 수 없습니다. 메인 엔진은 언제나 당신의 ‘소득’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진짜 재무계획은 계좌 잔고를 늘리기 위해 오늘을 굶는 ‘축적’ 계획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여 ‘나의 가능성을 넓히고(성장)’, ‘오늘의 만족을 높이며(행복)’, 결과적으로 ‘나의 몸값을 높이는’ 효율적인 ‘지출’ 계획이어야 합니다.
돈을 더 많이 모으는 계획이 아니라, 한정된 돈을 잘 써서 더 행복해지는 계획. 이것이 3부에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DMP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숫자가 적힌 통장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나 자신’을 완성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