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싶지만 맥주는 먹고 싶어

키우는 것은 같이 한다 해도 임신과 출산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기에

by 엄마 엘리

남동생이 올 겨울 결혼을 한다. 새해가 밝자마자 올 해의 가장 마지막 달에 식을 올리기로 했다며 소식을 전했다. 연초부터 뭐 그리 급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결혼식 날짜부터 정해뒀단다. 12월은 결혼 성수기도 아닌데. 여하튼.


헌데, 봄이 되고 여름도 지나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고 있는데 도무지 상견례를 한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다. 참다못해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상견례는 언제 해? 벌써 한 거야? 하는 내 물음에 엄마가 한다는 소리, 글쎄다? 바빠서 그런가, 아직 말이 없네. 아... 우리 엄마, 태평해도 너무 태평하다. 엄마 아들이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결혼식이 코 앞에 닥치자 예비부부들의 마음이 급해졌나 보다. 상견례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식 두 달을 앞두고서. 미루고 미룬 끝에 잡은 티가 나긴 좀 났다. 부담스러운 그 마음은 경험자로서 백번 이해가 되지만.


오늘이 바로, 남동생의 상견례 날이었다. 상견례는 상견례였다. 어색한 미소와 형식적인 이야기들이 오가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는, 편치 않은 자리. 그래도 다행히 우리에겐 아이가 있었다. 세 살배기 우리 딸. 아이는 다소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고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주면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관심이 쏠렸다. 사돈어른이 우리 아이에게 넌지시 물으신다. "동생 있으면 좋겠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번엔 우리 엄마가 거든다. "왜에. 동생이 있어야 같이 놀고 외롭지 않지." 아이는 "동생 싫어."하고 단호하게 제 의사를 내비쳤다. 대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까지 삐죽삐죽거리면서.


사실 아이의 반응은 늘 한결같았다. 돌 이후부터 아이는 누군가 동생 이야기를 하면 거부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소유욕이 있고 욕심이 많은 아이. 딸은 딱 나를 빼닮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그냥 싫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아이의 심정을 마음속 깊이 이해할 수가 있다. 바로 내가 동생을 원하지 않는 아이였으니까.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아이였으니까. 오히려 혼자이기를 바랐던 아이였으니까.


그러던 내가 5살이 되던 해 동생이 태어났다. 그 후 느꼈던 상실감, 배신감,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깊은 슬픔이란.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린 나에게 밀려드는 질투,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갓난아기였던 동생을 꼬집고 깨물었던 것을. 엄마는 너무 어려서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동생이 울자 놀라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달려와 동생을 황급히 안았던 엄마의 모습까지도. 안타깝게도 엄마는 그런 나의 기질과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다. 그저 동생이랑 싸우지 말라고만 했을 뿐. 그런 동생을 나는 끝까지 미워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채 되지 않았을 시점에 남편과 나는 이미 둘째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품에 안은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는 우리에게 차원이 다른 행복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여기저기에 둘째를 빨리 가질 거라고 선언 아닌 선언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자아가 형성되고 활동성이 커지자 둘째 언급을 자제했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무게인지 서서히 실감이 나기 시작했을 시점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동생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 후로는 더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는 둘째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내 뜻을 슬쩍 내비쳤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둘째는 내 능력 밖인 것 같다", 고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남편은 실망한 투로 말을 흐렸다. "저 혼자 편하려고." 나는 그 말에 조금 벙찐 기분이 들었다. "뭐?" 내가 뭔가 잘 못 들은 것 같았다. "혼자 편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남편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은 실망한 것이 아니라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내가 오해한 것은 남편이 내뱉은 말이 아니라 남편의 감정이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좀 편하고 싶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서 수영을 시작하고 자유시간이 생기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아팠던 발등도, 손가락 관절이 따로 노는 듯한 기이한 느낌도 잦아들었으니까.


남편이 아무리 둘째를 원한다 하더라도 임신과 출산의 주체는 나다. 아이를 10개월 동안 임신하고 출산 후 몸을 추스르는 것은 철저히 내 몫이니까. 황홀하고 경이로운 경험에 수반되는 그 험난한 과정을 오로지 나 혼자만이 겪어야 한다. 그러니 남편은 모를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입덧 한번 하지 않고, 제왕절개로 15분 만에 쉽게 출산을 했기로서니. 임신과 출산, 산후조리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모를 것이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차치하자.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아이"만 보자면, 나야말로 둘째를 낳고 싶다. 꼬물거리는 갓난 아이를 다시 한번 내 품에 안고 싶다. 눈도 뜨지 못한 갓난아기의 입에 손을 갖다 대고 솜털보다 보드라운 그 촉감을 느끼고 싶다. 내 손가락보다 작은 아이의 발바닥을 하염없이 어루만지고 싶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황홀한 순간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그러나 이런 다른 차원의 세계에 다시 한번 입문하기 위해서는 견뎌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안다. 누군가는 육아를 하다 보면 지난 고통은 다 잊게 된다던데 솔직히 나는 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릴 자신이 없다. 사소하게는 매일 밤 나의 영혼을 달래주는 시원한 맥주부터 끊어야 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신라면 건면도, 아침 공복에 마시는 진한 아메리카노도 멀리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낳고 싶지만, 맥주를 끊을 자신이 없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시간을 되돌려 남편에게 되묻고 싶다. "내가 둘째 임신하면 나랑 같이 10달 동안 금주하고 매운 떡볶이도 끊을 수 있겠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빈 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며 이렇게 이야기하겠다. "쉽게 약속할 수 없으면 태어나지도 않은 둘째 때문에 마음 상하기보다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즐기자. 우리는 이미 완벽한 가족이잖아."라고. 물론, 내 잔에도 시원한 맥주를 가득 따르고서 말이다.

keyword
이전 15화공감은 나의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