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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Mar 23. 2019

하루 종일 집에 있기 안 심심하냐는 질문

'내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지 않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만 

회사 관두고 집에 있으면 안 심심해?



 예전 직장 동료나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들이 종종 묻는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너무 좋아!' 그러면 '이제 곧 일하고 싶어 질 거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퇴사한지는 딱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회사에 안 나간지는 2년 3개월째.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요즘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하다. 


 공기질은 심각하게 나빠졌고 살기는 한층 더 각박해졌다. 신문을 봐도 뉴스를 봐도 기분 좋은 소식은 찾기가 어려워졌고, 사회 곳곳에 혐오가 범람한다.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화가 나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일상은 더없이 평온하고 화사하기만 하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뾰족한 가시를 무기로 한 고슴도치였지만, 엄마가 된 지금은 보드라운 고양이가 되었다. 외모도 생각도 유순해졌다. 마음이 평온하니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한층 너그러워졌고, 내 새끼가 귀하고 사랑스러우니 다른 아이들도 소중하고 예뻐 보인다. 부모에게, 어른들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어 진다. 때때로 눈물도 찔끔 난다. 전에 없던 이타심이다. 엄마가 된 후, 그동안 나 스스로도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자유시간이 이렇게 달콤했던가 © Unsplash




 회사 관두고 집에 있으면 안 심심하냐고? 전혀. 오히려 심심할 틈이 없다.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그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하루에 딱 한 번 찾아오는 소중한 '자유 시간'이니까. 나를 위한 시간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을 보낸 후에야 깨달았다.


 회사 안에서의 시간은 훠이훠이 쫓아버리고 싶은 날벌레 같은 존재였다. 오전 9시에 출근한 그 순간부터 시계를 노려보며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던 나였다.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어 업무 일지를 쓰듯이 하루하루 스케줄을 짠다. 그날그날의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을 쓰고 체크를 한다. 월말에는 '나만의 월말 보고서'도 쓴다. 그리고 다음 달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계획안도 짠다. 


 작년 연말에는 '연말 결산 보고서'와 '이듬해 인생 기획서'를 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이제까지 2017년, 2018년 두 해의 연말 보고서가 나왔다. 그 누구에게도 '컨펌'받지 않을 보고서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작성하고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하며 공을 들였다. 보고서 작성이 이렇게 신나는 것이었던가. 역시, 사람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에 몰입할 때 신이 나는가 보다.



한 달만 일해줄 수 있을까?



 어느 날 회사를 나와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계신 대표님께 전화가 왔다. 한 달만 일을 할 수 있겠냐며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신 거다. 마음을 써주신 것에 감사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 달이면 얼마 벌 수 있는 거지? 하며 저울질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나의 '시간'을 '돈'과 교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소중한 나의 한 달을 대표든 클라이언트든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내가 세운 2019년 4월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고, 평온하던 내 일상과 영혼은 어질러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노는 즐거움과 시간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다닌 그 시절이 목소리와 두 다리를 맞바꾼 인어공주의 삶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소설가 이혁진의 장편 소설 <누운 배>의 한 구절처럼, 황금 같은 내 젊음을 팔아 알량한 월급과 바꿔먹어 왔다는 것을. 더 이상 존재 자체가 가난해지기는 싫음으로.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 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 이혁진, 누운 배, 301p




시간이, 젊음이, 청춘이, 제일 중요하다 © Unsplash



시간과 돈을 선택해야 한다면,
시간을 선택할게요




 그렇다고 내가 자유시간에 거창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거' 없는 생활일지도 모르겠다. 아침마다 조간신문을 보고 아이에게 들려줄 기사를 스크랩한다. 주 2회 수영을 배우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다.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아이랑 노는 시간을 촬영하고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고, 주 3회 영어 공부를 한다. 이렇게 하는데도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아침에 눈떠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아이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다. 하원 후에는 온전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이를 재우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피곤할 땐 일찍 잠을 청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여기서 나는 더없이 큰 행복감을 느낀다.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많이 줄었다. 이렇게 '자신'에 집중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들로 채우고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아도 마음이 여유롭다. 이것이 바로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인가 보다, 싶다. 남편은 내게 배가 불렀다고 하는데 그 말은 사실이다. 내 배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아주 많이 불러있으니깐.


 나 또한 회사를 관두기 바로 직전까지 과연 내가 '육아'나 '살림'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회사를 관두고 '전업주부'가 된다고 해서 꼭 육아나 살림만 하라는 법은 없었다. 그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고, 선택의 폭도 넓었다. 다행히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은 사람이더라. 그걸 엄마가 된 후에야 알게 됐다. 시간만 더 허락된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니 집에만 있어서 심심하거나 우울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시라. 시간을 쪼개서 쓸 만큼 나름대로 바쁘고 신나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엄마가 된 후, 이제까지 상상도 하지 못한 다양한 꿈들을 마음껏 꾸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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