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의 브랜딩 Mar 07. 2024

내가 갖고 싶은 이불을 처음 사봤다

엄마의 브랜딩 020

어제 침구용 이불을 샀다. 마음에 드는 이불을 사기 위해 인터넷, 매장을 지나칠때마다 한번씩 만져보고 따져봤다.


보송보송 가볍고 바스락한 이불을 덮고 있으면 그 자체가 힐링이 될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이불은 하얀 이불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고르는 이불은 색깔이 진한편이거나 패턴있는 이불을 고르고 있었다.


왜? 나도 모르게 하얀 이불은 때가 잘 타니까 관리하기 어렵다_라는 필요조건에 의한 자동패턴의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 마음에 든 이불을 사본적이 있었나..?


초등학교 때 넓은 집으로 이사가며 외할머니가 엄청 예쁜 외국 캐릭터 이불 셋트를 사준 것을 제외하고 기억나는 이불이 없다.


그냥 집에 있는 것으로, 잘때 덮는 것으로, 엄마의 픽으로 골라진 이불을 있는대로 덮었다.(캐릭터 이불도 색감도 질감도 좋았지만, 어릴때의 나는 샤랄라 공주 핑크핑크 레이스 이불이 갖고 싶었다.)


이불을 좋아하는 스타일로 사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불=기호상품이 아닌, 난방 및 보온을 위한 물품_정도로 생각했었다.


결혼하고 중국가면서도 친정에서 사 준 이불 셋트를 가지고 갔었다. 한국에 와서도 관리하기 좋은, 패턴이 있거나 진한 색깔의 이불을 샀다.


살면서 평생 내가 갖고 싶었던 이불을 덮은 적이 없다고?


그 사실을 어제 알게 되었다. 필요한, 관리하기 좋은 이불이 아닌, 예쁘고 기분 좋아서 그냥 덮고 싶은 이불. 필요해서 사는게 아닌, 갖고 싶은걸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얀 이불을 샀다.


잘 때 책 읽고 글쓰는거 좋아해서 하얀 이불을 잘 관리 못해 연필자국, 잉크 자국이 묻는다 해도 하얗고 바스락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싶었다.


잘 때, 하얀 이불을 덮고 눕는데 사르르 솜사탕이 되어 녹아버리는 줄 알았다. 문득, 어렸을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큰 침대에서 두 분 사이에 내가 누워 호텔이불처럼 가벼운데 바스락했던 보라색 패턴 이불을 덮고 도란도란 얘기하다 잠들었던 기억이었다.


내 욕구에 대해, 내 감각에 대해 많이 후순위로 미루며 살았었구나 싶었다. 하얀 이불은, 그냥 이불이 아니라 오랜 기간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늘 밀려있었던 나의 욕구이자 원함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실이 주는 찬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