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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Sep 25. 2019

엄마는 집에서 좀 놀면 안 되나요?

엄마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아이를 낳자 곧바로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산부인과까진 내 이름이 있었으나, 산후조리원에 가니 내 이름 대신 아이의 태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행운이 엄마'. 나는 그곳에서 행운이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여쁜 이름이 생긴 후에는 아이 이름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 '채유 엄마'. 그 후로 나는 31개월째 채유 엄마로 살고 있다.


 누군가는 그랬다. '엄마'가 된 후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려 슬프다고. 하지만 나는 슬프기는커녕, 마냥 기쁘고 신기하고 설레었다. 내가, 드디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인가?라는 느낌이랄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 들뜬 기분마저 들었다. 한 아이와 함께 난 엄마로 태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엄마일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1년 3개월의 육아 휴직을 마친 후,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선택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물었다.



좋겠다!
그럼 이제, 집에서 노는 거야?



 퇴사를 하자 '백수'가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백수란, 직업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데, 전업 엄마는 아이를 키우는 역할이 있으니 아예 백수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엄마가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직업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의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 종사하는 일'이라고 한다. 흠.. 전업 엄마가 된다고 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금전적 보상은 받을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처럼) 엄마가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을 수는 있다, 그리고 일정 기간 동안, 즉 아이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종사하는 일, 은 맞다.


 그러므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 을 제외한다면 엄마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직업으로 인식해도 크게 상식에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꼭 금전적 보상,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더라도 직업으로 선택해 열정을 쏟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사명감, 자부심, 재미, 행복, 명예, 꿈, 사회적 가치, 지구 환경 등등 직업을 선택하는 저마다의 다양한 기준이 있으니까.



때때로 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필요하다 © Unsplash



 그렇게 나는 나만의 기준과 가치관을 갖고 '엄마'로 '이직'을 했다. 월급 대신 아이를 키우며 얻는 행복감, 성취감, 일상의 소중함을 얻으면서.


 그리고 의도치 않았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얻게 되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덤으로 주어진 보상이랄까.


 그렇게 나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집안일은 잠시 멈추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에게 마음껏 놀 자유를 주는 것이다.


 엄마의 놀이는 무엇일까? 놀이에도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가 있다 에서 밝혔듯, 놀이란, 자발적으로 이뤄진, 특별한 목적이 없는, 즐겁고 재미있는 행위를 일컫는다. 엄마인 내가 스스로 하고 싶고 특별히 뭘 이루지 않아도 되는(가정경제에 보템이 되거나 경력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되는) 내가 즐겁고 재미있는 행위를 하면 그뿐인 것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후 마시는 모닝커피 한잔은 내게 완벽한 소확행이다  © Unsplash



 그래서 내가 뭘 하면서 즐겁고 재밌을지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기였다. 그리고 책장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꺼내 책을 읽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고 싶어 새벽에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놀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뭔가 더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그래서 수영을 끊어 다니기 시작했고, 손을 놨던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주 2회정도 도서관에서 아이 책과 내 책을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혼자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하고 싶은 말이 차올랐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브런치를 하게 되었고,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소설 쓰기도 도전하게 됐고 단편 소설 4편을 써서 공모전에 응모하기도 했다. 그러다 웹소설이란 장르를 알게 되어 지금은 로맨스 웹소설을 쓰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새로운 힘을 얻는다



 독일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올리히 슈나벨은 자신의 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세월 동안 수면 연구가, 의학자, 신경생리학자 등은 잠자며 꿈을 꾸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여기서 확인된 사실은 편안히 쉴 때 우리 몸은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활발히 활동한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지만, 우리 몸은 회복과 재생 과정에 몰두하며, 동시에 기억력과 자신감, 창의력을 키우는 작용을 한다.
- 3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 중에서

 

 심심할 때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커진다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심심할 틈을 주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껏 쉬고 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회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좀 놀면 어떤가? 죄책감은 잠시 벗어두고, 가끔은 엄마 스스로 마음껏 놀 기회를 주자. 그 누구도 아닌 엄마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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