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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주 Feb 19. 2021

지글지글

새벽의 헛소리 / 일기


빨래

빨래를 돌렸다. 느릿느릿 밥을 먹고 나니 빨래가 다 됐다. 그리고 누웠다. 그리고 조금 따뜻한 상상을 했다. 상상에 빠져들며 잤다. 여러 가지 꿈을 꿨고 빨래를 너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빨래를 널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또 빨래를 너는 꿈을 꾸고, 또 한 시간이 지나고, 또 빨래를 너는 상상을 하고, 또 한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세탁기에서 다섯 시간 쉰 빨래들이 안쓰러워서, 마침내 널어주었다.


상상

오늘도 굴에 잠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굴에 대해 써볼까 생각했다. 잠깐 굴을 상상했다. 나의 굴은 어떠한가 하고. 별것이 없지. 별것 없이도 산다.

상상하는 것이 좋다. 따스한 어떤 품을 상상하고, 그것의 따스함을 또 상상하고, 그렇게 상상이 따닷해지면 몸도 따뜻해지는 것만 같고. 오늘은 무척 추웠다. 마지막 추위라고, 친구가 일러 주었다.

한참 수다 떨고 싶은 날이다. 재밌겠다. 커피나 차를 마시고, 재밌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재밌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재밌겠다. 수다가 조금은 필요해.


돌고 돌아

돌고 돌아서 글을 쓰고 있다. 망상의 단계에서 트위치나 유튜브를 하고 싶었다. 관심이 목말랐나. 그런데 그냥 따뜻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떻게 따뜻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트위치는 별로 따뜻하지 않고 유튜브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대강 단념했다. 그래도 따뜻해지고 싶음은 남았다.

그래서 돌고 돌아 글을 쓰고 있다. 글은 한때 나의 꿈이었고 장래희망이었다. 진로 조사서에 쓰는 그런 것으로 꿈이었다. 그러므로 자의식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어린 나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 만들어 줄 유일한 무기였다. 그래서 그것을 알고 나서는 조금 싫어졌다. 글을 정말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니.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것을 버리고서는 다른 것이 없었다. 없어서 오래 아팠다.

지금도 아프고 계속 아플 것이다. 비관해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조금도 아프지 않은 나는 내가 아니겠지. 이것은 증상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것이다. 그렇게 얽힌 것은 도려낼 수 없다.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장점이고, 아파서 나고, 나라서 아프고,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장점이라는 말은 아니고,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무슨 나의 장점 같은 것을 어디 자기소개서에 적을 것도 아니고, 나는 뭐,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이겠지. 달리 알아야 할 것도 없지 않나.

그렇게 돌고 돌아 글을 쓰고 있다. 어떤 따뜻함으로 연결될까. 아니면 고통스러울까. 그런데 고통스러운 것마저 따뜻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희망찬 말을 써 보기도 하고.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쓰고는 있다. 아니 쓴다는 것은 이렇게 반복해서 단어로 적을 만큼 대단한 개념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쓰고 있다.

무언가를 하고 싶기도 했고, 주로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 것들을 돌고 돌아 지금은 쓰고 있다. 또 돌고 돌아 어디로 가 있을까. 함께 쓰고 읽고 그러고 살고 싶다.

수다를 떨고 싶고 따뜻해지고 싶은 날이 오늘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지글지글 소리가 난다.



2021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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