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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Aug 05. 2019

공감은 나의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것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감정이다

 2주 전, 31개월 된 딸아이가 구협염에 걸렸다.


"네에? 어린이집에 못 간다고요?"


 구협염 확진을 받은 후, 나는 목소리를 높여 의사 선생님께 되물었다. 선생님은 차분히 말씀하셨다. 구협염은 전염성이 있으니 1주일 간 어린이집에 갈 수 없습니다,라고.


 아이는 목구멍이 헐어서 침도 잘 삼키지 못하면서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는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린이집 원복을 입히고 가방과 낮잠이불까지 다 싸가지고 나왔는데 꼼짝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냥 미열이겠거니, 해열제 처방받아 먹이면 금방 열이 떨어지겠거니,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나는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어야 했다. 그다음 주는 어린이집 방학이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우리가 2주 동안 내내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머릿속이 바빠졌다. 그 주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과연 어떻게 시간을 낼 수 있을지 궁리하느라 말이다. 더불어, 아이와 집에서 어떻게 먹고 놀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즈카페, 미술관 같이 사람 많은 곳에는 갈 수가 없었기에.



2주간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받은 육아서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아이' © 엄마 엘리



아픈 아이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



 아이는 오후가 되자 급속도로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어른들도 입 안이 헐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괴로운데, 목구멍이 따끔하고 아프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 좋아하던 국수도 삼키지 못하고 우유도 새 모이만큼만 들이킬 만큼 아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이는 무엇을 먹을 때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통스러워했고 배가 고픔에도 먹지를 못하니 점점 예민해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만 부리게 됐다. 아무것도 못 넘기는 아이를 위해 부드럽고 찬 요구르트나 연두부, 바나나를 으깨서 떠먹여 주기도 했지만 아이는 이 모든 것을 거부했다.


 아픈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칭얼대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아이를 평정심 있게 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짜증을 멈추고 진정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불편한 이 상황을 모면하고 빨리 아이가 잠들어서 내가 쉬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게 된 것이다.


그러는 찰나, 며칠 전에 읽은 육아서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아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엄마가 아이 마음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어서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가 엄마의 뜻에 따라서 행동하기만을 바라는 거야... (중략) 강제로 울음을 그치게 하기보다 당장 거슬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견뎌내며 지금 울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생각해보라는 거야....(중략) 하지만 엄마 자신이 당장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탕으로 아이를 달랠 경우, 엄마의 공감을 받지 못한 채 사탕에 정신이 팔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겨.
-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아이, 엄마의 착각, 43p


 나는 아픈 아이를 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뭐라도 먹고 컨디션이 좋아지기를, 그래서 덜 울고 덜 짜증내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으면서도. 아픈 아이의 괴로워하는 마음을 공감하고 차분하게 관찰하고 생각하지 않은 채,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아이를 마음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의 남편은 저자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그리고 이 조언은 내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


공감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쓰는 거야.
상대방이 저절로 알게 될 때까지
나의 '시간'을 쓰는 것.
그것이 진짜 공감이야.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나는 어설프게 공감하는 '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힘들고 괴로운 것은 13kg의 작은 체구를 가진 아이 본인일 텐데,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나는 오히려 아픈 티를 내지 말라고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었던 꼴이었다.


 너무나 미안했다.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채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성했다.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병을 이겨내고 있는데,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엄마였다는 것이 너무도 미안했다.


 저자 남편의 조언대로 나의 시간과 마음을 들여 진짜 공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아이를 대하는 나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아이를 간호하는 시간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아이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는 3일이 지나자 완전히 회복했다. 여전히 구협염은 남아있었지만 많이 좋아져 평소와 같이 밥도 잘 먹고 과일도 잘 먹게 되었다. 컨디션도 좋아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상상놀이도 하고 블록놀이도 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더워서 놀이터에는 가지 못하고 여전히 키즈카페는 가지 못하지만 아이는 활발하게 생활했다. 그 자체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아이가 조용하면 어디선가 뭔가 수상쩍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리라.


 한 동안 아이가 조용했다. 혼자 잘 놀고 있는 것 같아 설거지도 하고 냉장고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 방으로 가기 위해 거실을 지나치는데 그만.. 참담한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소파에 네임펜으로 예술의 혼을 담은 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 엄마 엘리



헉.


검은색 네임펜으로 칠해져 있는 소파.

그 앞에서 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육아서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아이'에 나왔던 일화가 떠올랐다. 6살 난 딸이 베란다 블라인드 커튼 한 줄을 가위로 싹둑 잘랐다는 이야기. 엄마는 화가 나서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쳤고 아빠는 엄마를 진정시키며 아이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어봤다고 한다.


 엄마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서류와 이면지는 자르면 안 될 것 같고, 커튼은 잘라도 될 것 같아서 잘랐다는 아이. 그 앞에서 엄마는 더 소리치며 야단을 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미 자른 커튼 줄을 연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한편으로는 다소 엉뚱하긴 해도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검은 칠이 된 소파를 본 순간 너무 황당하고 순간 화가 났지만, 책 속의 사례를 떠올리고는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방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불러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봤지만, 아직 3살 난 딸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살짝 미안하고 민망한 눈빛으로 배시시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다 낙서를 하면 엄마가 속상하다고 앞으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좋게 타이르는 것뿐이었다.


 평소에 칠판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널찍하게 생긴 소파가 눈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흔히 썼던 수성 사인펜을 놔두고 아이는 어쩌다 네임펜을 잡게 되었을까. 네임펜이 아이 손에 닿는 곳에 있었나. 그런 곳에 네임펜을 두었던 나를 탓하는 수밖에.


아이를 야단치고 나서 뒤늦게 찜찜한 마음이 들어 괜히 더 잘해준 적이 한 번쯤은 있으시죠?
봄에 꽃가루가 날리면 재채기가 나고, 여름에 매미가 울어대면 귀가 따갑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생명체도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라는 생명체가 하는 행동에도 항상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어른이 아이에게 섣불리 화를 내는 것입니다.
아이가 저지른 엉뚱한 행동에 화가 난다는 것은, 아이로 하여금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 자연의 깊은 섭리를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만 마음에 분명히 간직한다면, 홧김에 아이를 야단치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 물건을 망가뜨린 아이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달님 아빠의 조근조근, 34p



아이의 감정을 희생시키지 않기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와 함께 놀다 딸아이의 볼을 움켜쥐어 눈 바로 아래에 작은 상처가 났다. 살짝 피가 났지만 딸아이는 울지 않았고 두 아이는 그 후로도 사이좋게 놀았다고 했다.



그 어떤 상황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아이의 마음 © Unsplash



 하원 후 그 아이 엄마와 놀이터에서 만났다. 그런데 같은 반 아이는 평소와 달리 엄마 품에 안겨 놀이터로 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친구 얼굴에 상처를 내서 혼날까 봐 위축된 것이었다.


아이를 안고 온 아이 엄마는 다가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어서 직접 사과하라고 시켰다. 나도 괜찮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채유는 손톱으로도 자주 얼굴에 상처 내곤 해요, 금방 아물 거예요" 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런데, 이후에 읽은 이 책을 통해 그때 그 아이 엄마와 내가 한 행동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행동임을 깨달았다.


준서 엄마와 준서가 미안해하는 마음을 덜어주고 싶어서 평소 달님이가 코피 자주 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꾹 참았어. 달님이가 '난 지금 코피가 나서 무섭고 아픈데 엄마는 내 마음을 전혀 모르네' 하고 마음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회적인 예의를 차리느라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희생시키면 안 된다는 당신의 말이 떠오르더라고.
- 놀란 아이를 보듬는 엄마의 역할, 222p

아이와 친구와 놀다가 다쳤을 때 무턱대고 상대방에게 따지는 엄마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 정작 아이의 마음을 돌보지 않는 엄마. 두 사람 모두 아이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우선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다급한 상황일수록 아이의 눈빛과 표정을 먼저 보세요. 그렇게 가슴에 가득 찬 나의 감정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아이의 감정을 담아보세요.
- 어떤 상황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할 것, 223p



 이 페이지를 읽고 아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내 감정과 사회적인 예의를 우선시한 채 아이의 마음을 가로막고 무시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아이 엄마와는 함께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 같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넘겨짚지 말 것.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아이의 감정임을, 함께 배울 수 있었다.


육아도 배움이 끝이 없다.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도 함께 자라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가 커갈수록 절감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주변에는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아이'와 같은 도움이 되는 육아서가 참 많다는 것이다. 공부하고 알아가려는 자세만 유지한다면, 엄마로서, 부모로서, 우리 아이를 다 안다고 자만하지 않는다면,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흘려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오늘도 배움의 자세로 육아를 실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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