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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Oct 02. 2019

엄마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공포 마케팅, 흔들리지말자

불안해하지 말자, 아이는 나만의 방식으로 키워도 잘 클 것이니.

 지난여름,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 유아교육전을 다녀왔다. 웨딩 박람회 한번 간 적 없는 나도 아이 교육을 위한 모든 것이 있다는 유교전에는 관심이 동했다. 첫날, 사전 등록을 하고 무료입장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아이 19개월 무렵이었다.


 처음엔 애가 아직 어리니 뭐가 있는지 한 번 둘러나 보자,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내 동공은 심하게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겠다던 평온한 마음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 해진 것이다.


 세상에나. 이렇게 많은 도서와 교구와 학습지와 놀이 용품과 장난감이 있었다니!!!!


 대충 훑어봐도 내가 아는 업체나 들어본 브랜드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아이를 위한 무독성 물감놀이, 모래놀이, 찰흙놀이, 크레파스 등등 많은 놀잇감은 물론, 아이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는 전집부터 북유럽 그림책을 모아놓았다는 시리즈, 영어 원서로 되어있는 시리즈, 중국어, 스페인어 그림책들, 수학 교구, 과학 교구 등 수많은 교구들까지... 그뿐인가. 아이 체형에 맞춘 책상, 의자, 침대 등 가구며 아이를 위한 영양제까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첫 애를 키우는 초보 엄마인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뒤쳐진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교육 전시라고 기획된 그 세상은 나에게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라면 이 정도는 알고 계셨어야죠
소중한 우리 아이를 위해 서두르세요!






엄마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공포 마케팅


 

 불안감을 한껏 안고 조급해진 나는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전집 코너에서 발길을 멈췄다. 숙련된 직원이 발 빠르게 따라붙었다.


a: 어머니, 아이가 몇 개월이에요?

b: 19개월 됐어요.

a: 아이 전집은 뭘로 들이셨어요?

b: 전집은.. 없는데.. 단행본 사주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주고 있어요.

a: 어머 정말요? 단행본으로만 읽으면 아이가 다양한 책을 접할 수가 없는데... 여기 이거 구성이 참 좋은데, 이참에 한 질 들이시는 것이 어떠세요? 오늘 정말 기회가 좋거든요!!


 직원은 계속해서 내가 아이를 위해 전집을 사주지 않았다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도록 만들려고 애를 썼다.


 말 잘 듣는 인력을 키우기 위한 미국식 공교육, 일제 식민지 우민화 교육, 친일파의 독재 교육으로 이어진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목적이 아이들을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과 열등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지성, 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

 

 딱 그런 느낌이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는 '전집 한 질이 없다니 너는 좋은 엄마가 아니야'라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안고 다른 교구 코너를 방문했다. 역시나 직원이 곧바로 말을 걸었다.

 

a: 아이가 19개월이면 이제 수학교구를 시작하기에 적기네요!

b: 이제 2살 아이한테 수학은 너무 빠르지 않나요?

a: 아니에요 어머님~ 놀이처럼 수학의 개념을 익히는 거라 놀면서 배울 수 있어요!


 이번에는 2살 아이에게 수학을 시켜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영어도서 코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a: 어머! 2살이면 영어 시작하기 딱 좋은 시기네요. 아이의 어학 두뇌는 3살까지가 골든타임이라고 하잖아요!

b: 무슨 골든타임이요?

a: 3세가 두뇌의 결정적 시기인데, 모르셨어요?


 그렇게 세 곳을 방문하니 나는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지한 엄마가 되어있었다. 아직 19개월밖에 되지 않는 아이에게 전집을 읽히고 수학 놀이를 하고 영어를 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조금만 시간을 갖고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것인데, 나는 거기서 흔들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하마터면 지갑을 열뻔 했다.



아이 인생은 36개월 안에 결정되지 않는다



 부모를 위한 육아서를 찾아보면 아이를 키우는 수많은 방법을 나열하고 시기를 명시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든다.


 두뇌가 열리는 3세, 0세부터 시작하는 수학 놀이, 기적의 영어 육아, 큰 아이로 키우는 놀이 육아, 적기에 시작하는 애착 육아, 3세부터 프랑스 영재 교육, 핀란드 교육, 독일 교육 등등등


 뇌 발달을 근거로 많은 육아서에서 3살을 강조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태어나서 36개월까지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럼, 36개월이 지나면 아이의 인생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지는가? 아이의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기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부모가 아이 3살 전에 책에서 말하는 것을 제공해주지 못했다고 해서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질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3살 전까지만 제대로 신경 쓴다면 아이의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이 사실을 많은 부모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늘 흔들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조금씩은 불안한 부모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이 불안 심리를 한껏 극대화해 우리의 지갑을 열어야 할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이 방법이 효과가 좋기 때문에 공포 마케팅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리라.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가 유치원 들어갈 시기가 되면 부모는 영어 유치원이니 숲 유치원이니 공립 유치원이니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또 초등학교 들어갈 시기에는 이제 '공부'에 초점을 맞춰진다.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글을 가르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추가가 된다. 고민이 깊어지면 질수록 사교육 시장에 서서히 빠지게 된다.


 왜 부모인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이렇게 불안해야 하는 것일까? 이지성 작가는 자신의 책 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사교육이 이토록 난리인 이유는 부모의 불안 심리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 부모들은 불안한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자기만의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인문학 교육이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인간적인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세상에 휩쓸려 살아간다.
- 이지성, 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 78p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이를 너무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아이가 가진 타고난 능력을 믿는다면 그 불안은 조금 덜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들레 씨앗을 가진 아이는 민들레로, 복숭아 씨앗을 가진 아이는 복숭아 나무로, 대나무 씨앗을 가진 아이는 대나무로. 아이는 저마다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부모가 대나무가 될 아이를 소나무로 만들려고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한들, 그게 쉬이 바뀌겠는가? 부모는 아이가 어떤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관찰하고 아이의 기질을 존중하며 그에 맞는 환경과 경험을 제공해주면 된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어떤 열매를 맺는지 지켜보고 기다리는거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더 이상은 부모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상술에 휘둘리지 말자. 아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키워도 건강하게 잘 클 것이다. 우리 아이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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