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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Oct 15. 2019

세상이 엄마를 속일지라도

누구나 그 자체로 완벽한 '엄마'다

 어느 작가는 말했다. 어떤 자식들은 어머니의 "어"하는 첫음절만 발음해도 넋 나간 사람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쏟아낸다고.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잠시 상념에 빠졌다.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 를 떠올렸을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런 감정을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나 자신이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그런데 정말, 대부분의 자식들은 엄마를 떠올리면 눈물부터 왈칵 쏟아내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자식들은 어머니를 떠올릴 때 눈시울부터 붉히는 것일까.




 '어머니'의 사전적 정의는 '자식이 있는 여성을 일컫는 말 또는 자신을 낳아준 여성을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네 어머니는 이런 사전적 정의로는 미처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하고 감정적인 존재다. 어머니는 내 탄생의 뿌리이자,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를 거치는 동안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자식들은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한 생명이 잉태하는 엄마의 자궁은 신비롭고 숭고하며 풍요롭고 기름진 대지에 비유되기도 한다. 뱃속에서 생명을 키워내는 놀라운 능력 덕분에 엄마라면 누구나 기르고 가꾸는데 능한 양육의 신으로 간주하고 그런 역할을 떠맡으며 사회는 이를 칭송한다.


 이러한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엄마'는 '희생, 헌신, 모성애, 포근함, 너그러움, 편안함...' 등의 이미지도 함께 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밖에 존재하는 '엄마'는 비난, 질책, 멸시를 받으며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간다. 사회의 기준에 맞는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 누군가는 엄마를 포기하고, 누군가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또 누군가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도대체, 엄마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가.



엄마의 모성은 숭고하고 아름다운가?


어머니를 부축해서 병원을 나서는 순간, 링거액이 부모라는 존재를 쏙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뚝. 뚝. 한 방울 한 방울 자신의 몸을 소진해가며 사람을 살찌우고 다시 일으켜 세우니 말이다.
- 이기주, 언어의 온도, 127p


 최근 책을 읽다가 뜨악, 하는 문장을 발견했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어린이집 엄마들과 이를 공유했다. 한 엄마가 말했다. "닭살 돋는 글"이라고. 아마, 대부분의 엄마라면 이 글을 읽고 닭살이 돋았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와 영양분을 게워내 자식들에게 공급하는 링거액과 같다니. 읽는 엄마 입장에서는 섬뜩하고 싸늘한 기분마저 들었다. 작가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글은 엄마라면, 제 한 몸이 부서질지언정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한다고, 그것이 보편적인 엄마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희생을 우상화하는 모성신화가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는 엄마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사실, 어렸을 적 난, '엄마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적이 있다. 바로 우리 엄마가 '남들과 다른 엄마'였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떠올리면 희생, 헌신 같은 단어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자식들보다 개인의 삶을 더 우선시했던 것도 아니었다. 박사학위를 따느라, 회사에 충성하느라 육아를 등한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친구들 엄마와는 조금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온갖 음식을 하고,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애쓰지 않으셨다. 우리 애 잘 봐주세요, 하면서 학교를 찾아오는 일도 없었고, 숙제든 공부든 엄마가 딱 붙어서 세심하게 신경 써준 기억도 별로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쿨한 성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섭섭했다. 왜 우리 엄마는 친구 엄마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는 거지? 왜 우리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거지? 왜 우리 엄마는 내가 밥을 안 먹어도 걱정을 안 하지? 걱정하기는커녕, 네 배가 고프지 내 배 고프냐?라고 하는 거지? 정말, 우리 엄마 맞아?


 어린 나에게도 '엄마라면 이래야 한다'하고 기대했던 것들이 있었나 보다. 어렸을 때 접한 그림책, 영화, 만화 등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해서 나도 모르게 내 속에 고착화된 엄마의 이미지. 우리 엄마가 그런 '전형적인' 엄마가 아니라 참 속상했고, 때로는 원망하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엄마라도 괜찮아


 

  모성신화는 친정엄마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이제 남들과 다른 친정엄마가 되었다. 친정에 방문할 때마다 손수 만든 반찬을 양 손 무겁게 싸주고, 출산한 딸을 위해 큰 솥에 미역국을 끓여오고, 손주를 키워주겠다고 나서는 그런 친정엄마가 아니라는 뜻이다. 60대인 엄마는 여전히 회사를 나가시고 주말마다 등산을 가시고 때때로 여행을 떠나는 쿨한 친정엄마로 자신의 삶을 살고 계신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른 친정엄마처럼 마음 써주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이 앞섰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엄마는 사회에서 강요하는 그런 희생을 하지 않을 뿐, 엄마만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멀리서 항상 나를 응원하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나의 엄마라는 것을.


 그런 엄마 덕분에 나는 뿌리 깊게 이어지는 엄마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무수히 다양하고 많은 엄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를 잃지 않고 행복한 육아를 하는 길을 좀 더 일찍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로 사는 것에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그 자체로 완벽한 엄마이다. 자신만의 육아 방식과 태도, 생각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형적인, 보편적인, 대부분'이라는 말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괜히 주눅 들고 죄책감 갖고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끊임없이 세상이 엄마를 속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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