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괜찮은 남자 동료에게 소개팅을 해 주고 싶다며 내게 괜찮은 여성을 수소문 하자 불현듯 스친 아이. 내 예전 직장 후배였다. 그녀는 바쁜지 한참만에 숨을 헐떡이며 전화를 했다.
연애를 하고 있는지 여부를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소개팅을 해 보라고, 너무 아까운 자리(?)라고 한 나였다.
왠지 모르게 예전부터 연애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소개팅을 할 수 없게 돼 아쉬워하면서도 들떠 있었다.
"혹시 이미 누가 있어 결혼하는 거야?"
성미 급한 난 혼자 너스레를 떤다.
곧 특파원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것도 아주 어려워하며.
"와.... 정말? 너무 잘된 거 아니야?"
너무 어렵게 말을 꺼내는 그녀의 그 머뭇거리는 몇 초 때문에 나는 그녀가 파견 나가길 싫어하는 것인가 싶다가 이내 "진짜 결혼할 사람 있구나!"라며 선수 치듯 그녀의 말을 낚아챘다.
고민하다 결국 큰 결심을 하고 떠난다는 그녀, 부러움과 기특함 그리고 뭔가 아쉬움 맘도 솔직히 들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놀랍게도 축하하는 기쁜 마음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난 분명, 임신 때문에 일을 놓게 됐으니 남편 탓을 하고 싶어야 하고, 나 스스로 내린 결정임에도 배 아파야 정상일 거라 생각했다.
"와~~ 축하해. 왜 그런 걸 고민했어. 당연히 가야지! 소개팅은 마흔 넘어서 해도 돼! 너무 잘됐다.아~부럽다~~ 진짜, 대박 멋지다 너!"
그녀가 머뭇거렸던 몇 초... 예상치도 않았던 나의 진짜 축하.
나는 꽤 솔직했다.
정말 부러웠고, 정말 축하했다.
그제야 그녀가 편하게 속사포처럼 고충을 얘기했다.
그렇다. 그녀는 내 직속 후배였다.
그녀의 입사는 내가 타 부서로 가길 원했던 기자 초년병 시절, 나를 대체할 사람이 추가로 필요해 특별히 채용한 경우였다. 나와 그녀는 항상 다른 부서에서 비슷한 일로 서로 보완하고 또는 일을 서로에게 떠 넘기며(?) 지내왔다.
정말 일을 서로에게 '떠 넘기며' 지내온 게 맞다. 둘 다 일이 너무 많았으니^^
회사 내에선 우리를 이상하게 경쟁구도로 묶었지만 그녀의 고운 인품은 선배인 나를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와 나의 업무는 구분과 경계가 비교적 꽤 명확했고, 또 서로의 입장과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잇따른 유산으로 임신을 위해 일을 그만뒀어야 했고 거의 모든 걸 손에서 놨다.
조금만 더 있으면 특파원으로 갈 것 같은데 왜 아깝게 회사를 그만두냐는 동료도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얼른 아이를 갖고 다시 복귀하라는 동료도 있었다.
나는 어떤 경우든 그저, '임신·출산'과 '일'을 두고 선택해야만 하는 그 상황이 많이 속상했다.
하지만 나는 말뿐일 수 있지만 '다시 돌아오면 기꺼이 받아 주겠다'는 회사의 배려심을 위안삼아 노트북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만 3년 전의 일이다.
퇴사한 지 1년, 2년 지나면서 회사 특성상(한 특파원이 장기 파견) 언제 그 순서가 돌아올지 모르지만, 해당 국가의 차기 특파원 예정자에 대한 하마평에서 나의 이름은 당연히 빠지게 됐고, 자연스레 그 자리는 그녀가 채우게 됐다.
그럼에도 나는 더 건설적이고 간절한 걸 선택했다는 위로를 수시로 내게 하면서 또 그 아쉬움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그녀에게 직접 특파원으로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퍼뜩 든 생각.
'나는 정말로 성장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난뒤 가장 나를 두렵게 한 건, 성장하지 못하고 퇴보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긴장하며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을 뒤로하고, 몸은 느슨하지만혼이 빠지는 육아의 세계에 발을 넣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예상보다 출산,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지도 않았고 예전에는 없던 심리적 여유가 생겼던 것 같다.
분명,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내내 포기하고 돌아선 그곳이 신경이 쓰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 ' 그렇다면 저 자리는...' 이라며 그 후배뿐만 아니라 티브이에 나오는 동료 기자들을 보면서 속이 쓰렸다.
'내가 저 자리에 나가 있어야는데, 티브이 화면 밖 우리 집 거실 소파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싶을 때 말이다. 거기에 아이가 내 머리카락을 비비비 꼬며 '뽀로로'나 '코코 멜론'을 보여달라고 조를 때면 더더욱 속이 시끄러워진다.
그런데 오늘 조심스레 특파원 파견 소식을 전하는 그녀에게 왜 그리 미안하고 또 웃음이 나오고, 속으로 '정말 축하해 뭐라도 챙겨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가득했던 이유는 뭘까.
그녀는 나처럼 취재현장을 누비며 언론 경력을 닦진 않았다. 주로 외신 에디터로 해외발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그에 맞는 우리의 기사를 발굴했다. 국제파트를 맡고 있기에 가능하기도 하지만, 또 그중에서도 단연 훌륭한 기사를 뽑아내 후배지만 배울 점이 많은 기자였다.
하지만 분명, 파견을 앞두고 필드 경험이 많지 않아 걱정이 두려움으로 변해 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오지랖을 가동해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싶노라 말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사실 누구에게 부탁을 할 수도, 현지에 가서 타사 기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부분이라 답답했다며 선 듯 내 도움을 받고 싶다 했다.
'감사하다'.
후배에게 아직 줄 것이 있어 행복한 선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그런 식으로라도 기자임을 느끼고 싶은 것인지도.
맨땅에 헤딩할 후배가 짠하지만, 헤딩을 하더라도 조금 도움 될만한 헬멧 하나는 출국 캐리어에 넣어주고 싶은 것뿐이다.
'나 때는 말이야~'라며 꼰대 선배가 될까 봐 좀 걱정이긴 하지만, 그녀에게 기죽지 않을 당부 몇 가지는 전해주고 싶다. 그건 같은 시간대 같은 고민을 가지고, 남들이 경쟁자로 치부해 버릴 때조차서로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대해준 동료에게 전하는 내 사랑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아무리 그 나라를 잘 알아도 타사 선배들의 내공은 따라가지 못해. 하지만 너만이 할 수 있는 게 분명 있어. 지역 전문가로서의 네가 할 수 있는 거 말이야. 그렇지만 처음 한 달은 넌 아무것도 못할지 몰라. 경험이 없으니. 내가 준 노하우는 그 한 달짜리야. 잘 버티기 위한 한 달짜리. 그 시기가 지나면 너는 너 다운 기사를 쓸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