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 팀장의 하루 ep 49
오전 9시.
출근하자마자 실장님 호출.
첫 문장부터 ‘안될 것 같다던' 국내 사업부에서 나를 검토해 보겠다고 했단다.
어제 오전까지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안 되는 줄 알았고, 그것도 저녁 8-9시 늦게서야 연락이 왔다며..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우선 그쪽 팀장님과 전무님을 만나봐야 한다고 전달해 주셨다. 그래도 만나볼 테냐고 물으셨고 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자,”기것 신경 써서 알아봐 줬는데, 표정에 변화가 없냐’고 하신다.
거기서도 그렇게 내키지 않아 한다는 소리인데, 그리고 팀장자리에서 인정 못 받고 팀원으로 가라는 것도 화나고, 팀장수당 날리고 연봉 하향 조정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데,, 그저 ‘감사합니다’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내 팀원보다 못한 게 뭐길래 이렇게 팀장까지 내려놓아야 하는지. (마음의 소리)
사람들은 그냥 자기 회사 인사권 맘대로 하는 본부장에게서 정당한 논리적 이유를 찾지 말라고 한다.
오전 10시.
그녀가 출근했고, 본부장님이 바로 면담을 했다.
그녀는 나와서 어두운 얼굴로 한참 망설이다가, 먼저 "바쁘시냐"며 내게 말을 걸었다.
어색한 침묵에 1층에 내려가 차를 마셨다.
"주말은 잘 쉬셨냐"며.."자기도 금요일에 알고 잠이 안 왔다. 부담스러운 자리고,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못할 것 같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었는데".. 라며 ‘그래서 원래 쉬려고도 했고 정리가 필요해서 어제 연차를 냈다"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서두는 이렇게 된 걸 "솔직히 제가 이걸 팀장님에게 미안해야 할 일도 아닌데 미안하기도 하고,....’라고 한다. 미안할 수도 있지 않나? 고의적은 아니라도 팀장들을 밀어낸 것도 맞다. 구조조정의 승자이지 나처럼 지금 피해자 코스프레는 좀 아니지 않을까.
그녀는 나중에 ‘팀장님한테 고마운 것도 많고, 미안한 것도 많은데..."...라는 말을 했다..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미안하다는 걸까.고맙고 미안하면 본부장님에게 내 칭찬이라도 좀 하지...팀원으로라도 해외에 있게 하는 게 맘 편하다고도 이야기는 못하는게 그녀의 진심이겠지.. (내가 지금 갈 곳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두절미하고 본부장님이 오전에 뭐라고 하셨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원래 해외가 넉넉하게 인원을 유지하고 뽑았던 거고,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셨단다. 그녀는" 본인이 할 수 있을지 자신 없어하고, 본인은 서포트하는 게 더 편하다고 했고, 팀원들도 다 없는데 자기가 어떻게 팀장을 하냐고 하니, 본부장님이 “그냥 팀원들이 하는 거 넌 중간에서 코디만 해주면 된다."라고 했단다. 그녀에겐 역시나 별 기대도 안 하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는 좀 시간이 필요하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다"라고 실드를 벌써 쳐 놓았고 두 임원분들은 유하게 기다려 줄 모양세다. 언제나 쉽게 쉽게 가는 그녀가 부럽다. (내가 많이 삐뚤어졌나...)
오전 10시 반.
차를 마시고 있는데 그쪽 팀장님이 전화가 왔다. 지금 면담하자고.
팀장 대 팀장으로 몇 번 대면한 적은 있지만, 이젠 내가 모셔야 할 수도 있는 팀장님.
어쩔 수 없이 그녀와는 막상 별 이야기도 깊게 못하고 일어났다.
-팀장님 면담
팀장님은 솔직히 내가 '이직 전 거쳐가는 자리'가 될까 봐 그럴 거면 그냥 지금 결정해서 안 오시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본인 팀에서 받기에도 내 스펙이 너무 고퀄이고, 부담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아깝게 왜 자기네 팀으로 와야 하는지.. 물론 자기네 팀에도 '마케팅 전문가'가 없어서 오면 도움이 될 거고, 큰 힘이 되겠지만, 일도 많고, 조직 문화도 그렇고, 많이 힘들 거라고 했다. 그 팀엔 벌써 차장이 3명이나 있고, 그 셋 중에서도 일은 1명만 거의 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맞나? 그것도 문제인데...팀원이 13명인가 그런데..쏠림 현상이 조정이 안 되나..요? 팀장님???)
나도 5년 넘게 팀장 관리자 일을 하다, 실무를 다시 하려면 부담이 된다. 1) 차장으로 다시 팀원이 되는 것 또한 그렇고. 그렇다고 2) 지금 당장 본사 마케팅 자리도 있는데 자존심 지킨다고 현장을 가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3) 더 자존심 세운다고, 바로 때려치우고 나가서 아직 확정도 되지 않은 면접들이 있을 거라며 희망고문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지금, 헤드헌터를 통해서 서류 심사 중인 곳들이 있긴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건데. 하며 오전이 흘렀다.
점심.
마지막으로 팀장으로서, 실장님과 다른 팀장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 해외에 남을 사람이라, 역시나 다들 농담도 건네며 잘 먹는다.
맘 같아선 먹고 싶지 않았지만...
어색한 1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오후 2시
실장님께서 그쪽 전무님이 날 4시에 보자고 했다고 하신다.
오후 2시 15분
헤드헌터에게 서류 전형 합격 통보를 받았다. 면접은 다음 주 월요일. 부서 이동을 하고 첫날이 될 수도 있은데 면접 일정 조정이 안 된단다. 이번 주엔 아무 때나 편히 쓸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미리 휴가원을 낸다.
*솔직히 이 포지션은 지금 회사보다도 크고, 임원급 포지션이다. 물론 임원은 1년 단위로 평가받고, 계약 베이스지만 연봉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나의 첫 공식 임원 도전이다.
물론 임원의 자리도 바로 성과를 내야 해서 부담이긴 하다. 그래도 여기도 글로벌 마케팅 포지션이다. 영어를 계속 쓸 수 있다. 업종은 다시 제조. IT제조업.. 여기도 적응이 필요한 업종이지만 이래저래 고민이 된다.) 뭐 아직 힙격은 아니지만.
오후 4시.
떨리는 마음으로 전무님 집무실로 향했다.
워낙 소문이 자자하신 분이라 (어떤 면으로?) 떨리기도 하고. 10분 전 스텐바이 했는데 4시에 집무실 들어가니 대표님이 급하게 찾으신다고 미안하다며 다시 올려가 있으란다. 흑...
오후 5시
아직도 전무님 연락이 없다. 그쪽 팀장님에게 미리 6/1 연차를 냈다고 양해를 구해놓았다. 이제 연차는 팀장 전결이 아닌 자진 결재 공유 형태지만 부서마다 다르고 양해 구하는 부분도 있으니... 우선 오케이 받았다. 어떤 기회도 다 시도해 봐야 하니 면접은 가보기로 한다.
오후 6시.
퇴근이다. 이렇게 오늘은 마무리를 못하는 건가 싶었다. 실장님에게 아직 면담 못했다고 하니 그럼 오늘은 못하는 거냐며 궁금해하신다. (빨리 내 건이 해결되어야 맘 편하다는 뉘앙스) 오늘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고 답해드렸다.
6시 20분. 터벅터벅 회사를 나와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혹시 몰라 받아보니 전무님이다. 다행히 회사 앞이라 다시 회사로 올라간다.
-전무님 면담
10분이면 된다던 면담은 한 30분 한 듯.
고 의치 않게 자꾸 눈물샘이 막혀서 눈물이 고이고 흘러내리려고 한다. (우는 건 아닌데.... 오해 하시진 않겠지?;;) 나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ㅋ;
전문님은 나중에 내가 맘에 든다고 하셨다.
횡단보도에서 와 준 것도 의리리며, 내가 책임감 있어 보인단다. 또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로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고 기대하는 바도 크다고 하신다. 단 그 경력에 팀장을 하던 사람이 팀원이 되고, 해외보다 업무도 많고 힘들고 (요지는 이 팀에 오면 집에 못 간다. 야근도 많고 필요하면 책임을 가지고 주말도 나와서 한다) 할 거면 1년은 같이 일해야 한다고. 그 사이에 여기저기 간 보다 500-1000만 원 더 준다고 이직할 거면 아예 지금 오지도 말라고. 그런 게 제일 걱정이라고 하신다.
안다. 나도.
내 고민도 그러하다.
이직하는 것도 대우를 못 받으니 하고자 하는 건데
성과급도 거의 없고, 연봉 인상도 거의 없는데... 처우에 흔들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은데...그럼에도 나도 여러 부서나 회사를 옮기고 적응하는 체질이 아니라서..이번 부서 옮기는 것도 거의 회사 옮기는 급 변화인데...당분간 맘 잡으면 1년은 버티는 게 맞는 거 같은데...
근데 나한테 맡기려는 일들을 들어보니 일은 해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드디어 미쳤나보다) 지난 2년 동안 팀장으로 있었지만 직무 커리어적으로 너무 한계에 부딪혔고 할 수 있는 업무의 폭이 적어 나도 조바심 나고 답답했다. 불안하기도 했다. 직장은 다니고 있는데 도태되는 느낌. 그래서 일이 약간 고픈 상태인 것 같다. 이 준공무원 같다는 표현의 조직에서.
마음만 먹으면 마지막 실무 경험을 완벽히 테스팅해 볼 수도 있고, 다양한 프로젝트 수행도 가능할 거 같고, 그냥 일만 하는 게 맘 편할 수 있다. 정말 이 새로운 조직이 힘들어도 딱 1년만이라면, 내수 온라인 마케팅으로 실무로 온라인 마케터 리더 포지션으로 갈 곳도 많을 듯하다. (물론 내 개인 삶을 또 사라지겠지만... ) 월요일 면접 결과에 상관없이 부서를 옮기면 내 성격상 정말 여기서 1년은 있어야 할 것 같다.
한 편으론 관리자 일도 재미있다. 관리자로 5-6년 넘게 있다 보니, 그리고 윗 분들을 모시고 팀원들을 이끌다 보면 그 중간에서 조율하며 큰 그림을 그리고 경영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는 재미가 있다. 내 사업을 하거나 하고 싶을 때, 또 아니면 그냥 임원급으로 조직의 방향과 틀을 제시하고 힘을 부여할 수 있는 관리자급 자리가 이젠 편하기도 하다. 또 팀원을 육성하고 멘토로 이끌고 해 주는 것도 보람 있고 그러했다. (뭐 여기와서 다 망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내 사업을 하고자 하는 설계도면이 없기에 앞으로의 1년을 실무자로 있는 게 득인지, 임원으로 도약하는 게 득인지는.. 나도 장담하기 힘들다. 솔직히 전자의 느낌이 좀 더 크다. 돈은 나중에라도 더 벌 수 있다고 나도 생각한다. 자리가 아닌 실력을 키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흑, 그 팀장님 밤 10시 넘었는데 면담 어땠냐며 나에게 카톡 하신다...@@;;; 집이시긴 한 건가....밥 늦게 왜 카톡을....
내일 오전까지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면접이 잘 되거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거지?@@;; 솔직히 보란 듯이 잘되서 보여주고 싶은 맘이 더 클지도 모른다. 나름의 복수..? 그만큼 내가 악이 받친다....내수를 가도 꼭 성과를 내고야 만다 정말...)
이런 맘, 이런 밤.
이런 마지막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