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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Aug 04. 2023

내가 100일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11

 어느 날 마음에서 이야깃거리가 동나버렸음을 느꼈을 때, 더 이상 주변 사람과 일화, 풍경이 더는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을 때, 100일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100일 동안 글쓰기를 지속하다 보면 희한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여럿 하게 된다. 불쾌해서 간절히 잊기를 바라는 일도, 너무나 좋아서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하고 싶던 일 모두 결국 이야기가 된다. 오늘의 일화 속 오가는 말과 체험했던 감각들이 커서가 깜빡이는 페이지에 까만 글자들로 남는다. 남게 된 이야기를 몇 번이고 읽고, 다른 이에게 읽히게 되는 순간들이 좋았으므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글자들을 잡아다 하나의 문단 안에 넣고 빼고를 반복하곤 했다.

 

 무엇보다도, 제아무리 엉덩이가 무거운 게으름뱅이라도 글을 쓰면 몸을 움직이게 된다. 글감을 찾아야 하니까. 그리고 그 글감을 더욱더 생생한 이야기로 만들려면 더 많이 보고, 듣고, 움직여야 한다. 한 번은 가족과 남해를 여행하다가 시금치를 캐는 할머니 두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엄마는 흙 위에 털썩 앉아 바지런히 캐낸 시금치의 흙을 털어 봉투에 담는 그분들에게서 시금치를 사고 싶어 했다. 평소 같으면 하릴없이 차 안에서 빈둥댔을 나일 텐데 그 광경을 놓칠세라 걸음을 바삐 하며 엄마를 따라나섰다. 나는 그분들 뒤에서 두 손을 얌전히 모은 채, 사실 귀를 쫑긋 세우고 흥정하는 대화를 듣고 그분들의 옷매무새와 주위를 눈 안에 고스란히 담았다. 내 허리춤까지 오는, 봉투 안에 가득 담긴 싱그러운 시금치 향을 열심히 맡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수 있게 메모했다. 그날 저녁 나도 참 재미있게 글을 썼던 것 같다. 쓸 게 많았으니까.

 

 게으름뱅이라 덜 봤고, 덜 들었고, 덜 걸었는데. 내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오늘 중 ‘별볼일 없는 것’은 없다는 걸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토록 평범한 오늘에도 내가 놓쳤던 고유한 빛깔이 숨겨져 있다. 산뜻하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따뜻해 보이기도, 추워 보이기도 하는, 그런 빛깔을 지닌 오늘 속 일화를 부지런히 찾아 캐내고, 그 빛을 드러내도록 그것을 반질반질 닦아 내보이는 것이 글쓰기였다.

 

 내 지난 100일이 내 인생에 몇 안 되게 찬연한 빛깔을 지닌 나날이었음을 글쓰기를 멈추고 나서야 더욱더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글을 쓰지 않는 나는 다시 게으르고 무심해졌다. 그러니 이야기가 차츰 말라갈 수밖에. 그런 만큼 글쓰기에 대한 갈증 역시 커졌다. 또다시 100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지 정말 오랜만인지라 오늘의 글쓰기가 쉽지 않다. 글쓰기를 멈춘 과거의 내가 엄청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의 막막함도, 오늘의 특별함이었음을, 오늘의 빛깔이었음을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또다시 시작한 100일 안에, 부지런히 글 하나를 완성하는 어느 날에 문득 깨닫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함께 첫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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