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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n Kim 김희선 Aug 12. 2019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3)

와 진짜로 내가 하프마라톤을 뛸 수 있구나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1)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2)에 이어서...


올해 2019년의 샌프란시스코 마라톤 대회는 7월 28일 일요일이었다. 내가 수십년만에 처음 뛰러 나간 날짜가 1월 14일이니, 6개월하고 2주 만에 하프마라톤을 뛰게 된 것이다.


그날 계속 나랑 함께 뛰어준 번호표


이 하프마라톤 13마일을 뛰려고 몇달동안 매주 주말에 롱디스턴스를 뛰며 한 주에 0.5마일씩 늘려갔다. 3월말에 4.5마일 뛰고 기뻤고, 4월초 처음으로 6마일 뛰고 승리감에 젖었었고, 6월초 10.5마일 뛴 건데, 어느새 꾸역꾸역 13마일이 되었다. 13마일은 3주 전에 한번 뛰어봤고, 적어도 첫 9-10마일 코스는 연습으로 많이 뛰어본 길이라는 안도감이 있긴 했다. 그래도 진짜로, 내가, 정말로, 당일날, 내 발로, 끝까지 뛰어서 완주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안 났다.


레이스 당일은 새벽에 4시반도 안되어서 눈이 똥글 떠졌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오트밀 만들어서 좀 먹고 커피도 진하게 내려서 마셨다. 러닝브라 러닝셔츠 러닝레깅스 러닝삭스를 장착하고, 얼굴과 팔에 선스크린 바르고, 밤새 신경써서 충전해놓은 에어팟과 핏빗도 각각 장착했다. 4마일 8마일 12마일 마크에서 먹기로 한 에너지 찐득이 3개도 챙겨넣고 물병에는 물 채우고 무릎에는 무릎보호대, 눈에는 선글라스, 머리에는 햇살을 막아줄 캡. 처음에는 맨몸으로 나가서 달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 장비와 준비가 마구 늘어났다.


해가 뜨기 시작하는 새벽 6시30분의 레이스 출발 대기선


레이스 시작은 집에서 멀지 않은 엠바카데로 대로 위에서여서 동트는 걸 보면서 걸어서 갔다. 레이스 참가자가 많을때 사람들이 뒤엉키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서, 예상 속도에 따라 다르게 빨리 뛰는 사람들을 먼저, 느리게 뛰는 사람들을 뒤에 출발을 시키는 그룹들을 corral이라고 하던데, 나는 12분+ 미닛마일이라고 써내서 마지막인 Corral D에 포함되었다. 선두그룹보다 20분쯤 늦게 출발. 기다리는 동안 상뽐회 친구들에게 곧 뛴다고 보고했더니 온갖 응원세례들이 쏟아졌다. 


출발을 기다리며 옆에 서 있던 남자의 하얀 운동화 밑창 옆면에
"I can do all things!"라고 매직으로 써놓은 글씨를 발견했다. Yes, I can!

 


처음 1마일은 정말 슬렁슬렁 뛰며 (12미닛마일 후반대) 남들이 앞서 가게 나두었더니 2마일째부터는 나를 앞질러 갔던 사람들이 걷고 나는 뛰는 상황이 좀 보였다. 3마일에서 5마일 사이 쯤은 평소 다니던 길이라서 듣고 있는 오디오북의 도입부 내용에만 집중을 하면서 뛰었다. 본래 트레이닝한 길이라 피어39 거쳐서 포트메이슨 쪽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도 아는 길이고 크리시필드로 접어드는 길들도 다 아는 길이었다. 오르막 힘들고 숨차서 남들 걷는만큼의 속도밖에 안나오지만 그래도 뛰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는 것은 알고있는 길. 금문교 바로 밑에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익숙지 않은 길이었지만, 본래 다니던 오르막보다 길긴 길지만 오히려 경사도가 덜해서 괜찮았다.


금문교 앞에서 수줍게 셀카. 이때만해도 표정도 컨디션도 좋다.


금문교 아래를 지나서 베이커비치까지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는 보통때는 차도의 빗물받이 갓길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웅크리고 뛰어야 하는데 오늘은 교통이 통제되어서 신나게 자유낙하 느낌으로 맘놓고 뛰어내려왔다. 마일 8, 베이커비치에서 주택가를 통해서 골든게이트파크까지 가는 길에 별 일 없이 평탄하게 오르막 내리막이 번갈아 있었는데, 구불구불 긴 길을 이번 대회의 공식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마라토너들이 길게 행렬을 이루어 가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와 저들은 벌써 저만큼 갔구나 싶기도 하고.


마일 9과 10 사이에 골든게이트파크에 들어섰는데, 오히려 공원 안에는 녹음 말고는 볼 것이 없어서 심심했다. 11마일에서 13마일 구간이 제일 힘들었다. 특히 12마일이 시작된 후부터 태양을 바라보고 뛰는데다가 덥고 13마일 마크는 절대 나오지 않아서 조금 걷고 싶었다. 있는 모든 대회 공식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계획한 대로 4마일, 8마일, 12마일 마크 쯤에서 에너지젤리를 짜먹었다.


남편이 문자로 알려준 덕분에 가족들이 12.8마일 쯤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골든게이트파크의 지루한 마지막 마일을 돌고 나서 결승선 가기 전 마지막 코너에서 가족들을 발견해서 손을 흔들어 보이곤 더 힘내서 뛰어갔다. 13마일 마크는 왜 그렇게 안나오던지! 피니쉬 라인은 13마일 마크에서 또 왜 그렇게 멀던지!


피니쉬 라인을 지나는데 디지탈 시계가 3시간 9분 48초인지를 가르키고 있어서 무척 당황했다. 매 마일마다 평균 12분 마일대 안으로는 뛴 거 같은데 내가 3시간을 넘었단 말인가 하고. 근데 생각해보니 엘리트 그룹이 6시 30분에 출발했고 우리는 거의 20분이나 뒤에 출발했으니 저 시계에서 20분 정도가 빠지겠구나 싶었다. 당황한 때문에 피니쉬라인을 지나고 뛰는 걸 멈추고서도 조금 있다가에서야 Fitbit 시계를 끄는 걸 기억해냈다. 그래서 핏빗의 마지막 부분 데이터가 좀 엉망이 되었다.


마지막 기록은 좀 엉망이지만 12마일과 13마일 사이에, 프리폴링 한 내리막길 있던 8마일 부분(11:05mm 미닛마일) 빼고는, “Last mile best mile”도 했다 11:40mm. 핏빗/스트라바가 알려주는 나의 기록은 13.57마일을 2:48:39에 들어오고 평균 페이스가 12:25mm이라는 것. 15km, 10mile, 20km에서 개인 신기록을 냈다. 남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느리지만, 멈추지도 걷지도 않고 뛰어서 완주한 것만으로도 나는 신기하다. 10대때도 800미터 오래 달리기를 쉽게 포기하던 내가 이제 그것의 27배를 뛴 거다.


대회 사이트와 스트라바가 보여준 나의 기록들. 남들에 비교하면 느리지만 내 개인최고기록들이 나왔다.



하프마라톤 코스(빨간색)와 첫날 내가 뛴 45초의 거리(보라색) 비교

달리기 시작한 첫날 45초 뛰고 헉헉 죽는 줄 알았던 내가 하프마라톤을 뛰게 되었다. 그 날 45초동안 뛴 거리는 위 그림의 맨 왼쪽 보라색 화살표가 가르키는 조그만 점. 하프마라톤 거리와 지도에 놓고 보니 웃음만 난다. 



올해의 레이스 메달들. 연초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첫 하프 마라톤을 완주해서 기쁘고, 당일과 그 다음날을 주화입마로 침대에 뻗어서 보내는 와중에도 다음 하프 마라톤은 더 기록 좋게 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프를 몇 개나 뛰어야 풀 마라톤을 뛸 수 있는가도 찾아봤다. 내가 어느새 왜 이렇게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분석은 4편에 계속....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1)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2)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3)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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