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엄마의 삶이 두려운 당신에게
나는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엄마'하면 나도 모르게 희생, 헌신, 외로움, 우울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엄마는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했다. 존중은 커녕, 엄마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엄마의 역할과 노력을 업신여기는 풍토가 만연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될 자신도 없었고 되기도 싫었다. 엄마로 사는 건 왠지 좀 폼이 안난다고나 할까. 엄마가 되면 곧바로 비주류로 밀려나버릴 것 같달까. 아무튼, 엄마가 되는 건 그저그런 별 볼일 없는 인생의 동의어쯤으로 여겼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나는 속으로 외쳤다.
엄마가 되지 않을거야
엄마처럼 살기 싫어!
다 커서는 "절대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다. 나의 엄마가 오직 자녀 인생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헌신적인 엄마도 아니었음에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엄마가 되는 것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엄마에 대한 나의 거부반응은 결혼 후에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식을 올리니 회사 사람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물어왔다. 아이를 낳을 거냐고. 언제 낳을 거냐고. 얼른 가져야 되지 않겠냐고. 나는 대답했다. 천천히요. 아직은 계획 없어요.라고.
이상한 일이었다. 내 입에서 결혼 전처럼 "아이는 안 낳을 거예요."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특별히 심경의 변화랄 것도 없는 시간들이 흘렀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나날들이. 그러다 어느 순간, 말그대로 문득, 아이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보다 내가 더 아이를 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엄마가 될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쯤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되는 상상을 한 것이. 카페에 가도 백화점에 가도 유모차를 미는 아기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보며 엄마가 된 나를 상상하곤 했다. '엄마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그러자 주위 엄마들의 삶이 뭉게구름처럼 떠올랐다. 나와 동생을 키운 우리 엄마의 삶, 먼저 출산한 친구들이 들려줬던 경험담, 학부모가 된 회사 선배의 카톡 메시지. 하나같이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먹구름이었다. 곧 천둥 번개가 칠 것 같았다. 다들, 아이가 있어 힘들고 외롭고 지친다고 했다. 모두들 엄마가 되니 불행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로서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엄마가 되는 것이 두려워졌다. 불안했다.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이런 나의 감정과 반비례로 아이는 점점 더 간절해졌다. 나는 엄마가 될 각오를 해야 했다. 첫 링 위에 올라가는 신인 복서의 마음으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한 것처럼, 나를 버리고 아이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엄마의 삶이라는 것을.
감사하게 아이는 원하는 시기에 나에게 찾아왔다. 내 품에 작은 생명체가 팔딱팔딱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만한 행복감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배가 불러올수록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은 때야"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져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정말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 나를 지워야 하는 거구나. 그래, 그래도 아이가 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겠지. 아이와 함께 어려움도 잘 이겨낼 수 있겠지' 하면서.
열 달 동안 내 품에 있던 아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동시에 나도 엄마가 되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던 온갖 걱정과 두려움이 무색하게 엄마가 된 후의 내 인생은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흘러갔다. 거친 태풍이 들이닥친다고 해서 잔뜩 겁먹고 집중호우를 대비했는데 예상과 달리 경로를 비껴가 잔잔한 부슬비에 그친 것이랄까. 아이는 기대 이상으로 사랑스러웠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게 차원이 다른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소중하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나는 전혀 불행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과도 다른 면이 많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줬고, 타인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혀줬으며,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아이는 내가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것들을, 가령, 나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 나는 어떠한 성향의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등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기에. 아이는 내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아이는 내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줬다. 엄마가 됨으로써 나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확신이 들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엄마로 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엄마로 살고 싶어 졌다는 것을. 엄마로서의 나도 꽤 괜찮다는 것을. 오히려 전에 없던 내적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혹시 당신도 예전의 나처럼 '엄마'하면 헌신, 희생 같은 단어를 떠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엄마가 되면 무능해지고 불행해질 것 같은가?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공부, 일, 사회적 명성과 지위 등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아 두려운가?
전업 엄마 3년의 여정을 이어가는 입장에서 밝히자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그렇다고 해서 나도 꼭 그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엄마로 산다고 해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엄마의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당신에게 그 어떤 것보다 특별하고 신나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엄마가 되기도 전에 지레 겁먹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혹시 아는가, 당신이 엄마가 된 후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할지.
엄마로 사는 것,
생각보다 근사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