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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Jul 14. 2020

단편 습작

8

"요즘은 윷놀이도 배달이 된다니까? 볼래?"


A는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외쳤다. 그러곤 핸드폰을 꺼내더니 배달 어플을 켰다. 몇 번의 버튼으로 주문을 마친듯한 A는 "오케이"라며 만족스럽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야, 소주랑 김피탕도 시켰다."


"오~ 센스 넘치는데?"


무리 중 몇몇은 습관적으로 감탄하면서 다른 일을 했다. 이를테면 광 뽑기 같은 것을. 누구는 바닥에서 그렇게 놀았고 누구는 한쪽에서 남는 재료들로 볶음밥을 만들었다. 서울 안에 작은 펜션에서도 일행은 하는 일이 달랐다. 그래도 이제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바삐 살고 있었다.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이번에 애를 낳거나 하는, 누구에게는 당연한 일들을 그들도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1년에 한 번은 모이자는 약속은 점점 지키기 어려웠다. 그렇게 삼십여분쯤 지났을까. 벨이 울렸다. 배달원이 도착했다.


"야 왔나 보다 나가봐"


A의 말에 S가 펜션 현관으로 나갔다. S는 배달원에게 짧게 인사를 한 뒤 내용물을 받았다. 무리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배달원은 자전거를 타고 온 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S가 커다란 봉투에 닮긴 내용물을 받아 벌릴 때 옆에 F가 다가왔다. F는 "어? 뭐야 김피탕은 어딨어? 이거 그냥 피자랑 탕수육이잖아?"라고 크게 외쳤다. 이 소리에 광 뽑기를 하고 있던 A가 현관으로 왔다.


"아이씨, 이게 뭐야. 아 아저씨 이게 뭐예요. 김치피자탕수육이 아니잖아요? 아나..."


A는 기분이 나쁜 듯 한쪽 손을 허리에 올리고 짝다리를 짚었다. 노골적으로 불평하는 말투에서 공격성이 드러났다. S는 "뭐 어때 그냥 먹자"라고 말했고 무리 중 몇몇은 "그래 그러자"라며 동조했다. 오랜만에 모였는데 분위기를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는 멈추지 않았다.


"어이 아저씨? 이거 보여요? 제가 이리 주문했죠? 글씨 몰라요? 다시 해와요. 나 결제 못해요"


"아. 예. 죄송.. 죄송합니다. 어서 다녀올게요"


배달원은 곤란해 보였다. 현관에 서있는 순간이 너무 불편했다. 갈 곳을 잃은 왼손과 배달 주문 알림으로 쉼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쥔 오른손은 퍽 서글펐다. 무리에서 K가 나와 A를 말렸다. K는 그냥 먹자, 뭐 어떠냐 우리가 언제부터 먹을 걸 가렸냐라고 말하기도 했고 대다수가 동조했다. 그러나 A는 멈추지 않았다.


"뭐? 가만히 있어봐. 내가 이야기하잖아. 안 보여?"


A의 말에 펜션 안은 고요해졌다. 그때 탁자 위에서 한 핸드폰이 울렸다. A의 핸드폰이었다. 액정에는 '우리 마누라'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A는 마치 상관을 모시듯 한 손을 입 앞에 가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이내 A 부인의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A는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이때다 싶은 K는 배달원에게 "괜찮아요, 어서 가세요 저희가 잘 말할게요"하고는 본인이 계산하고 황급히 문을 닫았다.


배달원은 자전거를 잡고 골목 밖으로 끌고 나갔다. 등에선 한기가 느껴졌고 그제야 자신의 등이 땀에 절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금요일 밤이 일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오늘은 더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업이 없는 것도 아니니 뭐"라고 중얼거리곤 길거리에 비치된 반납대에 자전거를 놨다. 후, 하고 한숨을 쉰 그는 안전모를 벗어 백팩에 넣었다. 그는 더 이상 배달원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T였다.


자전거 반납대 너머로 택시들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택시 승강장까지는 꽤 멀었다. 마음 같아선 눈 앞의 택시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T는 좀 전에 본인에게 무례했던 그들과 같아질까 두려웠다. T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택시 길을 따라 맨 앞으로 갔다. 택시 문을 열던 T는 내심 택시 기사가 집까지 가는 길에 말을 걸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천호대교를 건널 쯤이었다. 건너편엔 올림픽대교가 우뚝 솟아 있었다. 택시기사는 "실례지만 올림픽을 보셨냐"라는 말부터 "제가 젊은 적은", "당시 대통령은", "지금은 먹고살기가 힘들다" 등등 말을 늘어놨다. T는 처음엔 받아주는 척했지만 슬슬 짜증이 나길 시작했다. T는 대부분의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택시 기사가 "타다"라는 단어를 꺼낼 땐 '이러니까 프리미엄 서비스에 기사와 대화가 없는 항목이 있지'하고 어서 집에 도착하기만을 속으로 빌었다.


대화라고 하기 뭐한 말속에서 T의 핸드폰이 울린 건 다행이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T는 황급히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벨소리에 의한 피해가 남에게 가기보단 순전히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T가 통화할 때 택시 기사는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택시 안은 T의 통화 소리와 카카오톡 택시 호출 소리만 울렸다. 택시 기사는 몇 개의 호출을 거절하더니 장거리 호출에 빠르게 반응했다. 택시는 얼마 가지 않아 멈췄다.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택시 안은 조용했다. 거리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함께 먹는 남녀들의 소리와 취객들의 다툼 소리, 몇몇 식당의 호객 행위로 채워졌다. 택시는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부앙하는 엑셀 소리와 함께 저 멀리 어둠 속으로 흐려져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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