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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Oct 10. 2019

엄마라는 이름으로 경계해야 할 것

때론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이 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인상 깊게 기억되는 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대화가 귓가에 선명하게 맴도는 날.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법한 일상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날.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올 가을 첫 한파주의보가 무색하게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놀이터를 내리쬐고 있었다. 아이들은 따스한 기운이 스며든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있었다.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아담한 놀이터에는 스무 명 남짓의 어린이들이 있었고, 아이들 수만큼의 보호자가 있었다. 왁자지껄, 복작복작, 소란 소란. 평화로운 휴일 오전의 풍경이 펼쳐졌다.


 아이는 익숙한 그곳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시소, 미끄럼틀, 그네 할 것 없이 즐기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그런 아이를 바쁘게 쫓아갔다. 엄마 미소를 지은 채로 편안하게.


 그때였다. 아이가 시소 근처에서 머물자 다른 엄마들이 나누는 대화가 내 귓가에 꽂혔다. 5~6세의 딸을 둔 엄마들이었다.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동네 엄마들인 것 같았다. 그중 한 엄마는 놀고 있는 자신의 딸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한 번 들린 그녀의 말이 나도 모르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 엄마의 인자한 표정과 다정한 목소리와는 달리, 단정적이고 지시에 가까운 말투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 고정관념에 가까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고 있었다.


 "00야, 시소를 반대로 타야지. 둘 다 같은 곳에 있으면 시소를 탈 수 없어"

 "너네는 여자니까 공주 놀이를 해야지."

 "공주 놀이하기 싫으면, 시크릿 쥬쥬 놀이를 해."

 "네가 언니니까 동생한테 시크릿 쥬쥬 놀이 알려줘."

 "여자 애들은 그렇게 뛰는 거 아니야."

 

 한 3분이 흘렀을까. 정말 잠깐 동안 내뱉은 말들이었다. 우리 딸은 이미 미끄럼틀에 앉아있었기에 더 이상은 그녀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지만, 잠깐 들은 그 내용만으로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이 곳은 공부방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다름 아닌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뛰어노는 놀이터. 이 곳에서조차 그 엄마는 아이의 놀이를 자신이 직접 이끌어주고 싶었던 걸까. 자신의 생각을 아이에게 주입하고 싶었던 걸까. 자신이 더 재밌다고 생각하고, 옳다고 믿는 것들을 딸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언젠가 읽었던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속 한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는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라는 글귀가.


 엄마도 마찬가지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을 한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서, 자녀가 모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부모는 입을 쉬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서 하고 있다고 믿는 부모들의 행동이 어쩌면, 아이 스스로 궁금해하고 생각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가진 잠재력과 기질을 간과한 채, 30여 년 경험한 것이 전부일지도 모르는 부모의 좁은 틀에 아이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엄마의 대화를 곱씹으며 나를 돌아본다. 나라면 우리 딸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아니, 어떤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한쪽에 모두 앉으니 시소가 움직이지 않네? 왜 그럴까?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슨 놀이가 하고 싶니? 둘이 얘기해볼래?


 그러다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이 노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들의 표정을 지그시 바라본 채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우상은 자신의 저서 '엄마 심리 수업'에서 엄마가 아이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믿는 '코칭맘'들에게 이런 조언을 남겼다. 


상상력은 엄마가 키워주는 것이 아니다. 오감 능력도 엄마가 키워주는 게 아니다. 논술 능력, 표현 능력도 마찬지다. 엄마가 해 줄 수 있다는 착각일 뿐이다. 엄마가 아이보다 상상력이 뛰어나나? 오감 능력이 뛰어나나? 가만히 두길 바란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아이 스스로 움직여서 자기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 윤우상, 엄마 심리 수업, 152p


 엄마라는 이름으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경계해야한다.

 

 자신도 모르는 새, 아이에게 편협한 사고를 수혈하고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경험한 세상이 전부인 양 가르치려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촘촘한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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