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름없는선인장 Nov 14. 2023

EP0. 천천히, 아주 천천히

40대 후반 퇴사자의 삶

“왜 퇴사했어?”라는 질문에,

"아파서 퇴사했다"라는 명분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왠지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고

약해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럼에도,

"더 참으면 아플 것 같아서 퇴사했다"가 더 명확하다.

나를 위한 선택,

병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또 그때는 그게 맞았다.


하지만,

4개월째, 접어든 지금.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암환자'로 밝히는 것이 벼슬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지만, 그리고 내가 투병기를 쓸 정도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어서 공개 여부에 대해서 조심스럽긴 했다.

그래서 한 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심적으로 너무 힘들기도 했다.

'암'이라는 단어의 중압감.

긍정회로만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극도의 예민함이 오히려 초기에 암을

두 개나 잡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한 아이러니.


하여튼,

퇴사 후 2개월째 되던 9월,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그것도 두 개나.

(나는 30대에도 암환자였다. 그때의 충격보다

두 개를 가지게 된 지금이 심적으로는 더 힘들다.

대충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3개월 안에 3번의 수술 (2번의 전신마취, 1번의 부분마취)을 거쳐,

지금은 치료 방법을 정하는 휴직기에 있다.


퇴사 시에는 3~4개월만 쉬고

12월에는 재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모든 게 틀어졌다.

몸 상태가 그렇다기보다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멀쩡하다. 물론 잦은 수술로 몸이 힘들긴 하지만... 내 기준은 '항암'을 하는 기준이기에, 그런 의미에선 괜찮다.)


채용공고는 보고 있지만, 딱히 지원서를 쓰진 않는다.

넣는다고 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진 않겠지만,

아직 후속 치료 일정이 잡히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주사도 아프고, (정맥이던, 채혈이던)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워진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다시는 아프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커져버렸다고나 해야 할까.

지금, 이런 기회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 건강을 잘 챙기고 싶다.

그리고 50 이후에는 절대 아프고 싶지 않다.

다시는, 수술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올해 3번이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조직'과 '일'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 간다.

그들이 먼저가 아닌, 내가 먼저인 삶.

일과 건강, 내 삶과 조직에서의 삶의 발랜스를 잘 유지할 수 있는 회사가 있을까.

회사는 치열하고 이기적인 곳이다.

그리고 아직은 예전 생각에 리더로서의 자리,

위/아래 등 사람들이 무섭기도 하다.


이력서를 내기가, 용기가,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나 자신이 녹아 사라져 가는 그 끔찍한 시간들 속에서

내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고,

몸에서는 이상 징후가 있지만, 딱히 "진단명"이 없어

휴직을 못하며 지내던 나날들.

그 마지막 멘털이 무너져 내리는 공포가 더 무섭다고

생각되어 던진 사표.


나를 바라보지 않고 살았던 그 시간들과

무한 경쟁과 시기, 질투, 비수 꽂는 말들로 오는

상처들, 스트레스를, 내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는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곳에서 다시 생산적인 기여를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나 자신과의 싸움일 수도 있다.

앞으로 건강을 챙기면서 말이다.




지인들은 지금, 아무 생각 말고

건강 먼저 회복하고, 챙기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도 한데, 퇴직 시, 돈은 정말 빨리 사라진다)


매일 건강 식단을 챙기고, 적절하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산책을 하고,

체력을 보충하면서도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느낌과

뒤쳐지는 느낌에 일과 관련된 책을 사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전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나는 마케팅 일을 한다)

내 능력(?)이 시간과 비례하여 사라질까

조바심이 난다.

사회에서 멀어지는,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소외된 삶에

적응될까, 길어질까 하루에도 멘털이 왔다 갔다 한다.


두 개의 암진단을 받았지만,

하나는 초기이고, 하나는 지금 당장 치료를 결정하진 않을 것이기에 축복이고, 더 좋은 일인데도

나는 점점 불안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치열하게 사는데,

나는 지극히 예민한 'I' 이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이다.

그 삶에 다시 올리탈 자신이 없다.

그러면, 다시 '재발'되지 않을까 하는 암환자의 굴레에

포함되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천천히, 조금 더 천천히라도

그 의지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퇴사자의 삶이, 암환자로서의 삶으로 바뀌었다.


퇴사자로서의 삶의 기간이 조금 길어지겠지만

항상 그렇듯, 브런치에서 많은 응원을 받는다.

그래서 용기를 내본다.


그래서 이 매거진의 글들은

주로 내 질병과 회복기에 대한 내용 위주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천천히,

잘 걸어 나가보자.

멈추지만 말자.

뒤돌아보지도 말고.


- 나를 위한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