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가 아닌, 자발적 엄마입니다만

엄마가 퇴사하면 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단녀가 되는가

by 엄마 엘리

퇴사.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짜릿한 일탈이자, 먹고사니즘을 충족시켜야 하는 대다수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 같은 말, 아닐까.


누군가는 취업하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그 반대편에서는 퇴사하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사람들의 거센 퇴사 열망을 반영하듯 서점에는 퇴사 관련 책이 주요 진열대를 꽉 채우고 있다. 이쯤 되면 퇴사는 킬러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한 지 싶다.


퇴사를 결정한 이에게 대부분은 그의 앞날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이미 퇴사했다는데 다시 무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거라고,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고 위로하며 (잠시나마) 홀가분하고 짜릿한 자유시간을 만끽하라고 세상 쿨하게 격려한다.


하지만 그 퇴사자가 엄마라면?


그땐 얘기가 달라진다. 보통의 퇴사는 본인의 미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지만, 엄마의 경우에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이 마지막이야', 하고 선언한 퇴사자는 먼저 방탈출을 한 용자가 되어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지만, 엄마의 경우에는 안타깝고 안쓰러운 묘한 동정의 눈빛과 함께 '너도 별수 없구나.', 더 나아가서는 '여자는 이래서 안돼.' 같은 불쾌한 시선이 쏟아지게 된다.




나는 이전 회사에서 역대 2번째로 1년 3개월이라는 긴 육아휴직을 썼다. 회사에서는 내가 육아휴직을 다 채우지 못하고 복귀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 육아휴직을 6개월만 써보고 더 연장할지 말지 결정하라고 권유받기도 했고, 나조차도 내가 1년 3개월이나 육아만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뭐든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이라고 했던가. 막상 아이를 낳으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오로지 아이밖에 안보였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정말 이런 것이로구나 실감했다. 아이를 품고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성애가 생겨났다. 모성애도 점점 더 커지는 것이라 하던데, 나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초월적인 모성애를 발휘했다.


게다가 태어난 아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순둥이였다. 신생아와 함께 지내는 시간들이 예상외로 덜 힘들었고 기대 이상으로 행복했다. 첫 아이를 품에 안은 초보 엄마였지만 육아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 엄마가 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고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졌다. 모든 순간이 감사하고 경이롭고 감동스러웠다. 온 세상이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어쩌다, 갑자기, 뜻밖에! 경단녀


어느덧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한 1년 3개월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마음은 '육아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막상 결정의 시기가 다가오니 회사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아이는 아이고, 그럼 내 인생은? 하는 결정의 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린 터였다. 인생에서 이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직감이 왔다. 이제 아이를 떼어 놓고는 내 인생을 논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회사라고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만에 하나 후회를 해도 내 선택이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남편도, 시댁도, 친정도. 그 누구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간섭한 사람은 없었다. 정말 고맙게도, 모두 다 너의 선택에 맡긴다, 고 했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고민했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나는, 퇴사를 하기로 했다.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그리고 회사에 찾아가 나의 의견을 전했다. 본부장은 물었다.


"그래, 지금은 그렇겠지. 그런데 아이가 다 큰 후에는? 그때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어떻게 자신이 있겠어요? 속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돌쟁이 아이를 어딘가에 맡긴 채 회사를 다니는 것이 더 큰 후회가 될 것임을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행여나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지금은 이 선택이 맞다는 것을, 내가 정말 원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퇴사를 했다. 그러자 한 순간에 '경단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엄마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는 이유로 한 순간에 '경단녀'라는 딱지가 붙게 된 것이다. 단지 아이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퇴사한 미혼 혹은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한테는 아무도 경단녀라고 하지 않는다. 퇴사한 남성 혹은 아빠에게도 마찬가지로 '경단남'이라고 부르지 않고. 뭐, 경단남이라는 단어조차도 없지만.


경단녀라는 말이 무엇인가.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뜻한다. 경력이 단절됐다는 의미 자체가 부정적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자신의 경력이 단절됐다는 의미니까. 물론, 아이로 인해서 그동안 쌓아왔던 경력이 잠시 끊긴 상황이 있을 순 있다. 이런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발생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건 다른 퇴사자들도 다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엄마가 된 후 일을 잠시 쉬는 여성에게 무작위로 '경단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밑바탕에 엄마로 사는 시간, 아이를 키우는 일을 평가절하하는 시선이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게다가, 어쩔 수 없이 경력을 단절한게 아니라면? 엄마가 다신 일을 할 생각이 없다면? 다른 꿈이 생겼다면? 누구나 회사를 다니고 싶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일을 그만두는 엄마를 통틀어 경단녀의 범주에 넣는 것은 또 다른 차별과 편견을 낳는다. 그 시간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수많은 엄마들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각양각색이다. 엄마들도 그렇다.한때 사회적인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엄마로서의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그런 엄마들도 있기 마련이다. 아이를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먹은 엄마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네, 전 기꺼이 애를 키우겠습니다!


엄마들에게 애 키울래? 일 할래? 물어보면 하나같이 일을 한다고 대답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진짜일까? 나는 정말 궁금했다. 3년 동안 엄마로 살아온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네, 전 기꺼이 아이를 키우겠습니다! 라고. 나에겐 일보다는 아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더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일하는 것이 더 낫다는 건가? 난 회사에 묶여있는 시간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졌었는데.


회사를 다닌 다는 것이, 일을 한다는 것이 정말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그렇다면 왜 직장인들은 퇴사를 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일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희생하는 일이지만, 일 하는 것은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라고? 회사를 다니면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몇이나 되겠는가? 회사는 우리의 영혼까지 요구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이는 나의 신체의 일부와 마찬가지다. 그런 아이가 가끔 나의 영혼까지 요구하는 것은, 그래, 인정. 너그럽게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는 뭔가? 생판 남인 데다가 내 영혼까지 갈아 넣어서 내가 얻는 것이 뭔가? 다달이 통장에 스치는 월급? 그 정도로 만족하는가? 나는 내 월급에 한 번도, 단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 나에게 월급이란 늘 짝사랑하는 존재였다. 내가 원하는만큼 나에게 충분히 애정을 쏟지 않는, 내 시간과 젊음과 에너지와 영혼까지 모두 갈아넣어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그런 존재.

자발적 엄마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 엄마로 살고 있다. 아이가 3살이 됐으니, 엄마로도 3살이 된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과장일까. 솔직히 나의 육아 메이트, 어린이집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엄마로서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엄마가 된 후 퇴사는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경력이 단절되었다고 불안하지 않다. 그 일이 내 꿈은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아이로 인해 인생의 휴직기를 가질 수 있어 앞으로 다른 인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이것저것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경험해보고 있는 중이다. 인생은 원래 여러 길이라고 하지 않은가.


나는 '경단녀'라는 말이 싫다. 아이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도 탐탁지 않고, 아이를 위해 엄마가 희생해야 한다는 프레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엄마가 다 일을 원하지도 않는다. 일도 일 나름이고, 엄마도 천차만별이다. 각양각색의 상황이 있는데 엄마만 유독 '희생'의 아이콘이 되는 것이 왠지 좀 부담스럽다.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행복한 엄마도 세상에 많으니까.


그러니 일하다 그만둔 엄마를 더 이상 경단녀로만 보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직접 물어는 봤는가? 어설픈 연민, 동정, 비난은 접어두고 그저 한 개인으로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봐주시라. 엄마도 온전히 엄마의 인생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오죽하면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김지영이 그러지 않았나. "저를 아세요?" 라고.

keyword
이전 01화엄마, 나를 잃지 않아도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