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의 기다림 vol 1

40대 여자 팀장의 하루 ep 49

by 이름없는선인장

마지막 일주일간의 기다림.


월요일이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잔 건지, 누워만 있던 건지.. 그래도 눈을 감고 있으면, 잠을 잔 거와 똑같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거 같은데…. 진실인지 모를 그 말로 위안을 삼으며 새벽을 지냈다.

새벽 6시 알람이 무색하게 새벽 5시 10분부터 눈이 저절로 떠졌다..

어떤 말을 할지, 요구를 할지 각종 시나리오를 고민했지만, 회사에 오니 화가 나고 계속 부들부들 떨리기만 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한 들, 따진 들 지금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지금은 출근해서 오후 3시.


오전 내내 이메일함과 파일 자료 정리(?)를 하고, 마지막 주간 회의를 준비하고, (참석할지, 서면 대체할지 모르지만), 몇 명의 팀원들과 점심을 먹었다. 소화도 안 돼서(?) 햄버거를 먹고.. 팔고 있는 스누피 사은품을 사서 나름 위로를 받는다. 오후가 되자 급 피곤하고 졸려진다. 머리가 밤 센 것처럼 띵해서 팀원에게 에드빌이 있다고 해서 얻어 먹었다.


오후 2시경에 본부장님이 직접 프로젝트로 가는 팀원들을 1대 1 면담을 진행하셨다. 나도 부를 줄 알았는데 (어차피 부서 이동자는 프로젝트 팀원 3명, 다른 사업부 발령 1명, 그리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나, 이렇게 5명인데, 다른 사업부로 발령된 사람은 오늘 연차를 냈다) 프로젝트 팀원들만 진행하고 나는 부르지 않으신다. 아마도 갈 부서를 아직 정해지지 않아 통보받지 못했으니, say good bye나 어떠한 변명도 못 하시겠다 싶다지만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은따(은근 왕따)’인가? 뭐 면담을 해도 윗선의 결정이니 하고 싶은 말로, 포장해서 본인들의 선택과 결정을 내 잘못으로 몰겠지만, 솔직히 하루 종일 혼자 이런 처지니 혼자 태연한 척하고 있기는 하지만 옆 남자 팀장은 이제 말 한 번 걸지 않는다. 남아 있는 사람이 승자라고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부 공문이 날 때까지 눈치만 보고 있고, 새로운 팀장이 될 사람은 오늘 연차니 공식 발표되기 전, 사무실은 불편하게 조용하다.


새로운 팀장은 오늘 연차를 냈고, 예전 같으면 나에게 사무실 분위기 어떠냐며 카톡이라도 했겠지만, 오늘은 그녀도 조용하다. 매일 수시로 올리던 자녀 인스타도 안 올린다.

그녀도 알고, 나도 알고, 다들 알 것이다. 그저 서로 모른 척할 뿐. 내일은 또 다른 어색함이 있겠지...


매번 그 남자 팀장은 인사조정 시기가 지나면 '자기도 불편해서 죽는 줄 알았다' '자기가 어떻게 아는 척을 하냐' '본인도 힘들었다' ‘자기도 그 사람이 싫고 불편하다’이런 말로 새로운 팀장과 꿍짝을 맞춘다. 그 놀음에 나도 몇 번 놀아난 꼴이지만, 그도 이해가 된다. 남을 사람이고, 임원이 되고 싶은 야망이 있는 남자니까. 그래도 솔직히 이제 화는 그 남자 팀장에게도 난다. 다 알면서, 고민이라도 들어줄 양 내 속내를 이야기하면 윗 선에 다 전달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알면서, 힘들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니 후회가 막심하고 짜증이 난다.


이렇게 출근해 앉아 있지니 지금 난 너무 허망하다. 이 정도로 왜 내가 갑자기 타인들에 의해 죄인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거지?


오후 5시.

아직도 날 부르지 않는다.

이건 면접 보고, reject 되는 기분 하고는 사뭇 다르다.

내가 이렇게 어느 부서에서도 웰컴 받기 힘든 존재라는 건가.

결정이 더디고, 혼자 무료하게 기다리는 이 시간이

나에겐 유독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배려라고 내가 땡큐 해야 하는가. 정녕 누굴 위한 배려인가.


오후 6시.

실장님도 안 계시고, 퇴근이다.



지난 주말, 어제.

미운 정이 고운 정일까. 주말에 그렇게 날 힘들게 하던 대리가 팀장님 면담은 결과가 어떻게 됐냐며 카톡이 왔다. 물론 딱히 답할 수 없었지만, 어떤 면에서 걱정한 건가? 궁금한 건가? 그래도 궁금해하는 팀원이 한 명이라도 있구나 감사해야 하는 건가.


어제는 집에 있으면 너무 숨 막혀서, 언니에게 연락했다.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언니네 밖에 없네...ㅜㅜ 언니랑 형부와 갑자기 남산에 올랐다. 몸이라도 피곤하고 힘들게 하면 좋겠다는 그들만의 특단이랄까. 날씨는 좋았고, 산을 오르니 기분은 좋았다.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고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걱정이 싹 사그라들지는 않더라만.


오늘 아침.

지난 금요일에 다른 경력직 남자 차장님이 괜찮냐며, 얼굴이 반쪽이라며 커피를 사주셨다. 물론 난 속이 쓰려서, 카모마일 차로 속을 달랬다. 다들 숨죽여 사무실에 타이핑만 해댄다. 속내를 나누던 옆 여자 팀장도 오늘은 조용하다. 나도 말을 붙이기가 이제는 여력이 없다.


이들이 나를, 이 사태에서의 나의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그들하고 평생 갈 것도 아닌데 말이다.

떠날 자는 빨리 떠나야 한다.

오늘도 내가 살기 위해 이메일을 체크하며

헤드헌터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 곳에서의 마지막 한 주.

솔직히 그냥 쉬고 싶다.

나 자신에게 대접받지 못한 시간들을 주게 되어 미안할 뿐.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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