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잘 아는 사람'보다 '자기 위치를 아는 사람'이 강하다
[정보 중독의 함정]
매일 아침 경제 뉴스를 확인한다. "금리 인상 전망", "부동산 시장 예측", "증시 전망", "경기 침체 우려". 마치 이런 정보들을 알아야만 올바른 재정 관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A는 2년째 경제 뉴스와 투자 유튜브에 빠져 살고 있었다. 매일 최소 2시간씩 각종 전망 자료를 읽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비교 분석했다. 휴대폰에는 30개가 넘는 경제 관련 앱이 깔려 있었다.
"이번 달 금리가 또 오를 것 같은데, 예금으로 갈아탈까? 아니면 주식이 바닥이니까 지금 사야 할까?"
A는 매일 이런 고민에 시달렸다. 하지만 2년간의 치열한 정보 수집과 분석 결과는?
수익률: -8% 스트레스 지수: 최고치 실제 생활 만족도: 최저치
경제 뉴스는 불안을 팔고, 우리는 그 불안을 산다. A가 놓친 것은 간단했다. 경제 전망을 아무리 정확히 예측해도, 개인의 재정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전문가도 모르는 미래, 그리고 그 이유]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전문가들조차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2020년 서울 집값 전문가들의 예측: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매수세 사라질 것"
"공급 물량 증가로 가격 하락 불가피"
"9명 중 4명이 하락, 2명이 보합 전망"
실제 결과:
서울 집값 5.36% 상승
상승 예측한 전문가도 예상 상승률(1.1%, 3%, 8.4%) 실제와 큰 차이
하락/보합 전망한 전문가들 모두 예측 실패
2023~2024년 전국 집값 전문가들의 예측:
"전문가 74~80%, 공인중개사 79%가 추가 하락 전망"
"전국적으로 -3%~-1% 하락 예상"
"주택 경기 바닥 시점 2024년으로 예상"
실제 결과:
2023년 전국 주택 매매가격 4.6% 하락 (외환위기 이후 최대)
하지만 2024년 수도권은 상승 전환: 서울 2.0%, 경기 0.3%
전국적 하락 전망과 달리 지역별 격차 확대
2024년 전셋값 전문가들의 예측:
"매매시장 침체에 따라 전셋값도 약세 지속"
"공급 증가와 수요 감소로 전세 시장 부진"
실제로 일어난 일:
서울 아파트 전셋값 39주 연속 상승
경기도 7개월 연속 상승
공급 감소와 매매시장 위축이 오히려 전셋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
전문가들이 예측을 빗나가는 진짜 이유는 '무능력'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 때문이다.
2019~2024년 부동산 시장에서 반복된 패턴: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 금리, 공급량 등 거시 지표는 정확히 파악했다
하지만 지역별 수요 차이와 심리적 요인들이 결과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의 실제 영향:
정책 효과의 예상 외 결과: 강력한 규제가 오히려 공급 감소로 이어져 가격 상승 유발
지역별 격차 확대: 전국적 하락 전망에도 불구하고 수도권만 상승하는 이중구조
시장 참여자 행동 변화: 매매 어려움이 전세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예상 외 연쇄 반응
정부 정책 변화: 갑작스러운 규제 완화나 강화가 시장 흐름을 완전히 바꿈
글로벌 경제 변수: 미국 금리 정책, 중국 경제 상황 등이 국내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
특히 부동산 시장은 경제 지표보다 심리적 요인과 정책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문가들이 객관적 지표로는 하락을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공급 부족과 수요 집중이 예상과 정반대 결과를 만들어냈다.
B의 깨달음: "3년 동안 매주 증권가 리포트를 읽고, 경제 전망 세미나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더 헷갈리더라고요. A증권사는 상승을 예측하는데 B증권사는 하락을 예측하고... 나중에 깨달았는데, 그들도 다 똑똑한 사람들이에요. 단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날 뿐이죠."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투자 기회가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만약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면, 투자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만약 내년에 삼성전자 주가가 정확히 20% 오른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안다면? 모든 사람이 지금 당장 삼성전자를 사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주가는 지금 당장 20% 오를 것이고, 내년에는 더 이상 수익이 없을 것이다.
투자 수익은 '예측의 정확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측의 불일치'에서 나온다.
C의 경험: "2020년 초 부동산 전문가 9명 중 4명이 서울 집값 하락을 예측했을 때, 저도 그 전망을 믿고 매수를 미뤘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 집값이 5.36% 올랐죠. 전문가들도 몰랐던 것은 강력한 규제가 오히려 공급 부족을 만들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거라는 점이었어요. 정책 효과는 예상과 정반대로 나타났던 거죠."
예측이 투자의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예측 불가능성이 투자 기회를 만든다.
모든 사람이 비관적일 때 → 좋은 매수 기회
모든 사람이 낙관적일 때 → 위험 신호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날 때 → 새로운 기회와 위험 동시 발생
[예측은 하되, 겸손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측이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투자를 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예측을 해야 한다. 문제는 그 예측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자기 예측력을 신뢰할수록 손실의 크기는 커진다.
D의 경험: "2년 전 부동산 시장을 분석해서 '이 지역은 반드시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처음에 10% 떨어져도 '일시적 조정'이라고 생각했죠. 20% 떨어져도 '곧 반등할 것'이라고 버텼어요. 견딜 수 있는 손실 범위에서는 제 예측이 틀렸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계속 기다렸거든요."
견딜 수 있는 손실에서는 자기의 예측이 틀렸을 리 없다고 생각하여 기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30% 떨어졌을 때는 달랐어요. 이제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죠. 그때서야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어요. 결국 은행에서 대출 상환을 요구했을 때 손실을 확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손실까지 끌려갔을 때,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손실을 확정 짓는다.
이것이 과신의 함정이다. 우리는 예측을 해야 하지만, 그 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측을 하지만, 겸손해야 한다.
E의 접근법: "저도 예측을 합니다. 하지만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전제로 시작해요. 그래서 투자할 때 항상 손실 한계를 미리 정해놓죠. 10% 떨어지면 일부 매도, 20% 떨어지면 절반 매도, 이런 식으로요. 감정이 아니라 규칙으로 움직여요."
겸손을 위해서는 자기 위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은 얼마인가?
내 예측이 틀렸을 때 언제 인정할 것인가?
내 전체 자산에서 이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절한가?
이 투자가 실패해도 내 삶에 치명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예측에 매달리지 말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겸손한 태도로 예측에 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다음 섹션에서 다룰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는 이유다.
경제 뉴스는 불안을 팔고, 우리는 그 불안을 산다. 정보가 많다고 해서 더 나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더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