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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Mar 31. 2019

육아도 소확행이 필요한 이유

‘완벽’을 내려놓으니 소소한 행복이 찾아왔다

  엄마가 되고 나니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내가, 좋은 엄마를 꿈꾸다니? 하루빨리 신생아 돌봄에서 탈출해서 홀가분하게 샤워하고 공들여 화장하고 운동하고 살도 빼서 예전처럼 패션에도 신경 쓰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을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처음엔 나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 Unsplash



 아이는 이미 나의 세계로 들어왔다. 아니, 아이는 어느새 나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아이의 발달상황이 궁금했고, 아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자극과 보살핌을 주고 싶어 육아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클래식도 함께 듣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자주 불러줬다. 어디든지 아이와 함께하며 세상을 구경시켜주고자 했다. 외국어는 일찍 접할수록 좋다고 해서 영어 동요도 들려주고, 때로는 중국어 동요도 들려줬다. 아이는 여전히 누워서 모유를 먹는데, 내 머릿속에는 이미 어떤 학교를 보내면 좋을지 상상하고 있었다.



설마, 아이 인생 설계 중?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눕혀놓고는 기관까지 생각하다니 주제넘은 것 같아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언젠가, 남편에게 '우리 아이에게 꽃길만 걷게 하고 싶어'라고 했을 때 남편이 '최순실이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하고 되물었던 게 생각났다.


 때때로 부모들은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가 좌절과 실패를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는 것은 아닌지.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부모가 나서서 미리 상처 받을 기회를 차단하고 거대한 울타 리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한 육아서에 따르면, 아이가 걷고 말할 수 있게 될 때쯤, 스스로 생각할 힘도 길러진다고 한다. 어쩌면 그전부터 아이는 생각의 힘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돌만 지나도 아이는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표현한다. 18개월부터 36개월 무렵에는 자아는 커지고 있는데 몸은 그만큼 따라와 주지 않아서 떼가 는다고 한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아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는 낯선 세상 속에서 부모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며 스스로 아주 잘 크고 있다.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현명하다  © Unsplash



아이의 성장을 함께하는 이 순간이 바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유독 육아에 있어서 엄마의 책임은 무겁기만 하다. 아이가 예민해도, 밥을 안 먹어도, 버릇이 없어도 열에 아홉은 '엄마 탓'을 한다. 그래서 엄마의 자리는 어렵고 힘들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엄마 스스로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과 책임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보다 엄격해진다고나 할까.


 아이가 갓 태어났을 무렵에는 나 역시 그 무거운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직 제 몸 하나도 추스르지 못했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 순간,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를 내려놓고 아이의 하루하루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내게도 육아가 행복으로 다가왔다. 끙끙대던 아이가 혼자 뒤집었을 때, 무표정했던 아이가 눈을 맞추고 씩 웃어줬을 때, 처음 '엄마'라고 불러줬을 때, '엄마 좋아'라고 표현해줬을 때 등등 아이와 함께한 27개월 동안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은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우리 딸의 엄마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결 가볍고 자유롭게 육아를 할 수 있다면 © Unsplash



 내 자식은 나보다 잘 살았으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더 훌륭한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많은 바람들이 있다. 부모들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런 생각을 밝혔다. 무언가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것을 추구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본래 어떤 것인가’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편이 더 좋다고.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생각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생각도 글도 무거워지기 때문에.



그 어떤 부모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어쩌면, 부모가 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어깨가 무거워지고 힘이 들어가게 된다.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을 느낀다면 부모 노릇을 잘할 자신이 없어진다. 자신감이 없어지면 부모 역할에 흥미를 잃고 예민해진다. 마음에 여유를 잃고 쫓기듯이 육아를 한다면 아이와의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그 어떤 부모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한결 가볍고 산뜻한 기분이 들 것이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지, 아무렴 어때,라고 생각하는 편이 자유롭다. 엄마는 이래야 해, 아빠라면 응당 이렇게 해야지, 같은 마음의 짐이 없으니, 설령 아이가 심하게 울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아이 앞에서 괜찮은 척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 


 좋은 부모, 착한 부모, 부자 부모, 친구 같은 부모, 요리 잘하는 부모 등 수많은 '어떤 부모'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아이 역시 남들이 알아주는 그 어떤 것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는 그 자체로도 빛나는 존재니까. 매일매일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이 우리 아이를 '자신답게' 자라게 해 줄 것이다. 그러한 믿음 속에서 엄마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육아가 가벼워지면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육아에 소확행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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