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은 버티는 아이랑 집콕 놀이 3 대장
전국 어린이집이 휴원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7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열 하루간의 강제 가정 보육이 시작된 것이다. 전업 엄마인 나는 (감사하게도) 큰 무리 없이 가정에서 보육을 할 수 있지만, 맞벌이 가정에겐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 어디에도 나갈 수 없다는 데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위험 때문이다. 이는 열흘 이상을 아이들과 집에만 콕 박혀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7개월 된 채유는 며칠 전부터 "낮잠 안자!"를 외치며 낮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꼬박 2시간씩 낮잠을 자던 아이였다. 예상치 못한 변화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뜬 후 밤에 잠들 때까지 집에서 놀아도 심심해하지 않을 '무엇'이 필요하고, 달콤한 2시간의 자유시간이 사라진 만큼, 주양육자인 나도 지치지 않게 체력을 안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와 노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내겐 매일 "뭐 먹이지?" 보다 "뭐하고 놀지?"가 더 중요한 과제다. 먹는 것은 대체제가 많은 반면, 놀이는 아이와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아이와 노는 것이 요리보다 더 자신 있고 즐거운 활동이기도 하고. (만약 내가 요리를 잘했다면 손수 해먹이는데 더 공을 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비상시국이다. 앞으로 1주일은 더, 아이와 함께 집에만 있어야 한다. 개학이 연기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이왕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조금 더 알차고 즐겁게 보내는데 신경을 쓰면 어떨까.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을 누그러뜨리는데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유아를 양육을 하는 가정에서 아이와 함께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우리 집 집콕 놀이 3 대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생후 15개월 전후로 시작한 물감놀이는 우리 집에서 100% 흥행하는 최고의 놀이다. 어렸을 때부터 촉감 놀이를 자주 해줘서 그런지, 아이는 처음 물감을 접했을 때부터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모든 색깔의 물감을 일일이 짜고는 손과 발에 흥건히 묻혀 여기저기 도장을 찍고 온몸에 칠을 했다. 잘 지워지는 유아 물감이라는 말만 믿고 멀쩡한 옷을 입혀 놀았더니 잘 지워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버리는 옷 (미술 가운을 거부하는 아이라)을 입히거나 여름옷을 입혀 자유로이 놀게 하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2월에도 한차례 휴원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오랜만에 물감을 꺼내 줬더니 붓을 사용해 무언가를 그리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전에는 물감을 푹푹 짜고 손과 발에 잔뜩 묻혀한 데 섞거나 물감 위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즐겼다. 롤러나 붓 등 도구에는 관심이 통 없었으니 차분히 앉아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이는 불과 한 두 달새 훌쩍 성장한 것이다. 특히, 동그란 눈, 꼬불꼬불 머리카락 등 형태를 그리며 엄마와 아빠를 그렸노라고 자랑스러운 눈빛을 뿜어내며 완성작품을 보여줄 땐 정말이지 너무 감격스러웠다. 진심으로 감동한 나는 손뼉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이런 찰나가 육아의 결정체다. 비록 과정은 느리고 지난하게 느껴질지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 수만 가지의 행복, 기쁨, 감동이 흩뿌려져 있다.
물감 놀이를 할 때 한 가지 팁이 있다. 한꺼번에 놀잇감을 모두 꺼내기보다는 놀이 과정을 지켜보며 하나씩 새로운 놀잇감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의 놀이 집중력을 높이고 확장을 유도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먼저 색색의 물감을 꺼내 물감을 탐색하고 칠해보고 하는 시간을 갖다가 지루해한다 싶으면 나무 모형, 싹 난 감자, 페트병, 박스, 분무기 등 다른 아이템을 추가해 놀이를 확장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식이다.
브런치 매거진 <아이랑 날마다 놀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처음 올린 글이 밀가루 놀이 (눈 오는 날, 밀가루 놀이와 겨울 그림책 읽기)였다. 밀가루는 고운 가루에서 쫀득쫀득 반죽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성질이 있어 재밌는 놀이 재료이지만, 치우고 씻기기가 번거로워 (엄마에게는 치명적 단점) 마음처럼 자주 해주진 못했다. 그렇지만 한번 하면 아이가 가장 오랜 시간 흥미를 보이며 놀았던 놀이 중 하나이다.
지난달, 이영란의 감성체험 '가루 나무 모래흙' 체험전을 다녀왔다. 이후 아이는 밀가루 놀이가 가장 재밌었다고 또 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만큼 기억에 남았나 보다. 예기치 못한 반강제 집콕이지만, 이 기회를 살려 아이에게 밀가루 놀이를 해주기로 마음먹고 지난주 실행에 옮겼다.
'가루 나무 모래흙'의 밀가루 방바닥은 보라, 빨강, 노랑 등 다양한 색깔의 빛으로 바뀌었는데, 그 위에 다량의 밀가루를 뿌리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발자국을 찍으면 그 자체로 알록달록 작품이 되었다. 산처럼 쌓인 밀가루에 눕고 여러 가지 도구로 케이크이나 머핀 등을 만든 것은 아이가 가장 신나게 몰입했던 활동이었다.
나는 체험전의 일부분을 응용하기로 했다. 큰 비닐을 깔고 밀가루가 잘 보일 수 있도록 검은 비닐을 한번 더 깔았다. 미술 붓은 물론, 주방에서 쓰는 체, 그릇 등도 죄다 꺼냈다. 아이는 보자마자 신나서 방방 뛰더니 금세 밀가루 놀이에 집중했다.
한 차례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 검은 종이와 풀을 주고 풀로 그림을 그린 후 밀가루를 뿌려보게 했다. 아기 인형을 데려와 놀이에 동참시키니 아이는 밀가루 목욕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물을 부어 밀가루 반죽을 해 아이와 함께 다양한 요리를 만들었다. 이날 오전 시간 내내 밀가루 놀이에 전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긴 하루 중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모래놀이는 개인적으로 치우기 난이도 하라고 생각해 부담 없이 해주는 놀이 중 하나다. 놀이매트나 비닐만 깔아주면 그 안에서 아이는 모래를 조몰락조몰락 만지고 장난감 틀에 꾹꾹 넣고 만들기에 열중한다.
부쩍 역할놀이, 소꿉놀이를 즐겨하는 3,4세 아이에게 모래놀이가 제격인 듯싶다. 아이는 자신의 동물친구들을 모두 초대해 쪼르륵 앉혀놓고 모래로 다양한 '맘마'를 만들거나, 때로 요릿집 사장님이 되어 인형 손님들에게 요리를 만들어주기도 하며 자신만의 놀이 세계에 흠뻑 빠져들기 때문이다.
집에 모래가 없거나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는 어린 개월 수의 아이라면 설탕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아이에게 설탕을 내어주십시오) 모래를 집어던지거나 흩뿌리는 걸 좋아할 수도 있으므로 놀이 전에 아이에게 미리 놀이 규칙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좋다. 약속을 깰 확률이 매우 높지만 말이다.
전단지, 플레이도우, 블록, 인형들과의 소꿉놀이...
엄마들 사이에서는 개학이 한 주 더 연장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9일부터는 기관에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낮잠 안 자는 아이와 맞이하는 월요일은 조금 더 비장하다. 어젯밤에는 남은 수정토를 불려놨다. 천사채 놀이도 한번 더 해줘야 하나 고민 중이다. (어서 와~ 천사채 놀이는 처음이지?) 그 외에도 전단지, 플레이도우, 블록 등등 아이와 재밌게 놀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또 다른 놀잇감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위기는 또다른 기회가 되기도 하듯이, 코로나 사태를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돈독한 사랑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현 시국의 육아에 딱 맞는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