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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Sep 23. 2019

엄마로 살아보니 좋은 점 10가지

전업 엄마 경력 3년 차, 일상 속에서 느낀 엄마의 장점

 며칠 전, 시청에서 주관하는 학부모 아카데미에 참석했다. EBS 다큐프라임 - 마더쇼크, 파더쇼크, 가족 쇼크 등 쇼크 시리즈로 유명한 EBS 김광호 PD가 <부모 쇼크, 이 시대의 엄마 아빠>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그는 2003년 생방송 60분 부모를 시작으로 10년 넘게 가족 프로그램을 찍으며 과거 세대보다 요즘 부모가 육아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단순히 개인이나 세대 성향 차이가 아닌, '가족 공동체의 해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DNA는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로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오랜 기간 이어오던 가족이 해체되며 조부모, 친척, 이웃 등 여럿이 함께 키우던 육아 공동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사회 구조는 엄마와 아빠 단 둘이 아이를 책임지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부모 역할에 머물고 있어 크고 작은 가족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지금은 육아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부모는 더 불안하고 조급해졌다. 정보를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우리 아이만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다른 아이보다 더 빨리 성장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육아에 있어 부모의 '불안'이 가장 큰 적이라고. 특히 주양육자일 확률이 높은 엄마는 '좋은 엄마' 강박을 내려놓고, '평정심'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편안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을 다르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그중 하나로 "일상에서 엄마로서의 장점 찾아보기"를 제안했다.


 나는 그의 제안이 꽤 마음에 들었다. 자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현재의 상황에서 좋은 점을 찾아보는 것이 현재 나의 만족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니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이 떠올랐다.


 전업 엄마로서 경력 3년 차,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엄마로 살아보니 좋은 점 10가지'를 정리했다.



 


1.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라는 노래를 아시는지. 직장인 시절, 나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 노래의 가사가 머릿속에 맴돌곤 했다.


밤은 깊어 가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잠은 오지 않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새벽이 밝아오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내 몸 상태, 기분, 감정과는 상관없이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하는 나의 아침은 내 것이 아니었다. 출근하는 아침은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생아 시절, 아이는 2시간 간격으로 모유를 먹었다. 아이가 깨서 꼼지락거리는 소리에도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트림시키고 눕혀 재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다음 날 기상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것에 안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 때문에 자고 싶을 때까지 푹 자진 못했지만, 적어도 아이가 잘 때 함께 잘 수 있고 쉴 수 있어 감사했다.


 아이가 3살이 된 지금, 여전히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지각하면 큰일이 나는 회사와 달리, 어린이집은 느긋하게 가도 큰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2. 아이에게 '빨리빨리'란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전업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에게 '빨리빨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해야 할 것, 정해진 것이 없으니 바쁜 아침시간에도 급할 것이 없다. 빨리 하지 않아도 큰 일은 나지 않는달까.


 두 돌이 지나니 아이는 뭐든지 스스로 해보고 싶어 했다. 양말 한 짝을 신는데 5분도 넘게 낑낑대고, 밥을 잘 먹다가 어느새 그릇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기껏 옷을 다 입혀 밖에 나오니 나뭇가지 틈에 쳐진 거미줄을 한참 바라보고, 앵두나무 밑에 열린 빨간 앵두를 직접 따고 싶어 한다. 아이의 속도로 걷다 보면 바로 옆 동에 있는 어린이집까지 20분도 넘게 걸린다.

  

시종일관 아이는 wait! 엄마는 hurry! 를 외치며 일상 속 우리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 영어 그림책 <Wait> © 네이버 블로그 Yummy


 <Wait>라는 영어 그림책이 있다. 출근길에 함께 나선 엄마와 아이. 아이는 공사장도 궁금하고, 지나가는 강아지와 인사도 나누고 싶다. 하지만 마음이 바쁜 엄마는 '빨리빨리'라고 외치며 아이를 재촉한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아야 하므로 아이의 관심에 응할 여유가 없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기 직전, 엄마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Yes, Wait! 출근길에 아이와 바라본 무지개. 엄마도 아이도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육아란 속도와 효율성을 내려놓는 일 아닐까. 가끔은 엄마의 속도를 내려놓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 보는건 어떨까. 조금 느리고 비효율적이어도 괜찮으니까.



3. 어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아이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



  아이와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한 달 살러가는 장소를 보면 주로 제주도, 발리, 치앙마이 등 도심에서 벗어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여유로운 장소가 많다. 이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서가 아닐까.

 


어린이집 하원 후 집 앞 놀이터, 공원 등에서 매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 엄마 엘리



 전업 엄마가 되고 나니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특별히 시간을 따로 내서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매일매일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3,4시에 하원하고 집 앞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정글짐을 올라가고 또래 아이들이랑 모래 놀이를 한다. 비가 오거나 무더운 날엔 집에서 아이랑 함께 신문지를 찢고 책을 읽고 물감놀이를 한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뭘 많이 해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게 되었다.


 아이로 인해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4.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진다



 지금도 수시로 화산이 폭발하고 땅이 흔들리는 아이슬란드에서는 '내일'보다 '지금'에 더 큰 가치를 둔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미래의 꿈이 뭐예요?'라고 묻지 않고, '지금 뭘 하고 싶나요?'라고 물어본단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육아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의 변화무쌍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에 내가 세운 계획은 무용지물이 될 때가 참 많았다.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차츰 앞날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이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아이가 현재 원하는 것에 집중하며 그때그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로서 만족감도 조금은 높아진 기분이 들었다.

 


5.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이 쌓여간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불평불만이 참 많은 사람이었던 내가 육아에 전념하면서 신기하게도 작지만 소소한 행복이 늘어나게 되었다.


내가 저녁에 (대충) 끓인 된장찌개를 아이가 맛있게 싹싹 먹어줬을 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마시는 커피 한 잔

아이가 어제 낮에는 무서워서 포기했던 정글짐에 오늘 스스로 올라갔을 때

엄마 덕분에 참 잘 잤어요, 엄마가 정말 좋아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이가 스스로 친구들에게 자신의 간식을 나눠줬을 때

아이가 10분 정도 뒤척이다 잠투정 없이 금방 잠이 들었을 때

육아서를 읽고 아이에게 실행해보았는데 바로 변화된 아이의 모습을 볼 때

아빠와 놀며 까르르 박장대소하는 딸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아이 재운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


 일일이 쓰자면 몇 페이지도 넘게 쓸 수가 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그 전에는 무심하게 지나갔을 수많은 사소한 일들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내 인생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6. 내 안의 동심을 만날 수 있다


 

 맨 발로 물감을 밟고 손으로 찰흙을 만지고 노래를 들으며 춤을 주고... 언제 이렇게 온몸으로, 오감을 활짝 열고 놀았던가.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도, 나도,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동심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만든 로봇과 아이의 요청에 아빠가 그려준 헐크 © 엄마 엘리


 몇십 년간 잊고 있었던 수많은 동요들의 가사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은 놀이터 미끄럼틀을 타고, 기를 쓰고 피해 다니던 물웅덩이에 발을 담가 장난을 치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와 놀면서 내 안의 동심을 마주할 때면 나도 우리 아이같이 어린 시절이 있었구나.. 우리 부모님도 날 많이 사랑하셨겠지? 새삼 깨닫게 된다. 서서히 마음이 따뜻하고 포근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7.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아이가 1월 생이라 어린이집 입학 시기와 맞물려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었다. 딱 15개월 된 시점이었다. 친정, 시댁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돌이 넘어가니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육아가 버겁게 느껴졌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아이는 활발한 편이었고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칠 때였다. 3주간의 적응기간을 무사히 마친 뒤 아이는 차츰차츰 어린이집에 익숙해져 갔다.


 아이가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할 때쯤, 나는 곧바로 운전 연수를 시작했고 수영을 등록했다. 그동안 소홀했던 내 몸도 돌보았다. 정형외과에 가서 도수치료도 받고, 마사지도 받고, 미용실에 가서 염색도 하고 파마도 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에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아이를 데려왔다. 하원 후 아이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엄마로 살면서 어린이집을 보내니 어린이집은 내게 자유 시간이라는 값진 선물을 해줬다.



8.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처음에는 수영이 시작이었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될수록 점점 더 그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쓰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수영을 하다 보니 몸도 정신도 맑아졌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시간이 주어지니 자기 계발서, 재테크, 소설, 육아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접하며 사색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포기했던 영어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고, 집에서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기도 하고, 아이와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유튜브도 시작하게 되었으며 브런치 글쓰기에도 재미를 붙여갔다. 글을 쓰다 보니 단편 소설, 웹소설 공모전에도 도전하였으며, 지금도 틈나는 대로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있다.


 아이를 낳은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가치관 등이 모두 변했다. 엄마가 되니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느낌이랄까. 우리 아이,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 또 나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들이 쌓이며 해보고 싶은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9.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아진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사고를 갖고 있던 나였다. 손해 보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된 후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진 것을 느낀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우리 아이가 예쁜 만큼 남의 아이, 아픈 아이, 모든 아이가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가 제각각이듯이 아이도 제각각이라 얼마든지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나 같으면 안 그럴 텐데...'가 아닌,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생각이 유연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에,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10.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된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법,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 현재에 충실히 사는 법, 작은 일에 감사하는 법 등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모가 되고 싶어 책도 많이 읽고 스스로 돌아보며 생각도 많이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으면서 나만의 육아 철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예전보다 더 편안하고 나아진 엄마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똑같이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서도 누구는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천지에 감탄하고, 누구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에 불만을 터뜨린다.


 뭐든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하는데, 육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삶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만족감이 찾아오고, 힘든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한 없이 어렵고 괴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일상 속에서의 장점을 찾아보자는 강연자의 제안을 흘려 넘기지 않고 시도한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덕분에 엄마로서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 뼘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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