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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킴 Apr 10. 2024

Total Eclipse, 개기일식을 보다 -2

지성이면 감천

(1편에서 이어)



드디어 일식이 일어나는 날.
텍사스 달라스에서는 오후 12시 23분부터 일식이 시작되어 1시 40분에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린다. 개기일식은 4분 남짓 이어지고 1시 44분경부터는 다시 달이 반대쪽으로 이동, 태양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걷어 하늘을 확인했다. 하얬다.
하늘이 왜 하얗지?....
파란 것도 아니고, 파랗고 하얗고-도 아니고 그냥 새~하얬다. 재빨리 구름 커버리지 확인. 다시 90프로가 넘게 치솟았다. 젠장.. 저 하얀 게 다 구름이구나.

자, 남편, 이리 와. 다시 한번 춤을 추자. 펄쩍펄쩍. 우리의 염원에 보답하듯 구름 커버리지는 80%로 떨어졌다. 하늘을 보니 온통 하얀 가운데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보였다. 저 멀리는 꽤 큰 면적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밖에 나가보니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고 변화하면서 그림자가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그림자를 보면서 얼싸안고 기뻐했다. 좋아!! 희망이 있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밖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다. 달라스 다운타운으로 나가서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랬다가 돌아오는 우버를 못 잡으면 어떡하나, 너무 비싸면 어쩌나, 최악의 경우 공항에 늦게 도착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어 그냥 호텔 옆에서 보기로 했다. 이미 어젯밤 사전 답사(?)를 모두 마치고 정해 둔 명당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남편이 미국 서부에서 개기일식을 본 후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인해 비행기를 놓친 적이 있다!)

오늘을 위해 새로 산 삼각대를 설치하고 핸드폰 카메라에 일식 촬영용 렌즈를 붙였다. 이러려고 마스킹 테이프까지 챙겨 온 철저한 나, 칭찬해~ 삼각대를 세워 둔 주차장 옆 잔디밭에는 큰 나무, 야외용 테이블과 벤치가 있어서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딱 좋았다. 어차피 구름이 많이 가리고 있긴 했지만.

구름은 하늘 커버리지가 아니라 우리와의 밀당력이 100%였다. 너무 큰 먹구름이 몰려와 애간장을 태운 것도 잠시, 갑자기 쨍- 하고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맑아졌다가 홍길동처럼 소리 소문 없이 어디선가 나타난 구름이 다시 우리 마음까지 어둡게 했다. 달이 태양의 끄트머리를 가리기 시작한 뒤로 부분일식이 1시간여 지속된다. 그래, 1시간 내내 땡볕에서 지글지글 타는 것보다 차라리 잠깐 그늘도 생기고, 몸도 식히고, 오히려 좋지 좋아. 정신 승리를 해본다. 완전 일식이 시작되고 10초만 선명히 봐도 성공이다.

일식 안경을 끼고 하늘을 보니 해가 서서히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작은 점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태양이 달에 잠식되고 있었다. 한 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상대성 이론을 설명이라도 하듯 시간은 구름이 해를 가린 동안은 느리게, 초달 모양 해가 드러난 동안은 빠르게 흘러갔다.

달이 태양을 절반 이상 가렸을 즈음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해가 쨍하게 떠 있는데도 햇볕이 따갑지 않았다. 해가 뜨겁지 않으니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서늘해졌다. 시나브로 변하는 조도가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내 눈으론 볼 수 있었다. 주변이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주 느리게. 이때부터 나뭇잎 아래로 생긴 그림자도 선명한 초달 형태로 바뀌었다. 나뭇잎이 서로 겹치며 만들어 낸 수많은 틈으로 초달 모양의 태양이 초달 그림자를 그려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가로등이 켜졌다. 어두워져서 저절로 켜진 거다. 스산한 공기가 나를 에워쌌다. 태양은 이제 가장 얇은 초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토탈 이클립스가 시작되는 1시 40분까지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구름도 사라졌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제법 짙은 회색빛 구름이 해를 가려서 마음이 너무 초조했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줄은 정말 예상 못했다. 태양은 얇은 띠에서 점점 위아래가 사라지면서 작은 좁쌀만큼의 빛을 내었다.

그리고 드디어.

암흑.

정말 암흑이었다. 왜냐면 계속 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안경을 쓰고 있다가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린 그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에 도달하는 빛이 완전히 사라졌고, 그래서 일식 안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안경 벗어!

개기 일식이다. 주변은 믿을 수 없이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태양이 새까맣게 빛나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붉게 노을이 물들어 있었다. 오후 1시 40분에 어두운 하늘을 보는 것도 믿을 수 없는데 심지어 노을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개기일식이라면 사진과 영상으로 꽤 많이 봤는데 그간 내가 봤던 건 늘 태양이었다. 그 검은 태양 아래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물론 이론적으로, 어두워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걸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직접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개기일식은 3분 52초 동안 지속됐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초현실.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을 벗어난 것'.
3분 내내 감탄을 연발했다. 우와 우와.. 그 터져 나오는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그저 짧은 감탄사만 계속 내뱉었다. 정말이지 감동이 뻐렁쳤다!!!

달은 그동안 쉬지 않고 움직여 태양과 달 사이에 다시 좁쌀만큼의 틈이 생겼다. 아까와는 반대 방향에서 생겨난 그 틈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막아놨던 댐의 수문을 연 것처럼 빛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다. 정말 작은 틈이었는데도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았다. 재빨리 일식안경을 썼다. 작은 좁쌀에서 조금 더 큰 쌀알로, 그다음엔 얇은 띠로. 틈은 느린 듯 빠르게 커졌다.

덩달아 주위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어두운 것과 완전한 어둠은 한 끗 차이 같지만 실은 천지 차이다. 개기일식이 시작되기 전 서서히 어두워진 것처럼 이번에는 서서히 밝아졌는데, 일식 전에 어두워지던 것보다는 덜 드라마틱했다. 왜냐하면 완전한 어둠에서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극적이었기 때문에.

달이 태양에서 멀어지는 것은 햇빛의 밝기보다 온도로 더 잘 알 수 있었다. 피부가 점점 뜨거워지는 게 굉장히 뚜렷하게 느껴졌다. 습하고 더운 텍사스 날씨에서 땀을 뻘뻘 흘리다가 해가 가려지는 순간부터 4분 간 서늘하게 식은 피부가 다시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몸이 더워지는 것과 동시에 피부가 따끔따끔 따가워졌다. 그 감각이 제법 선명해서, 안경을 끼고 보지 않아도 태양이 많이 나왔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공항까지 시간 맞춰 가는 것도 무리가 없을 거 같고, 그 감흥에서 바로 깨어나고 싶지 않아서 부분일식이 거의 다 끝날 때까지 봤다. 그 와중에 스스로도 조금 웃겼던 점은 개기일식 이후로 달이 태양에서 벗어나는 동안의 부분일식에는 놀라울 만큼 감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도 좀 어이가 없었다. 개기일식 전까지 그렇게 구름을 보내고 치우고 하면서 사람 애간장을 태우더니 개기일식이 끝난 후로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아니.. 제일 중요한 거 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긴 한데, 이럴 거면 그냥 진작부터 잘해주지 그랬어? 이런 마음이랄까.

여하간,
와.. 내가 이걸 봤다.
살다 보니 이걸 보는 날도 오는구나. 역시 열심히 살고 볼 일이다.

부분일식이 진행되는 동안 구름이 너무 많이 끼어서 '그래, 어차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이 경험을 글로 쓰자' 하고 쓰기 시작해서, 버지니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적었다. 감각과 기억이 가장 생생할 때 경험담을 남기고 싶었고, 제법 성공한 것 같다. 이제 막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랜딩, 과격한 착륙의 반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는 오늘의 경험을 간직한 채 다음으로 미국에 개기일식이 돌아오는 2045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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