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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매의 맏이로 자란 나는 동생들 ‘아기 업개’하느라 동물을 볼 여유가 없었다. 농사일에 바쁜 어머니를 대신하여 고무줄놀이도 맘껏 못 했다. 아기 보는 것에 질렸는지 결혼하고도 아기 낳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을 정도다. 어느 날, 꼬물꼬물 한 손가락을 빠는 아기들에 눈길이 꽂히면서 나도 엄마가 되었다.
사람 아이들 키울 때는 세뱃돈도 5만 원은 큰돈이었다. 하지만 오늘, 어린이날에 뒤늦게 우리 가족으로 합세한 막내 토토에게는 흔쾌히 간식비 5만 원을 담았다. 돌 반이니 인간 나이로는 10살 정도 된다. 처음 입양했을 때 동물은 똥개가 최고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남편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하던 말,
- 네가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져 여기까지 왔구나, 들로 돌아다니는 고양이 팔자가 좋은 건지 실내에서 본성을 죽이며 사는 네 팔자가 나은 건지 난 모르겠다만 이왕 만난 거 잘 지내보자꾸나...
한 살 반의 냥이 토토, 사람 나이로는 10살쯤
냥이를 입양해 올 때, 실내견이나 묘는 질색이니 동거인에게 부담 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내 육아는 이제 끝났다는 말도 덧부치면서. 하여 맹세코 난 냥이에게 10원도 지출 안 했다. 책임감을 주기 위해서 더 그랬다. 딸은 직장이 힘들 때면 토토 밥값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버틴 적도 많았다고.
냥이에 대한 내 선입견은 영화 <보헤미언 랩소디>를 보면서 더 굳혀졌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여자 친구에게 맡겨 키우던 장면과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드 머큐리가 공연을 나갈 때 창가에 올라앉아 전송하는 부슬부슬한 털을 가진 거대 묘들을 보면서 퀸의 사생활만큼이나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기르면서 그중 한 마리의 부고 소식을 받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프레드 며큐리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애틋하기 그지없다. 그런 감성으로 퀸의 노래는 지금도 베스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리라.
머큐리의 6년 연인이었던 , 다른 사람의 아내요 엄마가 된 메리 오스틴에게 그는 재산의 반을 주며 “사실 내 재산은 전부 너의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영원한 솔메이트였음을 고백했다. 영화를 볼 때는 메리 오스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만든 이는 역시 며큐리였다. 냥이를 키우면서 메리에게 남긴 유산은 며큐리가 해외 공연 때면 부탁했던 냥이들의 몫이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 박물관 샵에서 구입한 안경집과 안경닦이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박물관 샵에 들어갔다가 조선시대 고양이 화가, 변상벽의 < 묘작도>를 프린트한 이 안경집을 보는 순간 ‘ 저건 내 것’이라 속으로 외치며 탁 집었다는 것이다.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냥이의 정관수술 날은 4.3 강의가 있던 날인데 수업 끝나고 길거리를 방황했다. 사람 생활의 편의로 본능이 거세당해야 하는 냥이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과정이 내가 반려동물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 외의 생명을 생각하게 해 준 어린이(어른의 아버지?)에게 동학의 말씀이든 방정환의 뜻이든 어쨌거나 좋은 뜻을 받들어 경건하게 어린이날 선물을 바쳤다.
변상벽의 <묘작도> , 비단에 설채 94.7*43.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