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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Sep 02. 2019

왜 아이는 잠드는걸 힘들어할까

나는 머리만 대면 3초 안에 잠들 자신이 있는데.

오늘은 아이가 몇 시에 잠이 들까?

30분 안에 잠들 수 있을까?

새벽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을까?


 세 살배기 아이를 재울 때마다 복잡한 마음이 들곤 한다. 아이를 재우는 것은 내 능력 밖,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평상시보다 졸리고 피곤하다고 일찍 잠드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일찌감치 불 끄고 침대에 들어간다고 해서 아이를 쉽게 재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은 겨우 껐지만 그림자놀이를 하자고 한다거나, 암흑 속에서 누워 한 시간 이상 말을 걸거나 키득키득 장난치면서 노는 경우도 다반사이며, 책을 더 읽어 달라는 핑계로 불을 켜달라고 막무가내 떼를 쓰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 밤 기저귀는 떼지 못했으면서도 괜히 마렵지도 않은 쉬를 하겠다고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나가자고 손짓하고, 호랑이가 올 것 같다, 괴물이 올 것 같다, 하며 무섭다고 못 자겠다고도 한다. 더우면 더워서 못 자고, 추우면 춥다고 못 잔다. 등을 토닥토닥 해달 라거나 자장가를 불러달라는 요구사항도 끝이 없다. 오직 아이를 (빨리) 재우기 위한 일념으로 묵묵히 모든 요청사항을 들어주지만 한 시간을 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면 나의 얄팍한 인내심은 곧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감기라도 걸릴 때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잠들락 말락 할 때 야속한 기침이 콜록, 콜록 나와 아이의 고요함을 흐트러놓고, 연이은 기침으로 저녁에 먹은 음식물을 다 게워낼 땐 아이 눈두덩이에 겨우 내려앉은 잠을 내쫓을 수밖에 없다. 토 범벅이 된 아이를 다시 씻기고 옷을 새로 갈아입히고 이불과 베갯잇을 교체한 후 아이를 눕히면 그새 마음이 바뀐 아이는 물이나 우유를 찾기 시작한다. 아이를 재우는 험난한 여정이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를 재우는 일갖가지 변수가 많고 그래서 매일매일 다른 상황이 펼쳐지게 되며, 그러한 이유로 엄마의 계획대로(바람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니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모든 욕심을 비운 채, 그저 오늘은 아이가 빨리, 푹 자는 것을 마음속으로 바라는 수밖에.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말이다. 아무리 마음을 내려놓았기로서니 아이의 행동이 내 기대와 상충할 때면 내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아이가 잠든 후 시간, 그 달콤한 유혹


 밤마다 쉽게 잠들지 않는 아이와 긴 시간 씨름을 하며 아이를 원망한 적도 많았다.

왜 이렇게 못 자니, 눈만 감으면 될 텐데, 나라면 벌써 잠들었을 텐데, 나한텐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인데, 어서 자야 나도 좀 쉬지...


아이가 커갈수록 낮잠도 그렇지만, 밤잠을 거부하는 것 역시 아이들의 공통 현상이죠. 특히 내일의 개념이 없는 두 돌 미만의 아이들은 밤잠을 엄마와 떨어지는 무서운 순간으로 인식해 최대한 거부하고 억지로 재우면 울기도 해요.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 재우고 할 일이 많은데, 할 일이 없더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아이가 제때 잠을 자지 않으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아이가 잠드는 시간에 따라 엄마 삶의 질이 달라지니까요.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우열, 균형 육아, 53p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우열이 쓴 <균형 육아>을 읽으며 아이 밤잠 재우는 동안 흔들리는 내 마음의 원인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내가 아이를 재우며 생각이 복잡했던 것은,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순간 화가 났던 것은 '아이가 잠든 후의 시간'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인 나의 입장에서 '아이 밤잠 재우기'는 '마지막 일과'였고, 이 일과를 끝낸 후에 후련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내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순이 시절의 우리 딸  © 엄마 엘리



 게다가 내가 좀 드문 케이스인 것이, 신생아 시절 아이는 2시간 간격으로 누워서 푹 잘 자는 아이였다. 눈을 떴을 때 울었던 적도 거의 없었고 배고프면 눈을 떴고 분유를 먹고 트림을 한 후에 모빌을 보고 놀다가 또 곧바로 푹 자는 순둥이였기 때문에 나는 우리 딸은 '원래 잠을 잘 자는 아이, 잠투정이 없는 아이'로 인식하게 되었다.


 배앓이를 하거나 변비에 걸린 적도 없어서 아이를 키우며 수면으로 애를 먹었던 적이 없던 나로서는 돌 이후 (15개월 이후)부터 시작된 아이의 잠투정이 생소했고 낯선만큼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잠을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아이의 현재 발달상황을 알아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어린 시절과 비교하며 시간이 지나면 곧 '원래의 잠 잘 자는 딸'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며 견디고 또 견뎠다.



잠에 관대하지 못하는 이유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비교적 평정심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밤에 아이를 재우는 시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예민해지곤 한다. 아이가 잠들락 말락 할 때면 남편이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에도 귀가 번쩍 뜨이고, 택배 기사의 벨소리에도 민감해지는 것이다.


 정우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아이의 수면은 엄마의 수면과 직결되는 사항이다 보니 아이의 수면에 관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인내심이 부족한 엄마라서가 결코 아니니 이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잠이에요. 우리는 그걸 머리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본능처럼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내 잠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그게 누구든, 심지어 아이일지라도 감정이 편안할 수가 없어요. 필사적으로 내 잠을 지키고 싶은 거예요. 아이의 수면은 내 수면과 직결되니 아이의 수면에 관대하려야 관대할 수가 없는 거죠.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우열, 균형 육아, 56p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방법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 밤마다 아이와 씨름하게 되는 것은 피할 길이 없다.


 어떻게 하면 아이 재울 때마다 경험하는 조급함과 분노의 감정을 덜어내고 내 시간과 수면의 질도 확보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새벽시간 활용"하는 것인데, 이 책에서 제시한 해결책도 비슷했다.


많은 분들이 사용하고 있고 저도 사용하는 방법은 밤이 아닌 새벽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9시에 자서 3-4시에 일어나기, 10시에 자서 4-5시에 일어나기. 아이와 뒹굴다 함께 잠들면 되니 긴장감과 조바심이 조금은 줄어들고, 엄마가 편안한 마음이면 아이도 편안한 마음으로 전보다 조금 수월하게 잠들어요. (중략)
새벽을 활용하면 장점이 또 있어요.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안정적인 감정 상태를 처음부터 형성해준다는 점이에요. 아이를 재운 뒤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 하루 동안 아이를 돌보며 경험한 분노, 죄책감, 조급함, 우울, 불안 등 복잡한 감정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그 감정을 해결하느라 많은 시간을 또 보내야 해요. 그런데 먼저 잠을 자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 새로운 감정 상태에서 차분하게 나만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수면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감정의 리셋 기능이거든요.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우열, 균형 육아, 58p



 사실 난 아이를 재우면서 내가 먼저 꾸벅꾸벅 졸았던 적이 많았다.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며 간신히 아이를 재웠지만 그 후에 내 컨디션은 말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서, '아이 재우고 이거 이거 해야지!'하고 야심 차게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겨우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고 해도 글을 쓴다거나, 책을 읽는 등의 생산적인 일보다는 머리를 비우며 할 수 있는, 맥주를 마시며 TV 보고 핸드폰을 확인하는 등, 일에 그치곤 했던 것이다. 게다가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하루 동안의 다양한 감정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감정을 해결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당연히 그 시간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찾은 해결책이 "새벽시간"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새벽시간은 직장을 다니면서 새벽시간을 활용해 책을 쓰며 이에 대한 장점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내가 자연스럽게 취할 수 있는 익숙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날 밤이 아닌,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로 마음먹으면, 아이와 함께 (어쩌면 더 먼저) 잘 수 있어 아이를 재우며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고 평소보다 한두 시간만 더 일찍 일어나 산뜻하고 선명한 기분으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적정한 휴식을 갖은 후라 식구들이 다 깬 후에도 차분하고 느긋한 아침시간으로 이어지는 것도 장점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엄마로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 순간 낯선 일에 도전하고 이를 수행하며 몰랐던 자신을 발견한다. 행복, 기쁨, 감동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마주할 때도 있고, 분노, 슬픔,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내 속에 이렇게 다양한 내가 살고 있었는지 새삼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에서 답을 찾고자 노력한다. 보편적인 일상인 육아도 책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 실제로도 큰 도움이 된다. 책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내 마음과 감정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고, 현재 아이의 발달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며, 내가 처한 상황을 벗어나 더 넓은 시야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남편에게 조차 털어놓지 못했지만, 아이의 잠투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내 고민을 우연히 읽은 육아 감정 심리서 <균형 육아>라는 책에서 해소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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