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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Mar 31. 2024

내가 니네 집 개냐고?

55년 만의 반란

 8월 더위도 15일이 지나면 보통 살짝 꺾였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

 이 삼복더위에 우리는 전쟁 연습을 한다.

           


 아마도 훈련 첫날쯤이지 싶다. 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는 대뜸

 “내다! 니 엄마가 뭐에 붉혔는지 밥을 안 해 준다”

라며 앞뒤 아무 설명도 없이 버럭 성질을 앞장 세우셨다.      

 “왜? 왜 엄마가 밥을 안 해 주신대요? 아버지 또 뭔 일 했구나!!! “ 했더니

아버지께선 결코 당신께서는 아무 짓도 안 했고 엄마가 이유 없이 또 성질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버지랑은 이야기를 길게 해도 엄마의 그 화남의 이유를 잡아 내지 못한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 일도 없다.” 그러시는데 목소리 쌀쌀하다.


퇴근 후 서둘러 엄마 집으로 갔더니 아버지께서는 거실 흔들의자를 잔뜩 뒤로 젖히고는 리모컨을 손에 잡고 채널을 바꾸고 계셨고, 엄마는 작은 방에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몸져누워 계셨다. 엄마가 자리를 편 작은 방에는 방문까지 화가 나 있는데 눈치 없는 아버지는 이젠 당신 저녁밥 챙겨 줄 딸이 왔다고 이것저것 주문이 많아졌다. 식탁에 밥상을 차려놓고 아버지가 자리에 앉으시는 걸 보고 엄마한테 같이 먹자고 하니 그 말에는 대답도 없으시고,

“왜 니 아버지는 걸핏하면 니 한테 전화를 하냐?”라고 성질을 내셨다.


저녁상을 치우고 아버지께서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시며 반쯤은 졸고 계시고, 작은방에 엄마랑 둘이서 과일을 깎아 먹으며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일전에 회계사로 일하는 작은 형부가 서해안 어딜 다녀오는 길에 굴비를 먹을 일이 있었는지 어머니 댁으로 그 굴비를 한 두름을 보냈더란다. 한 20마리쯤 되는 굴비를 보고 한 끼에 두어 마리씩 구워 두 노인네가 한 마리씩 드셨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배짱도 없는 엄마는 한 마리를 구워 밥상에 올리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눈치 없는 할배가 굴비 한쪽을 쫙 발라먹고, 뒤집어서는 반대편도 다 긁어 먹고는 생선 뼈에 머리랑 꼬리만 달랑달랑 달아서 엄마 앞으로 접시를 젓가락으로 쓱 밀어 보내셨는데, 그 꼬락서니만 해도 속에서 천불이 살살 지펴지는데 아버지께서 한술 더 떠서는

“이거 쪽 빨아먹고 내삐라”라는 말까지 보태셨다고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앞뒤로 혼자서 다 발라먹는 것도 살살 부아가 날 일인데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생선 뼈랑 대가리를 쪽 빨아먹으라니?

 밥상을 확 엎어버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까지는 못하시고 밥 상위에 있던 접시들을 다 싱크대에 갖다 부어버리고 그동안 속에 숨겨둔 말을 쏟아 내신 것 같았다.      




 울 엄마는 스물에 시집을 왔다.

 시가 동네에서 고개 하나 넘어 사방골이 친정이라 딸 교육 잘 못 시켜 시집보냈다는 소문이 친정으로 건너갈 게 두려워 나름 이를 악물고 조신한 며느리, 좋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을 다 하셨다. 스물에 시집을 와서 시골 생활을 접고 도시로 이사 나올 때까지 매 끼니때마다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밥상을 준비하였으니 당신 입에 생선 살 한 토막이 들어갈 여유가 있었을까?


손이 큰 할아버지께서 오일장에 가셔서 정어리 같은 비린 생선을 한 궤짝으로 사 와도 그중 한 토막이 엄마 몫이 되지 못했다는데 그런 세월이 지나고 이제 영감, 할매 단출하게 받아 든 밥상 앞에서도 생선 꼬리와 대가리만 당신 차지라 생각하니 화가 머리 꼭대기를 뚫고 나올 만큼 화가 나더라는 것이다.

     

아이들 등교를 도와주시러 아침에 우리 집에 와보면 토마토 주스를 갈아 꿀을 타더니 개부터 주더라며, 울 아버지한테 채영이네 가니 주스를 갈아서 개부터 주던데 나는 이 집구석에서 개만도 못하다며, 개가 무슨 밥을 하냐고 이젠 밥 안 하실 거라 파업을 선언하고 머리띠를 묶고 몸져누우셨다.     



 이게 사건의 자초지종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아버지는 아무것도 않으신 게 맞고, 또 엄마는 파업을 선언할 만한 사유가 명확했다.

5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선 대가리나 꼬리만 줘도 잘 빨아먹고 버리다가 이제야 그게 억울하다며 밥상에 올려진 반찬들을 하수구에 다 부어버리고 히스테리컬 하게 구는 할매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나? 그게 그렇게 싫었으면 진즉에 싫다고 말을 하든지, 안 그러면 지금에라도 좋게 좋게 그러지 말라고 생선은 살을 먹는 거지 대가리랑 꼬리를 쪽 빨 아 묵는 건 아니라고 말을 하든지 저래 화를 내고, 밥도 안 한다 파업을 선언하고 굶고 누워서는 어구티를 지고 있는 할매를 할배는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 않나? 아버지 말도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런데 또 엄마 입장에서 보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께서 시집와서 오십 년을 넘게 부엌에서 기어가며 식구들 입을 챙기느라 그 아까운 청춘을 다 보내고, 이젠 남은 건 다 늙은 몸뚱어리와 귀신처럼 몸에 착 달라붙은 식모 근성밖에 없어 억울해 죽겠고, 사위가 보내 준 통통한 굴비를 보고도 선뜻 구워 당신 입에 넣을 생각조차 못 하고 저 얌체 같은 영감 한 끼라도 더 먹일 거라 아껴가며 구워 받친 것도 화가 나고,  

“아이고, 내가 미쳤지, 청승스럽기만 하고 내가 못나서 그렇지.” 하는 넋두리를 도돌이표처럼 하셨다.

자기가 봐도 당신이 너무 더럽게 늙었다는 것이다. 그 청승만으로도 억울한데 영감이라고 둘이, 셋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하나 있는 그 영감이 ‘맛있네 니도 한번 먹어봐라’ 이런 소리 한 번을 안 하는 것은 서운하고, 그런저런 소리 다 치우고 엄마가 먹을 생선 살 한 토막이라도 남겨놓지 않고 생선 한마리를 앞으로 뒤로 돌려감서 홀라당 다 뜯어먹고는 뼈다귀만 휙 던져준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다.

아~ 할매 말이 천 번 만 번, 수천억 번을 들어도 맞다.

얌체 같은 영감 맞지. 맞아….     


그렇게 두 노인네가 싸운 이유를 듣고 이삼일 뒤

24시간 전쟁 연습을 하고 하루 쉬는 날. 55년 동안 생선 앞뒤로 다 발라먹고 대가리랑 꼬리만 빨아먹으라 주는 영감님은 집이나 보시라 떼 놓고 둘이서만 길을 나섰다.

하동으로 길을 잡아 차를 마시고, 구례를 넘어 대통 밥집에 가서 거한 밥상을 받아 오늘은 누구의 눈치도 보시지 말고 맘대로 먹자며 모녀의 여행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에 엄마한테 앞으로 밥상을 준비하실 때 생선도 두 마리씩 굽고, 고기도 엄마 몫까지 넉넉하게 준비하시라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준비해서 김치나 다른 반찬들은 가운데 놓고, 주요리는 따로 접시에 담아서 자기 몫 만 먹는 거로 정하시라고 했다.

늘 아버지 몫을 챙겨줘 놓고서는 아버지께서 당신 몫을 안 남겨놨다고 성질을 내면 아버지인들 좋으시겠냐고? 그리고 얌체 같은 할배가 맞긴 하는데 그래도 아버지 처지에서 생각을 해보면 55년 동안 생선 대가리나 꼬리를 아무 불만 없이 잘 빨아먹어 놓고서 갑자기 그렇게 성질을 내면 아버지께서도 어떻게 적응하시겠냐고, 그렇게 대놓고 흥분하지 마시라는 말씀도 같이 드렸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 이후로도 엄마는 또 여전히 아버지 밥을 챙기고 계신다. 그리고 여전히 생선도 한 마리밖에 안 굽고, 고기 접시도 늘 아버지 쪽에 가깝게 놓여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우리 집이 바꿨다.


생선을 집에서야 자주 구워 먹지 않지만, 밖에서라도 먹게 되면 남편이 생선을 발라서 접시 한옆에 놓아둔다. 장모님 밥상 엎는 걸 봐서 그런지 어째 좀 긴장하는 느낌이 들면서 투쟁은 우리 엄마가 하시고, 그 수혜자는 내가 되는 느낌이다.           


PS 그런 일이 있고 몇 년 뒤 아버지께서는 먼저 돌아가셨고, 이젠 89세가 되신 어머니께서는 생선을 구워 한 마리 통으로 드시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생선 대가리만 빨아먹던 시절보다 뭐 대단하게 행복하시지는 않는 듯합니다. 행복이 생선 사이즈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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