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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즈맨 Jan 17. 2022

먼데이 비어 (Monday beer)


맥주를  캔이나 위장에 쏟아붓고 영화를 조금 보고  , 나는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사실  어느때보다 평화로웠던 이번 주말에 미처 끝내지 못한 에세이  편이 임시저장 박스에 들어있는 상황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매일의 내가 느끼는 감정과 취하는 태도와 그에 따라 갖게되는 마음이  다른 법이므로, 어제 이야기를 오늘 다시 한다고 해도 소설이라면 모를까, 전혀 써지지가 않는다. 어제는 오후 2시까지 꿈을   있더라도, 오늘은 같은 시간에 의자에 앉아 기획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과 같다. 꿈과 사회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있다.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하는 것은 아니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어보자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이나 설파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글이건 말이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별 일 없었던' 주말-무언가 짜내려는 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마른 레몬에서 레몬즙을 짜는 일과 같았다. (별 일 없는 일상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 뭔가 설명할 꼭지가 없어서, 잡힐 게 없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클라이머는 아예 떨어지지 않게 허리에 로프를 잘 감은 뒤 산을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맥주를 먹고 나서야 글을 쓰고싶다 라고 느끼는 것은 어딘가 불량해보이기도 하고, 진실성이 없어보이기도 하고, 지나친 자의식 과잉인 것 같다고 스스로도 느낀다. 그러나 다만 내가 이 낯 뜨거운 (실제로 살짝 붉어진) 시점에 이렇게 문장을 남기는 이유는 마침내 시간의 공허함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무언가를 더듬었기 때문이다.


 


내가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보면서 적당하고 느긋한 월요일을 배웅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내 책을 찍어서 SNS에 올렸다. 사진에서 나를 당황시켰던 것은 내 책의 단어와 문장 밑에 반듯하게 그은 밑줄이었다. 그 녹색 줄. 그 무엇보다도 청량한 그린벨트. 책을 쓰면서는 아니고, 쓴 책을 서점에 입고하며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 책을 통해 나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길. 그러나 내가 남들에게 너무 큰 영향은 주지는 않길.



우리 사회의 유명인이나 자신만의 길을 가는 TV 프로그램에 나와보고 싶다는 지인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곳에 나가서 나의 영글지 못한 성취를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아직은 없다. 무엇보다도 그런 곳에 나갔다가 여지껏 똑바르게 살지 못한 나의 삶이 밝혀지는 것도, 포장되어 지는 것도 두려울 따름이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나는 몇가지 거짓말과 과장을 내뱉을 것이다. 전에도 썼던 표현이지만, 강아지의 꼬리보다 사람의 입은 비교적 덜 솔직한 기관이니까.



아무튼, 그런 프로그램의 나오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아무튼 사회적으로 꽤 괜찮은 과정을 거치고 준수한 결과를 올리는 중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준수한 기술의 발전으로 이룩한 초고화질 해상도겠지만 아무래도 TV라는 매체로 송출되는 이미지를 보는 것에 불과하니까 그럴까나. 좌우지간 그런 프로그램에 나와서 비대해진 영향력을 갖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상상해보자. 그래 뭐 썩 나쁠 건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끔 찌릿한 작은 영향력이 나에게는 더 현실적이다. 비주류와 뜻밖이라는 감동의 갭. 마음은 '이렇게 하세요'보다는 '저는 그렇더라구요'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 이런 문장에도 밑줄을 그어주는 사람이 앞으로도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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