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칼국수 집 (3)

내면의 빛은 아름다움으로

by 빛나는 숲 손호림

4인분의 먹음직스런 칼국수가 대왕그릇에 담겨졌다. 뜨거운 국물의 열이 그릇에 전도되기 전에 테이블로 음식을 곧장 옮겨야 하는 민첩성을 곧바로 발휘해야 했다. 혜림은 양손으로 면기를 잘 부여잡고 긴장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테이블 거리 5cm 위에서 그만 손이 미끄러지고야 말았다. 스멀스멀 차오른 손바닥 땀이 원인이었다. "탁!"하는 소리와 동시에 국물이 사방으로 틔었다.


" 어머, 깜짝이야! "


음식을 기다리며 희희낙락 잡담을 나누고 있던 손님들이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 앗!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

혜림은 손님을 살펴본 후 얼른 마른 행주를 가져왔다. 테이블 바닥을 훔치려는 찰나 카운터에 앉아 있었던 주인장이 빠르게 다가와 죄송하다며 연신 몸을 굽신거렸다. 다행히 손님은 괜찮다며 아무 일 없는 듯 칼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혜림은 손님의 눈치를 끝까지 살피며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주인장의 매서운 눈빛과 짜증 섞인 뒷말은 혜림이 오로지 가져가야 할 몫이 되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얼른 주방 안으로 달려가 손을 씻었다. 꼼꼼히 비누칠을 하며 한 톨의 땀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손바닥을 박박 문질렀다. 뒤통수엔 여전히 주인장의 따가운 시선이 맴돌았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회복에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 상황에만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손님이 화상을 입거나 세탁비를 운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안심이었다. 눈동자에 국물이 튀어 들어갔으면 어쩔 뻔했으랴. 주인장의 잔소리 한마디 땜에 쉽사리 풀이 죽은 채로 있을 혜림이 아니었다. 이는 문구점 알바 이후 마음이 한결 단단해진 혜림의 조그만 성장이기도 했다.


사실 단골손님들은 혜림을 무척 좋아라 했다. 특히나 밝은 목소리로 입구에서부터 시선을 맞추며 손님을 기쁘게 환대하는 혜림의 미소는 그들의 마음까지 매번 화사하게 만들었다. 혜림의 단아한 외모도 한몫을 했다. 결이 가지런한 자연스러운 눈썹, 쌍꺼풀진 깊은 눈과 긴 속눈썹은 혜림이 그나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자산이기도 했다.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외모와는 다른 이 특별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까닭 모를 평온함을 느꼈다. 투명한 안경 아래로 적당히 작고 오목한 코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는 입매와 어울려 지적이고 순수한 이미지를 한껏 자아냈다. 밝은 톤으로 살짝 커버한 피부 화장은 혜림이 연분홍빛으로 수수하게 칠한 입술을 더욱 붉게 보이게도 했다. 160cm 정도의 키였지만 하체가 길고 적당히 마른 몸매를 지닌 혜림은 어떤 옷을 입어도 청순함이 묻어났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초라한 알바생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딘가 모를 고귀한 자태가 있었기에 환대를 받는 손님들도 혜림을 마주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상승하는 듯했다. 겸손한 태도로 시종일관 손님들을 응대하는 혜림의 밝은 힘은 손님들의 입고리를 절로 올라가게 했기에 이런 혜림의 작은 실수가 쉽게 덮혀지는 것은 아닌가 했다.


혜림은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자신의 환경을 결코 원망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일찍 가난함을 알았기에 아주 작은 것에도 감탄하거나 감사하는 태도가 늘 몸에 배어 있었다. 가난은 조금 불편함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에 결핍된 것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좋아하는 문학책을 통해 대리만족으로 누리곤 했다. 혜림은 물질적 결핍보다 심리적 결핍을 더 심각한 것이라 여겼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남들과 비교하다 보면 우울한 마음과 열등감, 위축된 마음이 찾아올 뿐이었다. 그래서 혜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산을 틈틈이 책을 통해 쌓아 갔다. 좋은 마음의 양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채워나가니 혜림의 정신 세계는 점점 고양되었고 풍부한 정서로 가득해져 항상 밝은 빛이 감돌았다. 부모세대는 어찌할 수가 없었더라도 자신의 삶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을 거란 확신이 알게모르게 켜켜이 쌓여져 가고 있었다. 그 기대와 열망은 혜림이 가난을 뚫고자 중심을 잡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했다. 그래서 대학에 합격한 이후 부모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먼저 알바를 통해 과감히 세상을 향해 뛰어들었는지도 몰랐다.

걱정한 대로 바지락 칼국수집은 결국 간판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가게 주인장은 마음을 접지 못하고 인테리어만 다시 해서 참치회를 판매하는 일식집으로 상호명을 금새 바꿨다. 고급 요리와 술을 팔면 매상이 확실히 오를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성실하고 밝은 혜림은 주방보조로 계속 고용이 유지되었다. 단지 오후 5시에서 밤 12시로 혜림의 출근시간만이 바뀌었다. 혜림은 낮에는 과외를, 밤에는 간단한 스끼다시로 간간히 배를 채우며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일식집은 오목조목한 작은 그릇이 즐비했기에 금새 그릇들이 싱크대에 쌓여져 갔다. 그러나 바뀐 상호명에도 불구하고 매상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역시 홀 자체가 비좁음이 결정적이었고 재료 및 손질, 참치회 및 곁들임 메뉴, 플레이팅 및 서빙도 고용한 2명의 요리사가 전부 해내는 구조 때문에 이들의 인건비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인장과 요리사들의 묘한 알력은 점점 신경이 달아오르만큼 혜림에게도 감돌았다.

혜림은 설거지를 마치고 밤 12시가 넘어 가게를 나섰다. 무심코 술에 취한 이들이 길거리에 넘쳐나는 밤거리가 무섭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넉 달도 채 안되어 이번에는 혜림이 일을 스스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식집 주인장도 함께 폐업을 선언하며 상가거리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