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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Jul 21. 2021

편견을 마주하다

[다운 천사 꿈별 맞이]


꿈별이를 만난 후,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편견을 알아차리게 됐다. 


제일 처음 마주한 건 장애 혐오와 동정이었다. 태아에게 장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아이를 포기하길 권했다. 장애는 곧 불행이라고 여기기에, 기다리던 둘째의 생명의 가치보다 비장애라는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으면 가난해질 거라는 말도 들었다. 임신 초기에 유산 위험 때문에 보험에 일찍 가입하지 않았는데 기형아 검사 결과 고위험군이 나오자 태아 보험 가입이 거절됐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하지만 수시로 대학병원에 다니며 검사를 받고 재활치료도 수년간 받아야 하기에 의료비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여유가 있으니까 낳을 수 있는 거지, 가난하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지인도 있었다. 키우던 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장애가 생긴다고 아이를 버릴 것 같지는 않은데, 배 속에 있을 때는 생명을 포기해도 된다고 말하는 게 슬펐다. 빈곤 혐오, 가난에 대한 공포도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았다.



꿈별이를 낳은 후 아이의 장애에 대해 SNS에 알리자, 갑자기 연락을 해오는 사람이 늘었다. 힘내라는 응원은 고마웠지만, 몇 년 만에 연락을 해서 동정하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났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갑자기 내가 더 열등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이는 걸까? 구하지 않은 조언을 하거나, 과한 연민을 표현하는 값싼 동정에 구역질이 났다. 내 SNS 게시물에 기분 나쁜 댓글이 올라와서 대꾸를 하지 않고 삭제했더니 따로 연락을 해서, “안 그래도 아픈 아이 키우기 힘들 텐데 그렇게 삐딱해서 어떻게 살려고 하냐”며 내 성정이 꼬였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꼬이고 삐딱한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장애를 아픈 것과 착각할 만큼 이해가 부족하고 무례하면서 스스로 인지조차 못하는 사람이다.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었다. 꿈별이 장애를 알기 전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까지는 축하 인사도 건네던 사이인데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라고 이야기한 후에는 깜깜무소식이 된 사람들도 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렵고 불편했을 수 있겠다고 이해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지만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병원 뒷바라지를 하느라 힘들고 지쳐서 나도 사람을 피하게 됐고, 그 덕에 꿈별이를 낳은 후 인간관계가 많이 정리되었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장애를 가진 내 아이, 그 아이를 돌보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신경 쓸 만큼 에너지와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에, 알아서 떠나주니 고마웠다. 대신 내 옆에는 “장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너와 아이를 응원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해줘.”라고 말하는 사람만 남았다. 내 첫째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둘째를 응원하고 축복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좋아하던 사람이 장애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어 실망하기도 했고, 한결같이 나를 대하는 사람을 보며 감동받기도 했다.



장애 혐오는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 장애인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는 극단적인 혐오가 아니더라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비장애인처럼,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는 양육자의 노력도 어떤 의미에서는 장애 혐오다. 염색체 이상을 가진 아이들을 주로 진료하는 유전학과 의사가 아이가 좀 크면 다운증후군 특성이 드러나지 않게 성형을 해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애를 가려야 하는 것, 극복해야 하는 무언가로 보는 것도 혐오의 일종이다. 있는 그대로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비장애인처럼 되려고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양육자 밑에서 자라는 건 아이에게 존재를 부정당하는 힘겨운 일일 수도 있다. 



누구보다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건 나라는 뼈아픈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운증후군인 경우 대부분 지적장애를 동반하기에, 나는 아이가 ‘바보’일 거라고 ‘멍청’할 거라고 생각했다. 발달이 느려서 누워만 있던 아이가 마침내 혼자 앉고, 옷을 입고 벗을 때 협조하자 친정 엄마는 “우리 꿈별이 천재인가 봐!”라며 칭찬하셨다. 나는 고래가 한 살 때 하던 행동을 이제야 하는 건데 뭐가 천재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재활치료실에서 치료사 선생님들이 꿈별이가 인지가 빠른 것 같으니 언어 치료를 빨리 시작하라고 조언하셨을 때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냥 하는 입바른 소리라고 여겼다. 고래는 두 돌에 완벽한 문장을 구사했기에 돌 즈음 엄마, 아빠를 말하는 꿈별이의 언어 발달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했다. 치료실에서 걷기 연습을 할 때 치료사들이 꿈별이 많이 늘었다고 말하면 나는 “꿈별이보다 늦게 태어난 다운증후군 아이들도 다 걷던데요 뭘”이라며 폄하했다.  



배 속에서부터 우량아에, 말도 빠르고, 발달도 영유아 검진이나 육아서에 나오는 그대로, 오히려 더 빨리 해나가는 고래를 키웠기에, 나는 꿈별이의 작은 성취를 온전히 기뻐하고 축하하지 못했다. 사사건건 고래와 비교했다. “누나는 안 그랬는데 너는 왜 그러니”라는 말이 수시로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꿈별이가 고래 장난감을 뺏거나 고래를 깨물면 혼내는 대신 고래에게 “네가 피해. 꿈별이는 아직 몰라”라고 말하곤 했다. 꿈별이를 훈육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꿈별이는 원래 느리니까, 다 아는 고래에게 이해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던 중 꿈별이가 세 살이 되어 전국에 하나뿐인 다운복지관의 영유아 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와 함께 두 시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다운증후군 아이의 발달과 재활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이를 관찰하며 분기별로 상담을 통해 양육에 도움을 주신다. 영유아 교실에서 집에서 하던 대로 꿈별이와 놀아 주고 간식도 먹여 줬다. 소화기가 약하게 태어난 아이라 아직 죽을 먹고 근력도 약하기에 따로 숟가락질 연습을 시킨 적이 없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준비해 간 숟가락에 과일 퓌레를 올려서 먹여 주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가까이 오시더니 꿈별이 손에 숟가락을 쥐여 주셨다. 선생님이 꿈별이 손을 감싸 쥐고 몇 번 숟가락질을 알려주자 꿈별이가 자기 혼자 힘으로 숟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깜짝 놀라자 선생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 생각보다 빨리 자라요.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요.”



아직 분유를 먹던 다른 아이는 집에서 늘 엄마 품에 안겨서 받아만 먹었는데 복지관에서 두 손으로 젖병 잡는 연습을 몇 번 시킨 후로 직접 잡고 먹기 시작했다. 물을 싫어하던 꿈별이도 물통을 손으로 잡고 입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숟가락과 포크를 제법 잘 다루게 됐다. 복지관 선생님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는 아이가 마냥 느릴 거라고 생각해서 시기에 맞는 자극을 주지 않고, 많이 클 때까지도 어른이 다 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우리 아이들을 제일 안 믿어 주는 사람이 엄마예요. 편견이 제일 많은 사람이 장애 부모라는 말도 있어요.”



내 얘기였다. 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꿈별이는 아직 숟가락질을 못할 거라고, 아직 물병을 잡고 먹을 수 없다고, 아직 서지 못한다고, 아이가 느린 걸 수용하는 척하면서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고 꼭 필요한 교육도 미루고 있었다. 비장애인처럼 커야 한다고 아이를 몰아세우는 것도 장애 혐오지만, 발달장애인이니까 다 못할 거라고 여기고 기회조차 주지 않는 행동도 엄청난 장애 혐오였다. 



발달 상담을 하면서 첫째와 꿈별이의 마찰에 대해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한 번 더 따끔하게 충고하셨다. 꿈별이에게 누나 물건을 빼앗거나 아프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정확히, 단호하게 알려주셔야 한다고. 느리니까, 모르니까, 하면서 장애아의 잘못된 행동을 훈육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기관에 다니고 진학을 했을 때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고, 그런 문제 행동이 아이를 고립시킬 거라고 하셨다. 사실 고래에게 “네가 피해”라고 말을 하면서도 나는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자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꿈별이가 날 깨물 때 “엄마 깨물면 안 돼!”라며 혼을 내긴 했지만 진심으로 그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텐데,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나는 꿈별이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훈육 대상조차 못 될 거라고 무시했던 거였다. 이대로 아이를 키우면 ‘문제 행동’을 해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그래서 마땅히 기피를 받아도 되는 대상으로 만들 수도 있겠구나,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훈육을 한다고 해도 꿈별이가 바로 알아듣고 고치지 않을 수도 있다. 계속 다른 사람을 깨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역할은 계속 알려주는 것이다. 장애가 없는 아이에게라면 당연히 했을 훈육을 똑같이 하는 것, 그게 내 역할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면서, 못 알아들을 테니 당연한 훈육조차 하지 않던 나는 얼마나 기만적이었던가. 



아이 키우기가 힘든 건 가장 감추고 싶던 내 바닥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방법으로 아이는 어른을 키운다. 꿈별이는 내 안의 무수히 많은 편견을 마주하게 한다. 아직도 다 깨닫지 못한 편견이 내 속에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부끄럽고, 때론 아프지만, 꿈별이 엄마로서 평생 내 안의 편견을 마주하면서 살 것이다. 편견을 만나는 기회가 꿈별이가 내게 준 무수히 많은 선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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