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난달 Jun 30. 2020

단편 습작

4

길어진 해는 아직 지지 못하고 서쪽 하늘에 걸쳐 있었다. 그림자는 어지고 우리의 대화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뭐가 될 줄 알았어."


"신입사원이 되긴 뭐가 돼. 들어간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요즘 시대에 돈 벌 수 있는 것 자체를 감사해해야 해. 나 봐 대학 나오고 몇 달을 놀잖아."


"글쎄 그럴까?"


그런 순간이 있었다. 뭐든 될 수 있었고,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 그런 시간들은 어느새 청춘의 약점이 되어 게을러지는 약점을 낳았다. 취업준비생이란 이름으로 차일피일 놀다가 이내 마음이 급해졌다. 여기저기 회사에 다 지원을 하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선택과 집중을 했다.


세상에 수만 가지 직업 중 나는 기자를 골랐다. 나는 기자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 이를테면 정계의 스캔들을 잡거나 세상을 바꿀 만한 특종을 잡아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을 생각하니 뭔가 초라해져 술을 한 잔 마셨다.


"나는 진짜 대기자가 되고 싶었지, 처음엔. 너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는데."


"알지, 나야 지금도 하니까 끔찍하지만."


"어어 그래, 힘내라. 아무튼 근데 뭔가 시시해지더라고."


"그럼 뭐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 뭐가 있나? 세계평화라도 만들려고?"


친구는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하기사 취업준비 같이하던 친구가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조금 뻔뻔하게 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 말은, 후... 내 인생은 여기서 만 65세까지 다니다가 적당히 살다 갈 것 같은 거야. 갑자기 인생의 시시한 끝이 보인 기분이랄까? 결말이 뻔한 클리셰로 가득한 삼류 소설의 끝을 본 것 같더라고."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죽어라 영어 공부하고 글 쓰고, 그 지겨운 한국사니 뭐니 하고, 쓰이지도 않는 컴퓨터 자격증 따고 이랬는데?"


"그래, 불과 1년 전이야. 1년 전. 그때 너도 알잖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데. 면접 준비는 좀했냐. 근데 지금 너무나 정반대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내가 봐도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너무 큰 건을 바라고 산거 아냐?"


"맞아 그러니까 내 하루하루가 조바심이 나더라고."


내 말이 끝나자 무섭게 친구는 내 잔을 채워줬다. 내가 병을 달라는 신호로 손을 뻗었으나 이미 친구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리곤 이어서 말하라는 듯 왼쪽 손을 빙글 돌렸다.


"그러다 보니 기사도 무리하게 쓰고, 데스크에서 까이고 사수에게 털리고. 댓글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 이렇게 사니까 다음 달, 다음 해 나아가 30대, 40대도 못 보겠는 거야. 당장 내일 할 일이 태산인데도."


"음"


친구는 잠시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잔을 비워냈다. 술로 입을 한 번 헹구고는 마치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삼킨 뒤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인생의 의미를 못 찾겠다. 이거지?"


"그렇지"


"하 참, 취준생 앞에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있고만.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니고. 근데 뭐 네가 이렇게 말하는 건 어느 정도 위로도 위로지만, 바라는 답도 있을 것 같고."


"오?"


"철학에서 인생의 의미가 뭘까 이런 질문 많이 하지?"


친구가 말 끝을 흐리면서 반문을 원하는 듯 보였다. 나는 적당히 그렇지, 하고 답했다.


"야, 어떤 질문의 대한 답을 못 찾을 때 어쩌면 그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인생의 의미가 뭘까가 아니라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생각해봐. 둘은 분명 다른 거니까."


그러곤 친구는 본인의 답에 흡족한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안주를 먹었다. 아, 이제 술도 없네 한 병 더 시킨다하곤 이모를 불렀다. 나는 무언가에 쌔게 맞은 듯 멍 때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술자리는 이어졌다. 나도 친구도 두어 병씩 먹으니 취기가 올랐고 말도 어눌해졌다. 우린 대중교통을 타기로 했다. 유난히 얼큰하게 취한 그는 내 어깨에 손을 감싸듯 올렸다.


"야, 그냥 꼴리는 대로 살아. 니 꼬리표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개소리하는 애들 다 족구 하라 그래. 그리고 너는 충분히 괜찮은 놈이니까 이상한 생각 말고. 나는 뭐 철학과 나와서 살릴 전공도 없다야. 그래도 뭐 취준 하는 생활이 막 나쁘진 않다."


친구는 꾸부렁해진 혀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기대는데 어찌나 무거운지 나는 그냥 택시를 타고 친구네로 가기로 정했다. 그날따라 어둠이 짙게 내린 강변북로에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따스하게 보였다. 차들은 한산한 도로 위에서 각자 바쁘게 제 갈길을 갔다. 마치 다른 사람은 상관없다는 듯이.










<내비게이션>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 습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