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73. 니스2
아침 아홉시 반쯤 일어나 속옷 대신 비키니를 옷 안에 입는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해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미친듯이 가볍다. 한낮에 본 니스 해변은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인다. 내 두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는 색채다. 왜 유독 프랑스에 유수의 화가들이 거쳐갔는지를 알 것만 같다. 남부 유럽의 햇살은 바다도, 야자수도, 하다 못해 상아색 보도블럭도 춤추게 한다.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물속에서 놀기엔 내 건강이 염려되었기에 검은빛 자갈로 된 니스의 해변에 배를 깔고 누워본다. 주머니 속에 넣은 공깃돌 마냥 짤그락거리는 자갈 덕에 몸이 좀 배기는 것 같아도 이쯤이야 어떠랴. 누워서 마트에서 산 귤과 뮤즐리를 먹는다. 최고의 아침 식사다.
슬슬 본격적으로 배가 고파져서 밥을 먹으러 향했다. 테라스 좌석에 이끌려 앉은 곳. 나는 해산물 리조또와 화이트 와인을 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환상의 조화였다. 이 도시는 모든 요리가 맛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 도시가 요리를 맛있게 하는 것인가. 리조또의 해산물은 살아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신선했고, 크림 소스도 진득하니 완벽했다. 아, 이 도시의 달콤함은 유한할 것임을 너무나 잘 알지만, 무한히 즐기고 싶은 욕망은 어찌할 수가 없다.
식곤증이 몰려온다. 아이스크림으로 뇌를 깨워보기로 한다. 사실 뇌는 핑계고, 그냥 달고 맛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이스크림은 원래 달콤하고 사악한 녀석이지만 니스에선 달콤하고 달콤하기만 하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다시 해변으로 향한다. 니스 해변은 봐도 봐도 안 질릴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태닝하는 사람들이 성별할 것 없이 상반신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다. 할머니도 비키니 차림이다. 참 좋다, 이런 자유로움이.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상반신을 내놓은 것도 아닌데도 자유로움이 몸 안에 가득찬 것 같다.
길거리를 구경하다가 A l'oliver라는 상점에서 니스산 올리브 오일을 구입했다. 나는 올리브 오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슬프게도 이 오일은 한국에서 참기름, 간장 등에 밀려 구석에 처박혀있다가 결국 뜯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게으른 자의 최후다.
숙소에서 진득하니 낮잠을 한 시간정도 잤지 싶다. 우리는 체크아웃을 하고 니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어느 호텔의 바를 무작정 들어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니스의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마치 심즈에서 나만의 휴양지를 꾸며놓은 것 같이 아기자기하다. 알콜 도수가 꽤나 셌던 ti punch라는 칵테일을 시켰다. 이 바에 온 니스 젊은이들이 꽤나 힙해 보인다.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비트 덕에 엉덩이가 들썩이고 어깨가 둠칫거린다. 루프탑에 찾아온 예쁜 비둘기와 취기가 오른 채로 함께 음악을 즐겼다.
저녁 식사를 찾아 헤매다가 치즈스테이크하우스를 찾았다. 바게트 샌드위치 같은 메뉴를 파는 곳으로 트립어드바이저에 나온 곳인데 주인 아저씨가 매우 친절하시고 무엇보다 맛이 아주 좋았다. 우선 감자튀김부터 합격. 바게뜨에 소고기에 치즈에 치즈에...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해가 넘어가는 분홍빛 지중해를 바라보며 치즈가 줄줄 흐르는 바게뜨 샌드위치를 먹는다. 샌드위치를 베어 물 때마다 입안에 들어오는 공기가 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기분 나쁘게 추근대서 약간 짜증이 났지만 이내 잊혀진다. 나와 언니는 모두 노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기분 나쁜 피곤함이 아니다. 딱 잠이 잘 올 것 같은 컨디션이다. 온 도시가 마치 달큰한 약에 취한 듯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