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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Mar 17. 2019

월요병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엄마가 된 후, 월요일은 가장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직장인이던 시절, 나는 일요일마다 예민한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뜰 때면 묘하게 기분이 나쁘고 코끝이 싸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어느 평범한 일요일 아침이었지만, 그저 '일요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눈 뜬 순간부터 괜스레 예민해지는 것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은 곧,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요일 밤, 흔한 직장인의 표정_불안함을 숨길 수 없다  © Unsplash



 일요일이 된 순간부터 내일이 '월요일'임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 아직 월요일이 오지도 않았음에도 밀려오는 그 불안감과 우울감을 품고 일요일을 그저 월요일의 전날쯤으로 치부하며 생활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기쁘고 신나는 일들을 계획해서 보내기도 하지만, 순간순간 현실을 자각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머릿속에 회사일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정신없는 출근길, 사무실 풍경과 냄새, 나를 기다리는 프로젝트와 미팅, 가자마자 처리해야 할 일 등등 일과 관련된 생각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올라온다. 한번 생각이 떠오르면 걷잡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머릿속에는 '일' 생각들로 꽉 차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싸우자! © 뉴스와이_다음 검색


확실한 월요병 대처법은 회사를 나가지 않는 것뿐



 한 때 '월요일 대처법'이 유행했었다. 뉴스까지 나온 기사인데 두 눈과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뉴스에서는 월요병이 심할 때 일요일에 출근해서 잠깐 일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양 손 입막음을 해도 웃음이 피실 피실 새어 나온다. 


 방송이 나온 다음날, 이 기사 내용을 가지고 회사 동료들과 한바탕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해당 언론사에 '민원'을 제기할 거라고 했다. 백번 양보해서 설사 효과가 있을지라도, 시도해볼 마음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 방법이다. '감히' 직장인에게 일요일 출근을 권하다니. 어떤 박사가 연구해서 논문이라도 쓴 걸까? 그래도 근거가 있으니까 방송에 나왔겠지만. 이 대처법은 비록 많은 직장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월요병'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싶어 하는 그들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것에는 성공한 셈이다. 사실, 가장 확실한 월요병 대처법,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회사를 나가지 않으면 된다. 휴가를 쓰던, 휴직을 하던, 퇴사를 하든 간에 아예 회사를 나가지 않는다면 월요병은 자연스레 치유된다.



엄마로 살며 월요병이 사라졌다  © Unsplash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마가 된 이후에 거짓말같이 월요병이 사라졌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아예 일주일의 개념이 사라졌다. 오늘이 월요일인지, 목요일인지, 일요일인지 구분할 의미도 크게 없었다. 밖에 날씨도 중요치 않았다. 

 

 내가 중요한 것은 오로지 아이가 깨어있느냐, 잠을 자느냐 였다. 엄마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오면서 사회생활을 하며 그렇게도 나를 괴롭혔던 '월요병' 존재 자체를 잊고 지냈다는 것이 더 맞겠다. 어딘가 크게 다치면 살짝 베인 상처 정도는 아프지도 않게 느끼는 것과 비슷하달까. 단순하게 월요 '병'이라고 하니까 아픈 것에 비유하는 것이지, 육아가 회사 나가는 것보다 더 괴롭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의 요는 이렇다. 삶이 변하게 되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도 달라진다, 라는 것.


엄마에게 월요일은 더 이상 괴로운 날이 아니다



 엄마로 살다 보니 월요일은 그렇게 의미 부여할 정도로 특별한 날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니 월요일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됐다. 월요일은 사실 잘못이 없었다. 더구나 아이가 어린이집에를 가면서부터는 월요일은 엄마에게 자유를 선물해주는 고마운 날이 되었다. 이제는 일주일 중에 월요일을 가장 기다리게 되었다. 그야말로 월요일의 대변신이 아닐 수 없다. 미운 오리 새끼였던 월요일이 우아한 백조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 셈이다.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엄마에게도 필요하다  © Unsplash


월요일이라는 자유시간



 '자유', 참 달콤한 말. 회사생활을 할 때 그렇게도 목말라했던 '자유시간'을 엄마가 된 이후 누리게 되었다. 정말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확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있음에 감사하고,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주고 있는 우리 딸에게도 고맙고, 혼자만의 시간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남편에게도 감사하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자유시간임을 잘 알기에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 있다.


 선택할 자유가 생기자 수영을 끊고, 독서를 하고,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영상을 편집하고 글을 쓴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주어지는 '나를 위한 시간'이 제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아이와 기쁜 마음으로 놀 수 있는 힘과 아이의 눈부신 성장에 감탄하며 매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육아도 너그러워졌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는 욕심도 살짝 내려놓게 되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잘 자라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매 순간 아이에게 집중하고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사랑하자'라는 나름의 육아 철학도 생겼다.


 엄마가 된 지 이제 26개월, 점점 더 엄마로 사는 것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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