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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Jun 09. 2021

휴식은 잠시 멈추라고 있는 겁니다

성장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스스로 잘 쉬었다고 만족하는 기준은?


바쁜 업무가 끝남과 동시에 5일간의 장기 휴가를 냈다. 큰 프로젝트가 끝나니 허무함과 피로에 찌든 몸뚱이만 남았고 주변에서는 물었다. “그동안 애썼어요. 휴가는 어디로 갈 거예요? 다 정했어요? 뭐 할 거예요?". 괜스레 휴가 기간에는 대단한 곳을 가야지만 그들과 나 자신을 만족시켜줄 것만 같았다. 여행을 가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5월은 가정의 달이라던데. 어린이날에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업무를 했다. 그날 인스타그램에 여행사진을 올린 지인들의 사진이 잊혀지지 않아 나의 휴가도 여행으로 채우자고 다짐했다. 장소 탐색을 시작한 지 3시간이 흘렀지만 수많은 여행지들 중 나를 반기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것만 같았다. 문득 그곳을 간다 해도 과연 좋은 에너지만 받고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여행을 가려면 숙박, 식사, 교통 등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무턱대고 힐링여행을 떠났다가 되려 병을 얻어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집에서 쉬어도 휴가를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지금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어 숙면을 취해야 했다. 결국 모든 온라인 페이지 창들을 하나 둘 닫아버렸고 컴퓨터의 전원도 꺼버렸다. 몸은 계속적으로 SOS를 외쳐왔는데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완전한 OFF 상태를 위해 여행을 포기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휴가 날짜는 성큼 다가왔다. 미리 예약했던 호캉스 1박 외에는 전혀 계획이 없었다. 그저 방 침대의 이불에 파고들어 유튜브를 보는 것이 가장 큰 힐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 지워지지 않는 특유의 성장에 대한 강박이 자리 잡았다. 전시회라도 가서 미적인 영감을 얻어야만 평일의 휴가를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발 끝 언저리에 어두운 검은 그림자가 발목을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나를 조여 오는 '성장'이라는 강박의 그림자는 너무나 버거웠다


도저히 강박을 벗어날 수 없어 ‘대체 휴식은 뭔데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네이버 창을 열어 휴식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휴식[休息] :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

하던 일을 멈춘다.

하던 일을 멈춘다.

하던 일을 멈춘다.


순간 띵하고 머리가 울렸다. 글을 읽음과 동시에 속이 후련했고 끝까지 엉겨 붙어있던 어두운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래. 내가 매번 성장할 필요는 없어. 잠시 멈춘다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걸. 그리고 쉼이 있어야 전진도 있는 거다. 미적 영감을 얻기 위해 전시나 아름다운 곳을 일부러 꾸며내서 가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를 속박했던 '성장'이라는 그림자야. 잠시 안녕!


억지로 행동을 하는 대신 마침 휴가를 내셨던 아빠와 집 근처에서 계획에 없던 골프를 치게 되었다. 근처 예쁜 음식점과 카페도 가서 맛있는 점심과 디저트를 먹으며 짧지만 행복한 데이트를 즐겼다. 오후부터는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박혀 밤늦게까지 나오지 않았다.


모든 부담감과 계획을 던져놓고 꾸밈없는 일상을 보내며 쉰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할 줄이야. 계획을 세우면 전부 지켜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은 잠시 휴가기간 동안 반납했다. 강박이라는 견고하고 단단한 모래성을 다이너마이트로 시원히 부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강박을 덜어내니 깃털과 같이 마음이 가벼웠고, 오히려 재충전을 통해 다음 성장에 대한 기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위의 타이틀인 '당신이 스스로 잘 쉬었다고 만족하는 기준은?'의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만족스러운 휴가란, 모든 것을 덜어내고 마음 편히 취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깃털 같은 시간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무조건 앞만 보기보다 잠시 그 욕심을 덜어내고 주변의 상황과 공기를 느끼는 것이 어떨까? 아주 잠시 멈춰보는 것이다. 분명 보통의 일상이지만 가장 특별했던 휴가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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