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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Oct 01. 2019

워라벨 보단 맘라벨

엄마가 육아를 더 행복하게, 삶을 더 가치 있게 영위하는 방법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벨 (Work and Life Balance)은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이 시대의 사회상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과도한 일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일과 생활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개인의 행복을 찾는 '워라벨'은 이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다.


 특히,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란 1988년 이후의 출생자들은 돈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해 잡코리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워라벨이 좋을 경우 연봉이 낮아도 이직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직장인은 76%가 넘었다고 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 직장인 508명 대상, 2018년 1월)


 이는 2030 세대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들의 가치관이 잘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삶과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며 살던 이들이 만약, 엄마가 된다면?

 자신의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엄마'의 삶



 서른셋이 되던 그 해, 나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31.6세라고 하니 평균 연령보다도 높았다. (통계청&경제협력개발기구, 2017년 기준, OECD 국가 중 가장 늦은 결과라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조금은 늦은 나이에 첫 애를 봤고, 실제로 산후조리원에서 많은 산모들이 '언니'라고 불렀으니 노산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쨌든.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애지중지 품어왔던 아이를 만난 그 황홀하고 경이로웠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새 생명과 함께하는 차원이 다른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에 앞서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작고 가냘픈 생명체를 온전히 책임지는 것. 눈도 못 뜬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행여 말도 못 하는 아기가 어디가 불편하진 않은지 예민하고 섬세하게 돌봐주는 것. 신생아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의 24 시간은 나의 24시간과는 다르게 흘렀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하루 8시간은 푹 자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주중에 일하고 종종 야근과 모임을 하면서 부족한 잠은 주말에 늘어지게 자면서 보충을 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가 엄마가 되자 가장 먼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게 되었다. 아이는 2시간씩마다 자다 깨고를 반복했고, 나도 아이의 시간에 맞춰 2시간씩 자다 깼다. 100일이 지나자 통잠이라고 4~5시간을 자고, 10개월 이후 7~9시간을 내리 자기도 했지만, 32개월이 된 지금도 아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여전히 새벽에 꼭 한 번씩은 깨곤 한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쿨쿨 잤던 내가 아이의 낑낑대는 작은 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로 살아온 32개월 동안, 단 한 번도 그 이전처럼 숙면을 취하거나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잔 적이 없는 것이다.


 직장인이었던 시절, 야무지게 칼퇴를 하고 '저녁 있는 삶'을 추구했던 이전의 나는 사라지고, 아이와 한 몸같이 밀착된 엄마의 생활이 이어지게 되면서 서서히 가치관의 혼란이 오기 시작하게 됐다.



육아와 삶의 균형, 맘라벨 (Mom and Life Balance)



 아이는 돌 전후로 엄마와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한다. 그때부터 엄마와 안정된 애착을 바탕으로 세상에 관심을 갖고 엄마 곁을 떠나 낯선 것들을 탐구하기 시작한다고.


 아이가 자아를 찾아가기 시작할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장아장 걸으며 산책을 하는 아이를 몇 걸음 뒤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아이는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어 한 참을 놀고, 지나가는 지렁이를 만져보고, 다른 잔디밭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눈에 새롭게 보이는 바깥세상을 탐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엄마가 곁에 있는지 없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런 아이를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인 나도 이제 내 삶을 찾아가며 육아와 개인 생활의 조화를 이루는 연습을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워라벨과 마찬가지로 맘라벨 역시 아이와 엄마의 완벽한 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  Unsplash



 직장인들에게 워라벨이 있다면, 엄마에게도 육아와 삶의 조화를 이루는 맘라벨 (Mom and Life Balance)이 필요하다.


 워라벨과 맘라벨. 둘 다 삶의 우선순위를 '나'에 두는 것이 공통점이다.


 솔직히 아이를 떼어놓고서는 엄마인 내 삶을 상상할 수 조차 없지만, 아이가 내 전부는 아니다. 이를 인식한 후, 출산 후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조금씩 '나'로 옮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워라벨이 일과 삶의 완벽한 분리를 뜻하지 않는 것처럼, 맘라벨도 육아와 삶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육아를 하면서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행복한 시간'을 찾으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뿐이다.   



엄마가 추구하는 '아침 있는 삶'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 를 고민했다. 답은 혼자만의 시간에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풀기보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혼자 있는 시간'에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의 아침시간을 활용해서.



아이를 등원시킨 후, 나에게 집중하는 아침 시간을 꼭 만들려고 한다 © 엄마 엘리


 워라벨의 화두는 단연 '저녁 있는 삶'일 것이다. 저녁 있는 삶은 무엇인가? 정시 퇴근 후에는 일에서 벗어나 가족, 친구, 자아실현 등 스스로 가치를 두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누군가는 퇴근 후 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음악을 배우거나 자기 계발을 한다. 스스로 선택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엄마인 나에게 저녁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아이 하원 후에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저녁밥을 먹고 아이와 퍼즐이나 찰흙놀이 등을 하며 서로 떨어져 있었던 동안 경험한 하루의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저녁은 혼자만의 시간으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엄마인 나는 가족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마음 편하게 시간을 소유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회사에 보내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아침시간을 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나를 위한 작은 배려 (어쩌면 통 큰 배려) 덕분에 엄마로서 나는 매일 '아침이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적당히 희생하고 더 행복하게 키우자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워라벨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말 아닐까. 노동은 적당히, 수익은 많이. 누구나 바라는 바일 것이다. 직장인들이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내 맘이 그 맘, 이라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하지만, 만약 엄마가 덜 희생하고 헌신하겠다고 하면.. 이때도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할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한 즐겁고 행복한 시간 © 엄마 엘리



 많은 시간 일을 한다고 해서 꼭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아이가 행복하고 훌륭하게 큰다는 보장은 없다. 행복한 직원이 능률이 높은 것과 같이, 행복한 양육자가 양질의 육아를 행할 수 있다. 엄마든, 아빠든, 행복한 부모와 함께 큰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육아도, 적당히 희생하고 더 행복하게 키우자!라는 모토로 임해도 되지 않을까?






 엄마가 아이를 낳고 일을 계속 나가면 욕심이 많다고 하고, 퇴사하고 아이를 본다고 하면 그동안 쌓은 경력이 아깝다 한다. 무슨 기준으로 이런 말들을 쉽게 내뱉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사는 인생 아닌가. 그 안에 수많은 기쁨과 감동과 행복이 있을 텐데. 이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 너무 쉽게 재단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가치를 두는 전업 엄마로 살아오는 동안, 이토록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나 싶다. 서른여섯 해의 인생 중 가장 만족스러운 구간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육아의 행복감을 느끼기까지는 가족의 도움은 물론, 스스로의 인식 전환과 노력이 필요했다. 부모는 아이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가 타고난 기질, 성향을 존중하고, 잠재력을 믿고 지지하고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엄마인 내가 행복할 때 아이와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아직 엄마 경력 3년 차라 앞으로 많은 위기와 시련이 닥치겠지만, 육아와 삶의 조화를 이루는 맘라벨은 계속 추구할 것이다. 엄마가 안정되고 행복할 때 아이와 더 편안하고 끈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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