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차에서 내려요! 당신이 지금 무슨 잘못을 한 줄 알아?
난 더 이상 당신을 못 가르치니까 다른 강사한테 교육받던지 하세요!”
운전교육 2일 차, 나를 교육하던 K강사가 불같이 화를 내고 차에서 내렸다. 그를 붙잡으러 뛰어갔지만 그는 내 손을 뿌리치며 돌아섰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아니 잘못한 게 있으면 알려주면 될 일이지.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20년 전, 한 회사의 인턴으로 일하던 나는 퇴근 후에 운전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 뒤에 있을 정규직 전환을 위해 운전면허가 필요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면허를 취득하는 게 간절했다.
K강사를 처음 만난 날, 그는 자신을 소개하며 호주머니에서 명찰을 꺼내 보여줬다. 명찰 케이스가 깨져서 옷에 달 수 없는 걸 보고, 그에게 잘 보일 마음으로 회사에서 새 명찰 케이스를 하나 챙겼다. 하지만 그가 버럭 성질을 부리는 바람에 난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했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고 생각만 해도 부르르 몸이 떨리면서 열이 올랐다.
“강사가 자기 한 명 밖에 없냐, 당장 바꿔달라고 하지 뭐!”
“이건 강사가 무책임하게 교육을 안 하고 가버린 거니까 오히려 내가 학원에다가 항의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친구와 통화를 하며 실컷 욕을 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했다. 문득 내가 정말 뭘 잘못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막상 강사를 바꿔서 다니자니 마주치면 불편할 것 같고, 그냥 그에게 배우자니 어색한 감정을 풀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눈 딱 감고 한번 부딪쳐보자.’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를 찾아갔다. 여전히 싸늘한 반응이었다. 난 가방에서 명찰 케이스를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저기, 이거 강사님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케이스를 챙겨 왔는데 전해드리지 못했네요. 저는 계속 강사님한테 배우고 싶은데 만약 힘드시면 다른 분을 알아볼게요.”
순간 그는 무척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어이없는 듯 웃었다.
“허어, 참 이상하네. 내가 화내서 기분 상하지 않았어요?”
“아 네, 기분이 나빴던 건 사실인데요. 강사님이 이유 없이 화를 내신 건 아닐 거라 생각해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시면 다시 잘해볼게요.”
“그럼 지난 시간에 수업을 안 했으니 보충수업도 해야겠네.”
그렇게 난 K강사에게 다시 운전을 배웠다. 그때 내가 한 실수는 ‘시동을 걸면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차량 이상으로 급발진하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일부러 크게 화를 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사히 장내 기능시험을 통과했고, K강사와는 이별했다. 그는 도로주행 교육을 맡아줄 새로운 강사를 찾아가 나를 특별히 신경 써달라며 부탁했다. 마치 아끼는 제자를 떠나보내는 스승 같았다.
도로주행시험이 있던 날, 너무 긴장한 탓에 온갖 신경이 예민해지고 핸들을 잡은 손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운전하는 순서가 뒤죽박죽 헷갈리고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실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합격했어요~~ 합격!”
“네? 누구...시죠?”
“나요~ 지랄 맞은 강사! 내가 방금 점수를 확인하고 왔는데 98점으로 합격했어요. 난 잘 해낼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흥분한 목소리의 남자는 K강사였다. 비록 그의 교육은 급발진으로 시작했지만, 그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20년간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다. 가끔 차에 시동을 걸 때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나의 첫 운전강사였던 그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