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어젯밤부터 카레가 먹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런닝을 뛰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난 직후였으니까 아마도 11시 정도였을 것이다. 그나저나 2주 전에 술에 취해 알 수 없는 이유로 엄지 발톱에 멍이 들은 뒤로는 거의 걷는 행위조차 자제해야 했으니까, 실로 오랜만에 런닝이었다. 아직 발톱의 멍은 빠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뛰어도 아프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도 그럴게, 최근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저녁이면 나도 모르게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게 되었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걷는 행위를 자제하며 움직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라 어쩐지 복부와 턱에 살이 찌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별 볼일 없는 나의 운동 이야기는 이쯤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맛있었던 카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카레는 원래 어제 만든 카레가 가장 맛있다고는 하지만, 어제부터 먹고 싶던 카레를 먹는 행위 역시 무척 만족스러운 일이다.
가장 먼저, 양파를 길게 잘라서 1시간 동안 볶았다. 이 과정을 전문가들은 <카라멜라이징>이라고 부르고 나는 <아, 귀찮다>라고 부른다. 팬에 적당량의 버터를 두르고 (너무 많이 두르면 카레가 거북해진다) 양파를 넣은 다음 나무 주걱으로 그저 한 시간 동안 휘휘 저을 뿐이다. 그러면 탱탱하고 하얗고 자신있던 양파는 잔뜩 풀이 죽어서 갈색으로 변해버린다. 이쯤에서 1시간은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제부터 먹고 싶던 음식을 요리할 때는 '제대로' 정신이 필요한 법이다. 가령 어제부터 기가 막힌 짜장면 맛을 생각하며 잠에 들어 놓고서는, 다음날 태연하게 짜파게티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혹시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면 나의 상상력에게 굉장히 미안할 것 같다.
1시간이나 되는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양파를 볶고 있는 일은 지루하지만 나름 그만의 의미가 있다(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곳에 재미란 것은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반복적으로 하려고 한다. 스포츠 영화였나 어디선가 '매일의 행동이 나를 구축한다.'라는 대사에 감명받았기 때문인데, 그 대사를 내뱉는 등장인물은 딱히 뛰어난 재능은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시합에서 자신이 연습하던 것을 반.드.시 해내는 선수였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생소할텐데, 미국 MLB의 LA 에인절스라는 팀에서 일본의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최근 맹활약 중이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에 비유될 정도로 대단한 활약의 기반에는 명확한 방향성과 꾸준한 시도가 있었다. 아래 사진은 그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켜온 만다라트 계획표라고 한다. 9개의 목표를 위한 81개의 습관.
스스로 반복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가령,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마다 긴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실수들은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할 때 생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시도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설사 그걸 운좋게 해내더라도 실력이나 능력과는 먼, 그야말로 운에 가까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운도 실력이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그렇기에 나는 얼마 전부터 월수금 에세이라는 다소 유치한 제목을 전면에 내세워 블로그를 리셋한 것이다. 저 멀리 미국에 있는 선수의 예시를 들어가며 한 거창한 얘기였다. 어디까지나 느릿느릿한 카레를 만들면서 한 생각일 뿐이지만.
"일본 스타일의 카레를 만들 때는 저는 반드시 골든 카레 약간 매운맛. 마지막에 마살라 가루를 첨가하면 훨씬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