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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Jan 14. 2022

임용 2차 시험을 준비하며

지도안, 실연 연습과 면접의 압박



 붙었다. 그것도 5수만에.


 인문계 여고 1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으므로 생기부 작성과 겨울방학 방과후 보충수업 준비로 정신 없던 12월의 마지막 금요일, 1차 합격자 명단에서 내 수험번호를 발견했다.


 이 당시 임용 응시 유형에는 공사립 동시지원이 없었다. 공립이거나 사립, 오로지 둘 중 한군데에만 지원할 수 있었다. 사립은 지원자가 적고 1차 합격자 배수가 5배수였으므로 응시자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인원이 1차에 합격한 것이었지만 다섯 번의 시험만에 1차 합격을 따낸 것은 감회가 남달랐다.


 하지만 1차를 통과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있다. 1차 합격의 기쁨은 아주 잠깐일 뿐이며 곧 어마무시한 심리적 압박감과 공부량을 자랑하는 2차 시험이 진짜 시작이라고. 임용 공부에 투자한 시간은 매우 부족했었기에 1차 합격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보다도, 죽어라 공부했던 올인 시절보다 월등히 높게 나온 1차 시험 성적은 나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1차 시험 합산 성적은 내가 지원한 사립 재단의 국어 응시자 최저 합격선보다 약 13점 가량 높았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11월 임용시험 후 2차 시험 준비와는 아예 담을 쌓고 오로지 학교일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수업실연 스터디를 꾸려 2차 시험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자주 찾는 인터넷 임용 카페에 스터디 구인글을 올렸다. 같은 지역에 사는 국어 과목 1차 시험 합격자여야만 했다. '1차 시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미리 스터디를 구해 2차 시험을 준비할걸.'이라는 후회도 들었다. 이미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선생님들이 스터디 그룹을 조직하여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을 업로드하고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혼자서라도 지도안 작성, 수업실연, 면접을 준비해야 하나 스터디 조직을 포기하려는 찰나, 한밤이 다 되어갈 무렵 기적적으로 스터디를 함께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댓글이 달렸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무한한 수업 실연과 면접의 굴레가 도사리는 2차 시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 지도안 작성문제를 만들고, 정해진 시간 내 지도안을 작성하여 20분 동안 수업 실연을 실시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한달도 채 되지 않았으므로 마음이 급했다. 2012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펼쳐놓고 어떤 학년의 어느 성취기준을 대상으로 수업 실연을 연습할지 서둘러 정했다.


 지도안 작성과 수업 실연은 주로 중학교 1-3학년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실시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고등학교 1, 2학년 교육과정도 2차 시험 문제로 출제되는 것이 최근 트렌드였다. (실제로 추론적 독해, 비판적 독해가 2차 시험 문제로 출제된 해, 많은 수험생들이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합격이 간절했으므로 어느 하나 소홀히할 수 없었다. 2012 개정,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성취기준과 교과서, 학습활동을 모두 분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으므로 2012 개정 교육과정에 나온 중학교 1-3학년 국어, 고등학교 1, 2학년 국어 과목의 성취기준에 해당하는 교과서만 분석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인 점은 학교 현장에 재직 중이었으므로 교과서를 구하기가 비교적 쉬웠다는 것이다.


 스터디도 꾸렸겠다, 방향도 잡았겠다, 교과서 등 자료도 모두 갖추었겠다, 이제 남은 것은 본격적인 지도안 작성 및 수업 실연에 착수하는 것이었다.


 2차 시험 준비 과정에서 봉착한 난관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 부족이었다. 2차 시험은 방대한 공부 분량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 1차 시험을 통과한 수험생들은 앞뒤 재지 않고 모든 시간과 체력을 걸고 2차 시험 준비에만 매진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전 내내 겨울방학 보충 수업에 매달려야 했으며, 시시각각 조여오는 생기부 점검 일정은 또 어떤가. 이중고, 삼중고에 또 다시 체력이 부치는 것을 느꼈으며 몰아치는 압박감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도로 치솟았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써야했다. 보충 수업 준비는 무조건 전날 새벽에 끝냈다. 보충 수업이 끝나고 오후 시간이 되면 바로 독서실, 스터디 카페로 튀어가 지도안 문제를 만들고 수업 실연 대본을 작성했다. 생기부는 보충 수업 직전 아침, 학교 내 자리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조금씩 완성해나갔다. 생기부 점검날이 닥치면 당일이 되어서야 밤을 새워 남은 분량을 모두 작성하기도 했다.


 강의실을 구해 하루에 성취기준 4개를 분석하고 교과서의 4개 단원 분량의 수업을 실시했다. 내가 2개의 단원을 수업하면 스터디 파트너 선생님께서 다른 2개의 단원을 수업하시고 서로 수업 결과를 피드백하며 효과적인 학습활동, 수업진행 방향을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수업과 스터디를 병행하는 일정은 하루에 12시간을 쉬지 않고 수업하는 살인적인 일과나 마찬가지였지만 '어떻게 주어진 기회인데'라고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해 스스로를 몰아 붙였다. 서로 수업실연 동영상을 촬영해주고, 동영상을 같이 시청하며 잘한 점, 좀 더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주고 받았다.

 

 면접 문제는 노량진에서 임용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옛날 임용 면접 대비 문제집을 활용했다. 학교 현장 경험이 전무했을 때는 임용 면접 문제에 대한 답변을 추상적으로만 만드는 한계가 있었다면, 학교 일을 2년 정도 겪은 후 준비하는 임용 면접은 꽤 수월하게 느껴졌다. 임용 면접은 정답이 없고 지원자 본인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문제가 많으므로 학교에서 겪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면접 답변을 차례로 완성해나갔다.

 

 2차 시험을 준비하며 수험생이 갖춰야 할 요소 1순위는 바로 '체력'이다. 1차 시험은 혼자 책만 파고들어도 되지만 2차 수업 실연을 위해서는 남들 앞에 나서서 직접 말을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도 호응 없는, 차갑디 차가운 면접관 앞에서. 면접 또한 말의 영역이다.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체력과 정신력 소모가 엄청나다. 특히나 고지가 눈앞에 있다는 생각에 2차 시험은 1차보다 몇 배는 더 긴장된다.




 드디어 2차 시험 당일. 2차 시험은 이틀 간 이루어진다. 첫째 날은 지도안 작성과 수업 실연이 실시되며 두번째 날은 면접 시험이 진행된다.


 말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고 대기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니 물과 음식을 준비하여 시험장에 들어섰다. 내 수험번호가 붙어있는 낯선 의자에 앉아 한달 가량 준비했던 2차 시험 준비 자료를 눈으로 훑었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지도안 작성 문제는 고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의 '주제 통합적 독서' 단원에서 출체되었다. 중학교 교육과정에 치중하느라 막판에 급하게 훑어보기만 했던 부분이 문제로 출제된 것이다. 잠깐 아찔했지만 기억 저편에 어디선가 스쳐지나가듯 보았던 교과서, 지도서의 내용을 애써 끄집어 내어 지도안 문제지의 빈칸을 차례로 작성해 나갔다.


 복도는 너무나 추웠지만 시험장 안은 약간 서늘했다. 분명 난방기기가 작동되고 있었을 테지만 매섭게 노려보는 면접관분들의 아우라 덕에 교실 온도가 낮아진 것이 분명하다. 적막 속 타이머 버튼이 눌리고 뻔뻔하게 수업을 펼쳐나갔다. 목소리는 크게 냈지만 사실 실연 내용에 자신감이 없었다. 어떻게 20분 동안 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 쉰 목소리로 내뱉은 '이상입니다.'를 끝으로 첫 수업 실연이 끝났다.


 이제 마지막 관문, 면접이 남았다. 수업 실연 장소는 집과 먼 타지였고,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으며 책, 정장구두, 물, 음식 등 바리바리 싸갔던 짐도 너무 많은 탓에 거의 반 녹초, 반 수면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아직 2차 시험이 끝난 것이 아닌데, 눈은 글자에 초점 맞추기를 거부했다. 제대로 면접 답변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 비몽사몽의 상태로 면접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면접 시험 장소는 다행히 집에서 10분 거리의 고등학교였다. 면접은 사립 재단에서 자체 출제하는 형태였으므로 어떤 문제가 나올지 미지수였다. 공립 임용 시험의 면접 기출 문제만 연습해왔으므로 운이 나쁘다면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면접장을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뒷 번호였던 수업 실연과 달리 면접 시험은 지원자 중 세번째로 좀 더 빨리 응시하게 되었다. 수험번호가 불리면 구상실에서 10분간 면접 문제를 살펴본 후 면접실에 들어가 20분간 답변해야 한다. 구상실에서 면접 문제를 맞닥뜨리자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고 설렘과 기대감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다 면접을 연습할 때 수없이 반복했던 문제였다. 자신감을 갖고 면접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답변할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며 말의 내용에 확신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하는 내내 스스로가 신기할 정도로 말이 유창하게 나왔다. 면접관분들의 표정에 미소가 번지는 것이 느껴졌으며 면접 분위기는 그동안 겪었던 어떤 면접실보다도 화기애애했다. 완벽한 답안은 아니었지만 즉각적으로 만들어낸 것 치고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했다. 다행히 당시 면접 문제와 답변을 기록해 놓은 것이 있다. 아래와 같다.  




1. 교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사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설명해보세요.


답변 : 교직을 선택한 이유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수업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학생과 함께 성장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낍니다. 학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에 자신이 있으며 주어진 행정업무 또한 즐겁게, 완벽하게 수행할 자신이 있습니다.

 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업의 전문성을 신장시켜야 합니다. 수업 전문성 신장 방안에는 자기 장학, 동료장학 등이 있습니다. 또한 교사는 학생, 학부모와 자주 상담하고 학생의 학교 생활에 대한 지속적인 피드백을 학부모와 학생에게 제공하여 교사와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2. 학생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교수 학습 방법을 다섯 가지 이야기해보세요.


답변 : 1) 토의 토론법입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신장시키고 협업능력과 배려, 존중 능력을 함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2) 문제중심학습입니다. 비구조적이며 복잡하고 실제적인 과제를 교사가 학생들에게 제시하여 학생들이 협동학습 자율학습을 통해 문제 해결하게 하는 학습 방법입니다.

 3) 프로젝트법입니다. 실제적 과제를 학생이 스스로 선정하게 하여 학생 스스로 학습의 전 과정을 통제하여 실행하고 결과물 발표하게 하는 학습 방법입니다.

 4) 웹기반협동학습입니다. 인터넷 매체를 활용하여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협동학습을 실시하여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학습 방법입니다.

 5) 마지막으로, 자율적 협동학습입니다. 반 전체의 협동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학습법이며 큰 주제를 미니 과제로 나누어 조별로 분담하여 해결하게 함으로써 반 전체의 목표 달성 및 성취를 가능하게 합니다.



3. 4차 산업혁명사회를 맞이하여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제시해 보세요.


답변 : 미래에 필요한 역량은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의사소통능력입니다. 이러한 역량을 기르기 위해 수업시간에 수시로 인성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첫째, 자기주도적 학습을 실시하기 위한 전략을 강의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학습 플래너를 스스로 작성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플래너 내용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상담합니다.

 둘째,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도전적 과제를 제공하여 학생이 스스로 해결하게 함으로써 유능감을 느끼게 합니다. 자기 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도전적 과제를 해결할 경우 유능감이 증진됩니다.

 셋째, 의사소통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협동학습을 실시합니다. 의사소통능력은 모둠원과 소통함으로써 함양될 수 있습니다.


4. 면접관을 학급 학생이라고 가정하고, 반에서 따돌림 당하는 아이 있다고 할 때 반 전체를 대상으로 1분간 인성교육을 실연해보세요.


답변 : 여러분, 학교는 공동체입니다. 이기주의, 개인주의를 지니고 있으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나와 다르다고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대에는 역지 사지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누군가가 여러분과 다르다고 차별한다면 기분이 당연히 나쁘겠죠?

 오늘부터 선생님과 차례대로 상담을 실시합시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또한 반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협동학습이 무엇일지 아이디어를 내주세요. 같이 고민하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봅시다. 같이 요리하고, 등산하기 등의 다양한 교사-학생 동행 프로그램으로 여러분과 선생님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하여 즐거운 학교생활을 만들어 봅시다.




 지도안 작성과 수업 실연에서 점수가 꽤 많이 깎였다. 하지만, 면접에서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1차 시험 성적과 면접 성적 덕분에 처음으로 응시한 2차 시험은 다행히 마지막 시험으로 남게 되었다.


 2차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회의였다. 1차 시험은 매년 꾸준히 대비해왔었지만 2차 시험 준비는 한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연하고 대책없지만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라는 심지를 단단히 굳히자 나를 둘러싸던 회의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누구에게나 지나오지 않은 길은 있다. 남들이 많이 걸어간 길이라도 내가 처음 걷는 길이라면 그 길은 초행길인 것이다. 하지만 길이 있으면 방법이 있다. 두려움을 떨치고 내딛는 용기를 낸다면 기회와 방법은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온다.


 의심과 불안을 걷어내면 내가 해야할 일이 선명하게 보인다. 해야할 일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궤적을 정성껏 그려라.
모든 촛불이 꺼졌을 때
한 땀, 한 땀이 빛으로 남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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