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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Oct 16. 2019

엄마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일이죠

아이에겐 엄마가 꼭 필요한 시간이 있다

 출산하고 두세 달 정도 지날 무렵이었다. 아기를 재운 어느 날 밤, 남편과 함께 TV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봤다.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아들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던 료타. 어느 날, 6년간 키운 아들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산부인과에서 실수로 다른 집과 서로 아이가 바뀌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료타는 친아들이 살고 있는 가족을 만나지만, 자신들과는 너무도 다른 삶의 방식, 경제적 차이, 집안 분위기 등을 마주하며 각자의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 료타와 달리 유다이는 가진 것은 없지만 다정하고 친구 같은 아버지였다. 당연히 두 가정의 부모, 자녀 관계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서로 상반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속 무뚝뚝한 아버지 료타와 친구같은 아버지 유다이 © 다음 검색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영화 초반부터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만약 우리 아이가 바뀌었다면? 그것도 아이가 6살이 된 해에 알게 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아이와 가정 모두 예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저절로 감정이입이 됐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먹먹한 감정이 올라와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화 보는 내내 거의 대성통곡을 하느라 하마터면 자고 있는 아이가 깨어날 뻔했다.


 내가 가장 슬펐던 부분은 친아들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이었다. 내 분신과도 같은 아이와 6년이나 떨어져 지냈다니. 누워만 있던 아이가 엎드리고, 기어 다니고, 일어서고, 걷는 그 감격스러운 과정을, 옹알이만 하던 아이가 처음 엄마, 아빠를 입 밖으로 꺼냈던 그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니. 함께 하는 그 소중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영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고민 끝에 두 아버지는 자신들의 친자식을 데려와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각자의 가정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서로 자주 왕래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자주 만난 덕분에 아이들끼리도 이미 친해져서 잘 어울려 논다. 그 모습을 보며 료타와 유다이가 대화를 나누다 서로 다른 자녀관에 대한 의견 대립을 보인다. 유다이는 그동안 자신이 료타와 자신의 아들이 함께 있었던 6년이란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고 강조한다. 그러자 료타는 은근슬쩍 유다이의 경제력을 내비치며 말한다.


료타 : 시간이 다는 아닐 텐데요.

유다이 :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에요. 아이들은 시간이라고요.

료타 : 회사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유다이 :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대체할 수 없는 존재. 아이들에게 부모는 그런 존재이다. 많은 이들이 자식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식들에게는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전부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갈망하면서도 때때로 엄마, 아빠의 역할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영화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하고, 엄마, 아빠로서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소홀하게 대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준달까. 정신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중요한 것들은 나 몰라라 한 것은 아닌지. 내가 아니어도 되는 곳에서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엄마도, 아빠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일이다. 엄마와 아빠의 빈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 채워줄 수가 없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엄마, 아빠가 아니면 안 되는 시간들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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