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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Mar 08. 2019

육아가 즐거운 나, 비정상인가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많다는 걸, 왜 아무도 얘기 안 해주었던 걸까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할 때야!



 주변에 임신 소식을 알린 후, 아이를 먼저 낳고 기르고 있는 친구, 동료들이 축하인사 다음으로 많이 해준 말이다. 뱃속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배가 부풀어 오를수록 이 말을 더 많이 들어야 했다. 아이 낳으면 꼼짝할 수 없으니 좋은데 많이 다니고 열심히 놀라고, 엄마를 위한 시간 같은 건 없다고.


 임신의 벅찬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부담감이 엄습해왔다. 불안한 마음이 커지자 온갖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신생아 수면교육에 관한 책, 아이 훈육에 관한 책, 태교, 출산에 관한 책, 여러 출산, 육아 전문가들의 책 등등 부지런히 읽고 또 읽었다. 어디 책뿐인가? 임신, 출산, 육아 관련 다큐도 찾아보고, 카페 커뮤니티에도 들락날락거리면서 선배 엄마들의 생생한 육아 현실도 마주했다.


 알면 알 수록 '엄마가 되는 과정'은 어마 무시했다. 없던 두려움도 생겨날 지경이었다. 독박 육아, 헬 육아, 산후우울증, 임신중독증 등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들이 불행한 것 같았다. 그만큼 행복한 엄마의 모습은 찾기가 어려웠다.

 


정말 아기가 나오면 엄마는 불행해지는 걸까?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런 의문들이 맴돌았다. 그렇다면 아이는 왜 낳은 거지? 그래서 저출산 시대가 온건가? 싶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이를 위하는 마음도 커져서 하루빨리 뱃속의 아이를 만나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도 생겼다. 뱃속의 아기에게는 이 초보 엄마의 불안한 마음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차분한 목소리로 기분 좋은 이야기만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38주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행운이 © 엄마 엘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모유 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출산한 내 몸도 추스르고 하니 정신없이 2~3주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천국이라는 산후조리원을 나와서 아이랑 단 둘이 생활해야 하는 시간들이 막막했다. 그 당시 난 친정, 시댁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산후도우미도 딱히 고려하지 않고 있었기에 아이 아빠가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 온전히 혼자 아기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걱정이 앞섰다.


버겁고 힘들지만
기쁘고 감동적인 순간들도 가득한 육아



 하지만 내 우려와는 달리, 신생아 행운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며 세상에 잘 적응해갔다. 무엇보다 덜 예민하고 울음이 적은 아이였다. 얼마다 다행인지. 아이의 기질에 따라 엄마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하더니 그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행복했다. 아이랑 있을 때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과 환희가 차올랐다. 

 아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순둥이 시절의 채유 © 엄마 엘리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정말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게 되었다. 모유가 잘 나온 덕분에 모유수유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느껴지고, 아기가 잠투정 없이 누워서 잘 자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8년이란 긴 시간을 연애하고 결혼한 남편조차 나에게는 '모성애'가 없을 것 같다고 우려했지만 아이를 낳은 후의 난 그의 생각을 보기좋기 배신했다. 달라진 내 모습에 남편은 낯설어했다. 하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나 스스로도 적잖게 놀라긴 했으니.


 그렇게 하루하루 아이와의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아이의 작은 손짓과 발짓, 눈빛에 반응하니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갔다.



육아가, 이렇게 행복한 거였어?



 타고난 엄마도, 타고난 부모도 없다. 아이와 함께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부모가 있을 뿐이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를 키운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육아를 하면 힘들고 지친 순간들도 수없이 많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니, 이따금씩 엄마 이전의 한 개인으로서 존재는 사라진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볼 때도 있고.



육아는 나를 차원이 다른 행복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 Unsplash



 하지만 우리 사회는 육아의 힘든 부분만 지나치게 부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육아의 어렵고 힘든 면만 강조하고, 혼자 육아의 짐을 짊어진 엄마의 고통 등은 이미 미디어, 출판계, SNS 등의 좋은 소재가 되어 콘텐츠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분위기에 파생된 ‘맘충’, '독박 육아' , ‘노 키즈존’, ‘모성신화' 등 같은 단어는 어떤가. 아이 키우는 엄마를 평가절하하고,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엄마가 육아에 대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기 어렵게 만들고, 육아의 긍정적 가치를 왜곡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세상엔 다양한 엄마와 아이가 존재한다. 주류의 의견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위축될 필요는 없다. 많은 이들이 육아가 힘들고 괴롭다고 성토하고, 엄마로서의 삶보다 여성 자신의 삶을 찾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면 그것 또한 맞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육아가 재밌어도 괜찮아!



 엄마가 된 이후 나는 육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느낌들을 받았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우울한 느낌도, 하루 종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에서 오는 권태도 느끼지 못했다. 정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든 순간들은 있었지만 그저 아이를 키우며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된 이후에 내 삶은 불행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그저 힘들다고 하는 육아에 대해 크게 공감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다. 아이가 태어나서 33개월이 된 지금까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이랑 함께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즐거운데, 육아가 행복하노라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니 괴짜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도 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하다 © Unsplash



 어느 순간 이러한 내 감정을 스스로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육아가 행복이라면,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아이에게 더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즐겁게 놀자고 마음먹었다. 나에게 있어 육아가 제일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진다면, 스스로가 가장 먼저 인정해주자고.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내 인생의 역사로 만들자고 다짐했다.


 어쩌면 나와 같이 육아가 즐거운 ‘샤이 육아맘’들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다들 ‘샤이’ 하지 않았는데 나만 눈치 본 것일 수도. 하지만 엄마로 산 33개월 동안 아무도 내게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행복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아이 키우니 어때? 또 다른 행복이 있지?"라고 묻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이 키워보니 어때? 힘들지?"라고 안부를 전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래서 난 진심을 담아 임신한 후배들에게 말한다. "황홀한 육아의 세계로 온 걸 환영해!"라고. 그러면 그들은 하나같이 "언니처럼 말하는 사람 처음이야, 다들 힘들다고만 해서 두려웠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답한다.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한쪽으로 많이 편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엄마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개성 넘치는 육아 이야기가 더 많이 공유되기를 바란다. 아이랑 함께 성장하며 엄마가 되는 과정에 행복을 느끼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를 희망한다. 환희와 행복의 순간들로 가득 찬 육아가 세상에 더 많이 울려 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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