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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Mar 11. 2019

애 키우느라 퇴사한게 아깝지 않느냐고요?

딱하다는 눈빛은 거둬주시길. 가치 있는 일을 선택했을 뿐이니까.

 독일 태생의 이론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점에 불과했던 작디 작인 생명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내 배를 남산만치 불렸고, 세상에 나와서는 놀라운 생존능력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매순간 나를 감탄시켰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낯선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내가 노력하는 몇 배 이상으로 사력을 다하는 아기와 마주할 때면 경이로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던 휴일의 어느 날, 난 남편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무래도 내가,
하나의 우주를 낳은 것 같아




한때는 커리어 우먼을 꿈꿨으나... © Unsplash



 1년 3개월의 육아휴직 끝에 나는, 아이 곁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가치 있는 시간 될 것이라 확신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 속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었다.


 회사에는 미련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막상 회사에 가서 그만두겠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거다. 회사 입장에서는 임산부 직원의 '편의'를 봐준 것인데, 복귀를 하지 않겠다니 '괘씸'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행여 앞으로 출산휴가를 가야 하는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입장'만 생각하면 아이를 키우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데, '회사'를 생각하니 폐를 끼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법을 어기거나 죄를 지은 것이 아닌데도 알 수없는 죄책감에 흠뻑 샤워를 한 기분이었다. 찜찜했다.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최과장 결정을 존중해.
그치만, 자기 커리어.. 너무 아깝다, 괜찮겠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다다라서야, 직장 상사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상사는 딱히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내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커리어가 끊기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녀는 괜찮겠냐고 물었다. "괜찮겠냐.."는 그녀의 질문, 여기서 나는 순간 멈칫했다.


 내가, 무엇을 괜찮아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질문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이 때문에 힘들게 쌓아온 커리어를 버린 것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였을까? 자신을 희생해가며 아이를 키우는 삶이 네가 정말 원하는 삶이냐고 물은 것일까? 결국에는 너도 또 한 명의 경력을 단절하는 '경단녀'가 되는구나 하는 의미였을까?  




엄마가 된 후 비로소 나는 나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 Unsplash



육아를 선택한 것,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온전히 아이를 키우는 삶'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아이를 키우는 삶 끝에는 분명히 '후회'가 있을 텐데, 그 후회를 네가 견딜 수 있겠느냐고.


  회사 대신 육아를 택하는 엄마들에게는 사회생활을 접는 것에 대한 안타깝고 아깝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그 저변에는 아이만 키우는 전업 엄마에 대한 사회적인 냉담한 시선이 함께 깔려있다.  마치,  '나는 비록 회사는 관두지만 아이만 키우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아이도 키우면서 틈틈이 일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할 거라고요!'라고 항변해야 할 것 같았다.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엄마' 말고 다른 그럴듯한 '무언가' 가 더 필요해 보인다. '엄마' 로만 사는 것은 떳떳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 하다. 우리 사회에서 애만 키운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팔자좋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불로소득은 모두가 꿈꾸는 삶 아닌가, 심지어 엄마는 '불로'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러니까, '엄마'는 무능력과 상팔자, 그 사이 어딘가 쯤에 위치해있는 것 같다.



아이를 낳는다고 저절로 '엄마'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 Unsplash



아이만 키우는 게 어때서요?


 아이는 또 하나의 세계다. 모든 아이에게는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만, 사회는 엄마를 인정하는데 여전히 인색하다. 아니, 실은 엄마라는 존재에 무관심한 듯 보인다. 우리 모두가 엄마의 손에 자랐음에도.


 일하는 엄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엄마'와 '일'이 기본이 되는데 그 역할은 상충된다. 회사나 일에 조금 더 신경을 쓸라치면 아이 대신 '자신의 일'을 선택했다고 질타를 받고, 아이에게 신경 쓸 일이 생겼을 때면 회사에서는 '애때문에 일은 뒷전'이라고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전업 엄마에게는 커리어가 끊기니 아깝다 하고, 워킹맘이 커리어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면 독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삶 중에 엄마도 엄마를 선택했을 뿐 © Unsplash



 아이를 낳는다고 저절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아이가 26개월에 접어든 이 순간 조차도 내가 정말 '엄마'인지,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아이를 키우며, 매일매일 아이를 알아가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여정에 있을 뿐이다. 


 '아이는 엄마 손에서 자라야 한다'라는 사회통념과 '현실적으로 엄마도 일을 해야 가정이 유지된다'라고 하는 반대 의견, 그리고 '엄마로서만의 삶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자아실현을 지속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의견 등등 참으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엄마는 위대하지도 강하지도 않다. 그저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 엄마는 지혜롭기도 하고, 무지하기도 하다. 엄마는 너그럽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하다. 간절히 엄마가 되기를 원한 사람도 있고, 우연히 엄마가 된 사람도 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존재하기도 하고, 엄마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기도 하다. 모두 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엄마'를 섣불리 정의하고 판단하려 드는 태도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아이를 기르기로 결심한 엄마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내는 것도 멈추고서.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있다고 지레짐작하도 말고. 그 엄마의 인생이 초라하고 우울할 것이라 여기지도 말고. 그냥, 한 개인의 결정이라고, 한 개인의 인생이라고 담담하게 인정해주기를. 다양한 삶 중에 엄마도 엄마를 선택했을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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