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안을 찾아보나
두 번째 알바로 선택한 바지락 칼국수 식당은 혜림의 집에서 5분 거리였다. 혜림이 사는 성남은 인생의 굴곡과 눈물 가득한 사연이 넘쳐나는 땅이었다. 대부분의 낡은 주택들은 높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어 폭설이 내리면 쌀포대나 종이박스를 타고 등교나 출근을 감행해야 할 정도였고, 가파른 언덕 자락에 위치한 집을 매일 오르내리다 보면 절로 굵어지는 튼튼한 종아리 근육을 만질 수 있었다. 언덕 아래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들 주인의 삶 또한 애달프긴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식당들은 건강 밥상보다는 짜고, 달고, 조미료 맛이 너무도 익숙한 식당들로 넘쳐났다. 맛집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고 고픈 배만 채워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외면당하는 식당도 많았다. 혜림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간판이 바뀌는 점포를 여럿 보았다. 금방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어묵꼬치, 호떡, 찐만두, 붕어빵 등 길거리 음식들이 오히려 장사가 잘 되는 듯했다. 그렇게 찾아간 바지락 칼국수집의 식당주인도 삶이 퍽퍽해서 여유가 없었는지 역시나 구인의 합리적 절차는 애당초 무시했고, 상가 유리문 앞에 '식당 보조 구함, 홀써빙 구함'이라는 종이만 떡 하니 붙여 놓았다. 혜림이 문을 열자 카운터에 자리한 주인 사장이 일어섰다.
" 어서 오세요? "
" 홀써빙 구한다고... 요 앞에 써 있어서... 들어왔습니다... "
혜림은 처음의 용기와는 달리 자신이 손님이 아니라 구직자임을 드러낼 때 움츠러들며 작아지는 목소리를 자각했다. 손님의 위치와 구직자의 위치는 주인장에게 있어서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좀 전만 해도 반갑게 인사하던 주인 사장의 목소리 톤이 이내 저음으로 바뀌었다.
" 아, 그래요... "
혜림은 지난번처럼 대학생증을 내밀며 자신의 신분을 얼른 밝혔다. 그러자 사장의 눈빛이 대번 달라졌다. 이 작은 플라스틱 카드 하나가 구원 열차에 오르는 천국 티켓 역할을 톡톡히 또 해내었다. 당장 내일부터 나와도 좋다는 승인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졌다. 혜림이 열심히 공부해서 얻어낸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1997년을 살아가는 가난한 성남인들에게는 계층이동의 변화를 이루어낸 기특하고 대견한, 올곧은 청년이라는 것을 충분히 입증하는 것이었다.
" 내일부터 나와요. 아침 10시부터 저녁 저녁 8시까지예요. "
개점한 지 얼마 안 된 바지락 칼국수 주인은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은 포부로 어깨에 한껏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나 혜림의 근무 시간은 한 달도 채 안 되어 오후 5시까지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다시 오후 3시로 또 한 번의 변동 후 바지락 칼국수 집 역시 성남의 여느 가게와 다름없이 초라하게 셔터를 내려야 했다.
사실, 바지락 국물의 시원한 맛과 쫄깃한 면발은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갓 담근 겉절이 말고도 양푼크기만 한 대접에 푸짐하게 담아낸 바지락 칼국수는 먹음직스러웠다. 무제한 무료공깃밥 서비스도 좋았다. 그러나 협소한 매장에 비해 칼국수집의 단골고객인 아줌마 부대의 수다와 소화가 더딘 노인들의 느림의 철학은 식당의 회전율을 떨어뜨렸다. 시간이 촉박한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한꺼번에 몰려오면 절반은 그대로 돌아가기가 일쑤였고, 가끔씩 해감이 안 된 바지락 하나가 검은 뻘을 토해내는 불상사가 터지면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하고 다시 끓여내야 하는 수고도 곁들여야 했다.
오전 11시부터 몰린 점심 손님이 우르르 빠질 즈음이면 혜림은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가득 쌓인 설거지를 하고, 내일 먹을 분량의 겉절이 김치를 담가놓는 것을 돕고, 삶은 수저를 하나하나 포장해 제자리에 놓고 나면 금방 오후 5시가 되었다. 그러나 저녁을 칼국수를 먹으러 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어느샌가 5시 이후가 되면 혜림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불안해졌다. 한창 바쁜 점심시간에는 서빙하랴, 손님들 응대하랴 정신이 없어서 한숨 돌리기도 벅찼으나 분주함 뒤에 오는 오랜 한적함이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문구점 알바 때처럼 손님이 없음으로 인해 찾아오는 적막함과 썰렁함, 근심에 빠진 주인의 구겨진 인상은 또다시 그녀가 거리로 내몰리는 때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인건비라도 줄이려 했는지, 식당 주방장은 결국 주인장 아내의 차지가 되었다. 풍만한 몸을 가진 주인장 아내는 군말 없이 하얗고 굵은 팔뚝으로 칼국수를 휘휘 휘저었고 뜨겁게 달궈진 국통을 번쩍 들었다 놓으며 허리를 동인 채 땀을 뻘뻘 흘렸다. 하루아침에 콧김 쌩쌩했던 사장 여주인에서 식모로 전락한 그녀의 신세가 안타까워 혜림은 주인장 아내가 담근 겉절이의 간을 대신 볼 때마다 손을 추켜세우며 그녀의 기를 잔뜩 세워 주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식당 주인장은 도통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카운터에서 돈을 계산하거나 어정쩡한 자세로 손님에게 들릴 듯 말듯한 인사가 다였다. 무테 유리알 안경 너머로 마르고 빼빼한 체격만큼이나 그가 얼마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인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자신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점포를 빠져나갔다 들어오면 사내의 주변에선 구린 담뱃내가 물씬 풍겼다. 혜림은 겉만 번드르르하게 지적인 듯한 주인장의 이미지에 주인 아내가 한눈에 반해 결혼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 아내 역시 '청담동 사모님'같은 인상을 주려 가끔 콧소리를 내며 허영을 떨곤 했지만, 현실에선 눈망울만 초롱초롱한 배불뚝이 아줌마였고 찍소리도 못하며 남편 눈치만 살피는 콩알만한 간을 지닌 사람임을 드러냈다. 다행히 이 세상물정 모르는, 왕방울눈만 뻐끔거리는 주인장 아내는 혜림을 살갑게 대했다.
" 앗 뜨거워! "
주인장 아내의 팔뚝에 점점 국통에 데인 화상의 흔적이 많아져 갔다. 그녀는 고용주 신분임을 잊어버린 채, 혜림에게 이것저걸 맡기지 못했다. 주방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본인이 직접 다 해야 안심이 되는 듯했다. 혜림은 홀서빙과 정리와 청소, 손님 응대, 쌓여있는 설거지만 해결하면 되었다. 맛있는 칼국수를 손수 끓여 늦은 점심을 늘 제공해 주는 주인장 아내의 따듯한 마음에 부응하고자 더욱 일을 찾아서 해보기도 하고, 나름 주인장과 똑같은 심정으로 저녁시간에 가게를 좀 더 살릴 수 있는 묘안을 떠올려 보기도 했으나 5시 퇴근이 떨어지면 그것마저도 접어야 했다. 주인장은 고심 끝에 술과 보쌈고기까지 상위에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바지락 칼국수]란 상호명 앞에 딸랑 추가된 저녁 메뉴는 주인장 부부의 간절한 바램과는 달리 그 이상의 손님을 끌어당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