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재부팅할 시간입니다
나의 자발적인 백수생활
나는 20년 차 프리랜서 방송 촬영감독, 취재 PD, 현장 디렉터, 비디오 저널리스트다.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프리랜서라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을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역할로 말하자면 혼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촬영도 하고 인터뷰도 하는 1인 2역을 맡은 셈이다. 솔직히 온갖 돌발 상황, 카메라가 불편한 사람들의 욕설, 늘어나는 제작진의 요구 사항에 스트레스받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프리랜서의 세계에서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한여름 무더위에 버티고, 겨울 한파에도 녹화 버튼을 누르며 쉼 없이 달려왔다.
‘연애는 못해도 일 못한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덕분에 진짜 연애는 잘하지 못해 외로울 때가 많았고, 그럴 때면 더욱더 일에만 몰두했다. 뭔가 악순환이 반복되는 느낌이랄까.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나더러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여행도 하고 일도 한다면서 참 부러워했다. 천만의 말씀. 일은 그저 대가를 받고 하는 노동일뿐이다. 일을 잘 해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길가에 핀 꽃이나 나무,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다. 그렇게 나의 20대, 30대가 가고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40대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 날 현장에서의 내 모습이 어떤지 깨닫게 되는 일이 생겼다. 작은 오해로 기분이 상한 인터뷰이가 내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나는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디 숨을 곳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상황. 따지고 보면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 섭외 과정에서 제작진과 소통이 잘 안된 부분이 있었고, 뭔가 상황이 꼬였는데 그 현장에 하필 내가 있었다. 나도 조금은 억울한 부분이 있고 그 인터뷰이의 말에 화도 났지만 방송국 일을 한다는 이유로 화를 낼 수 없었다. 혹여 내가 화를 냈다가 일이 다 엎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다는 말밖에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꾹꾹 참아 눌렀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날은 밥을 먹으면 체할 것 같아 점심도 거르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 물만 겨우 들이켰다. 일을 다 마친 뒤, 숙소로 돌아와 제작진 한 명과 마주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 오늘 촬영한 건 어땠어요? 일이 잘 안 풀렸다면서요?”
“ 네, 좀 그랬어요.”
“ 그럼 내일 다시 찍어야겠네요.”
그 순간 그의 말은 나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왔다.
‘내 마음이 괜찮은지 먼저 물어봐 줘야 하는 거 아냐? 아무리 일이 중요하다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친 상태로 참고 또 참으면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터였다.
‘난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더 이상은 못해 먹겠네. 젠장.’
결국 나는 그 촬영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그 프로그램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나를 안 불러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마음으로 대했던 사람들에게 “전 이제 그만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동료들은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지 왜 그만둔다고 말했냐며 걱정했지만, 그렇게 안 하면 나중에 돈이 아쉬워지는 상황이 생겼을 때 다시 돌아가려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송일이 좋아 무작정 뛰어들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던 20년의 세월이 나를 변화시켰다. 짜증과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40대가 된 나는 일그러진 내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 더 이상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쉬고 싶어도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남들은 계속 돈 버는데 나만 놀 수 없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버텨 왔다. 지금의 나는 힘들고 지쳐 몸과 마음이 다 고장 났다. 도대체 나는 나에게 무슨 짓을 해 온 걸까. 내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를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순간 무언가 끓어오르듯 감정이 치고 올라와 울음과 함께 터져버렸다. 분노, 슬픔, 서운함, 짜증, 미안함, 후회 등등.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날의 상처를 더 깊고 아프게 만든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계도 장시간 사용하면 열이 발생해 고장 나기 쉬운데, 나를 돌보지 않고 함부로 사용한 결과였다.
당당하게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라는 커다란 벽이 내 앞을 막아섰다. 물론 코로나19는 나에게만 닥친 어려움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시작을 방해하는 건 분명했다. 진짜 백수가 된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20년을 일했는데 나를 찾는 사람이 이렇게도 없나 싶어 한동안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바닥까지 내려간 우울한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참 어려웠다. 문득 내가 있는 자리를 둘러보니 집은 쓰레기장이 돼 있었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물건들과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 발 디딜 틈 없는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마음 상태와 꼭 닮아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서랍 한 칸씩, 방 한 칸씩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구입한 기억이 없는 물건도 있었고, 몇 년 동안 사용 안 한 물건들도 많았다. 불필요한 물건들은 망설임 없이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내 마음속 부정적인 생각들도 함께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치우다 지쳐 주저앉아 있기도 했지만 총 17일이 걸려 집 정리를 마쳤다. 정리가 끝나갈 무렵 기분이 나아지면서 뭔가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기특했다.
지금은 얼마 되지 않는 아르바이트 촬영 일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행복함을 느낀다. 카드 결제일에 마음 졸이고, 맘에 드는 옷을 봐도 못 본 척 지나치고 있지만,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덩달아 내 표정도 밝아졌다. 당장 일을 그만두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늘이 무너지는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자발적으로 백수가 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내가 바라보는 하늘은 아직 멀쩡하다. 아니 더 크고 단단해졌다. 요즘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아껴주고 용기를 주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걸 느낀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재부팅하는 시간 - 나의 자발적인 백수생활이 그저 먼 훗날 펼쳐질 멋진 미래의 한 에피소드로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