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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Feb 25. 2022

전쟁;독재

우리의 과거였고, 언제든 미래가 될 수 있는 것

“우크라이나...?”


첫 해외 발령지로 우크라이나에 가게 되었다는 친구의 말을 몇 년 전 들었을 때 보인 우리의 반응은 모두 ‘낯설’고 ‘멀’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고, 체르노빌 원전이 있는 곳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세계 지도를 살펴보니 작은 나라는 아니었다. 아니 꽤 큰 나라였다. 그래도 나와는 접점이 없다고 생각되어 큰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 관련한 뉴스가 자꾸 눈에 띄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 군사 배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슬슬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비극적이게도 설마 했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우크라이나에 있던 친구는 부랴부랴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그래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크라이나에 있었던 친구는 한국에 왔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두고  사람들에 대한 착잡함을 느끼는 듯했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뉴스에는 전쟁에 관한 급박한 소식들이 가득했다. 민간을 구분하겠다는 러시아의 말은 당연하게도 전쟁 상황에서 지켜지지 않았고,  전쟁의 파편은 고스란히 무고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가해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18에서 60세까지 모두 징집하는 국민총동원령을 내렸다. 민가는 어김없이 폭격을 맞았고,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방공호 안에서 벌벌 떨며 두려움을 견디고 있다. 어린 딸의 편지를 손에    가족을 두고 눈물의 이별을 겪어야만 하는 장면, 신원도   없는 채로 바닥에 널브러진 군인의 시신, “나는 죽기 싫어요라고 울먹이며 호소하는 어린아이들.


이러한 비극은 우크라이나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러시아 군인들 또한 목숨을 건 생이별을 해야 했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 나가야만 하는 남자. 애인을 전쟁터로 보내야만 하는 여자. 애써 대입해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 심정은 너무나 절절하게 전달되었다.


우크라이나 독립부터 크림반도 전쟁까지 지정학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 전쟁이 누군가의 이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한 명의 독재자, 부패한 나라 시스템에 기인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푸틴의 거대한 저택과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그의 정부와 딸의 모습, 그리고 우크라이나 방공호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대조되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책임은 없을까? 푸틴 정권에 반발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긴 독재에 무기력해지고, 적응하고, 오히려 옹호하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과연 일말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우크라이나 관련 뉴스를 일부러 접하고 또 접하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있는 그대로 모두 알고 싶었다. 우리나라와 시차가 7시간 차이 나는 먼 땅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 슬픔, 절망감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일말이라도 함께 공감하고 싶었다. 그것은 알량한 동정심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기력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생존 본능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두려움, 슬픔, 절망감은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였다. 동시에 이러한 모습이 언젠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데에 대한 본능적인 반작용이었다.


조속히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 오늘 밤은 불편한 감정을 떨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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