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나를 하프마라톤에 보냈고, 나도 그들을 달리러 내보냈다
달리기는 커녕 땀흘리기 숨가빠지기도 적극적으로 혐오하던 (그렇다! 엄숙) 내가 어쩌다가 하프마라톤을 달리게 된 걸까? 도대체 뭐가 나를 하프마라톤 23.1km를 결국 뛰도록 해주었을까를 계속 생각해보았다.
맨 처음에는 무엇보다도 상뽐회 친구들이었다. 연초에 내가 올해 5K를 두번 뛰려고 한다고 친구들에게 말을 해놓았기 때문에 1월이 시작하고도 한동안 오늘은 나가야지 오늘 오후에는 나가야지 (안나감) 2주나 질질 끌다가도 결국 달리러 나가긴 나갔다. 시작도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체면이 안서니까… 비록 뛴지 45초만에 KO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 45초 KO패를 당하고서 집으로 걸어오면서 내가 얼마나 못 뛰는지가 웃겨서 같이 웃자고 자학적인 유머로 친구들에게 공유를 하고 같이 챗방에서 한바탕 웃고 떠든 것이 애초에 재미있었다. 나의 터무니없는 모자람과 부족함을 일단 친구들에게 드러내놓고 나니까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그러고나니, 얼마나 뛰든 뛰기만 하면 친구들이 잘했다 잘했다 해줬다. 느리게든 걷다뛰다든 여튼 계속 길에 나서기는 하게 된 것은 뛰고 나서 친구들에게 나 뛰긴 뛰었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우쭈쭈는 달리기 혐오자도 달리게 합니다.
친구들 중에 풀 마라톤을 왕년에 달려본 유경험자가 둘 있어서 구비구비에 조언과 격려를 많이 받았다. 대회에 나가기 전 친구들이 알려준 대로 맨 처음에 너무 신나서 달려나가면 나중에 힘들어져서 안된다는 걸 알았고, 10K를 일주일여 앞두고 두 발볼에 다 물집이 생겨서 터졌을때나 하프를 몇 주 앞두고 발톱 밑에 피멍이 들었을 때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친구들이 이런저런 걸 일러줬다. 그런 정보도 너무 좋았지만, 정보보다도 더 좋았던 것은 친구들이 나의 트레이닝 과정을 함께 즐겨준 것이었다. 뛰고 나서 뛴 데이터가 나오는 핏빗이나 스트라바 스크린샷을 공유하면 같이 보고 즐거워해줄 친구들이 있어서 (비록 챗방 응답은 실시간이 아닐지라도) 뛰면서 외롭지 않았다.
외롭지 않다는 정말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였다. 러닝 팀이나 그룹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할만큼 달리기에 자신도 없고 내가 진짜 뛰리라는 커밋먼트도 없어서 혼자서 조금조금 뛰어보는 걸로 시작했다. 여러 사정상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할 수 밖에 없는데다가, 내 속도랑 비슷한 한심한 초보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찾는 것은 더 힘들 것이었다. 그런데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거다. 직접 뛰지도 않는 내 친구들이 실제로도 아니고 랜선으로 챗방에서 보는 내 달리기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고, 같이 기록 트래킹을 해주고, 응원하고 대회날을 챙겨줬다. 여행 가 있는 동안에도 장거리를 뛰면서 코스 곳곳의 사진을 공유하면 다들 같이 좋아해줬다. 마냥 신기했다.
시간을 두고 아주 조금 더 빠르게, 아주 조금 더 오래 달리게 되었지만, 그래프가 늘 오른쪽 윗쪽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이유없이 뛰는 것이 다 부질없어진 슬럼프도 있었고, 감기에 걸려서 며칠이나 꼼짝 못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남보다 너무 느린 속도라 속상해서 뛰러 나가기조차 싫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평소의 리듬을 깨고 좀 길게 쉬다가 보면 도로 뛰러 나가는 것조차 무척 에너지가 들고, 뛰어도 평소랑 다르게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리듬이 파삭 깨졌을때 회복탄력성을 도와준 것도 내 경우는 친구들이었다. "괜찮다"고 "좀 쉬었다가 다시 따라잡을 수 있다"고, "이제까지도 잘 해 왔으니 계속 꾸준히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 자신에게서 짜낸 것만이 아니라 친구들에게서도 받았더니 효과가 배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조금이라도 뛰었을때 "잘한다" "대단하다" 해준 것도 친구들이었고, 내 생전 처음으로 "지구력이 있다" "꾸준하다" 소리를 해준 것도 이 친구들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한다 해놓고 안하면 면이 서지 않아서 뛰기 시작했고, 처음 뛴날 내가 얼마나 못 뛰는지 웃겨서 친구들에게 공유를 했고, 뛰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뛰었다 공유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뛰었다. 근데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뛰는 것 자체에 대한 재미도 알게 되었다. 귀에 에어팟을 꽂고 재미있는 책을 오디오로 들으면서 뛸 수 있는 거리를 늘리려고 준비해서 나가는 것이 2시간짜리 휴식처럼 느껴지게 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결국은 의지라는 것의 종착역은 그것인 거 같다. 내가 스스로 그 일에 재미를 찾아내는 것. 근데 의지력이 빈약한 내가 달리기에 재미를 찾는데까지 가는 길에 이번에 제일 크게 도움을 받은 것은 친구들과의 사회적인 상호작용이었다. 이게 너무 당연하고 간단한데도 또 너무나 마술처럼 작용을 해서 여전히 신기해 하고 있다.
난 여전히 남들에 비해 속도도 느리고, 8월말의 12K, 9월초의 하프마라톤, 11월 초의 하프마라톤을 잘 뛸 수 있을지 아직도 긴가민가 싶지만, 그래도 달리기라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서 삶이 2019년에 조금 더 풍요로워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빈약한 내 의지력에 기대는 대신에 친구들의 서포트에 "의지력을 아웃소싱" 할 수 있었던 것이 있다.
나중에 들으니 내 친구들 중에서도 달리기에 젬병이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고, 어째저째 엉터리로라도 계속하고, 레이스들도 나가는 걸 보고 자기들도 달리고 싶어진 친구들이 있었다. “희선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게 나의 고군분투가 조금이라도 영감이 되었다니 너무 행복하고 뿌듯하다.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1)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