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준중환자실로 옮긴 건 내가 막 병원에 도착했을 때였다. 휴가 첫날이라 아직 군복을 벗지 못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오늘 아침이었다. 듣자 하니 형은 내가 휴가 전에 싱숭생숭할까 봐 말을 안 했다고 한다. 엄마는 어제 아침 쓰러졌다. 내가 막 구보를 뛸 때쯤. 병명은 뇌경색이었다.
엄마 소식을 형 차 안에서 들었다. 어쩐지 내비게이션이 예상한 도착 시간은 목적지가 집이라기엔 너무 빨랐다. 이내 우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보기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고 두려운 곳이었다. 마침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곳은 1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곳이었다. 나는 다시 오기 싫었는데,라고 중얼거리며 건물로 들어갔다.
침실에 누워있는 엄마는 정말 작았다. 안 본 시간은 단 몇 달이었다. 엄마 이름표가 없었다면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다행히 자고 있었다. 깨어있었다면 또 얼마나 미안해했을지 안 봐도 훤했다. 형은 잠시 이것저것 챙기기 위해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준중환자실은 보호자가 1명 상주해야 했다. 나는 침상 옆 의자에 앉았다.
"토끼... 토.. 끼..."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 옆에 있던 할머니 환자 분의 음성이 들렸다. 간호사는 '튀김'이라는 제시어를 말했다고 한다. 환자는 그 단어를 따라 하면 되는데 그걸 따라 하지 못했다. 손녀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할머니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할머니 튀김이라 셔, 튀김"
"아.. 알아.. 튀김... 허허 뒤.. 김"
할머니는 멋쩍게 웃었다. 뇌경색의 대표적인 증상은 언어장애였다. 간호사는 확인을 위해 일정 시간마다 환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베개에 쓰인 병원 이름이나, 본인의 집주소 혹은 문장을 보여주고 읽게 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이윽고 엄마는 일어났고, 옆에 있던 할머니처럼 간호사가 테스트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환자분, 지금부터 증상 확인을 위해 말을 해보실 거예요. 보고 읽으시면 돼요."
간호사는 테스트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자, 이게 저희 병원 이름이죠? 이건 뭘까요?"
엄마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읽어냈다. 워낙 유명한 병원이기도 했고 단어도 짧으니까.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간호사는 어디서 구했는지 긴 문장들이 담긴 책을 가져왔다. 보기 좋게 스케치북처럼 돼있었다.
"어머니, 이거 읽어보시겠어요?"
"..."
엄마는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간이 찌그러지고 입꼬리는 옆으로 퍼졌다. 엄마가 불편할 때 나오는 얼굴이었다.
"저기, 간호사님. 잠시 이쪽으로.."
나는 다급하게 간호사를 불렀다. 잠시 복도로 나가야 했다. 엄마가 있는 곳에서는 말할 수 없었다.
"저희 엄마가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하고... 첫째 딸이라 학교를 잘 못 나오셨어요... 그러니까 간단한 그림 같은 건 없을까요?"
"아, 네 그렇게 할게요."
간호사는 멋쩍게 웃으며 말하고는 다른 책을 가지러 갔다. 나는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데 놀라우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웠다. 엄마가 글을 모른다는 것보다 나는 대학에 다닐 동안 뭐하고 살았나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밀려왔다. 그리고 살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돈 찾을 때 써주는 단어가 전부였으면 안됐는데.
대신 읽어주기만 하던 우편이 일상이 되면 안 됐는데.
내 전공은 국어교육인데.
<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