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트로보 Aug 13. 2019

큿흣, 명상의 작용과 반작용

관찰자의 입장에서 명상 시간을 보내는 법

매번 단체명상을 할 때면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챈팅을 들어야 한다. 챈팅(chanting)이란 불교 승려들이 불교경전에 약간의 곡조를 붙여 노래처럼 읊조리는 것을 말한다. 한국 절에 가면 스님들이 “마하반야 바라밀다…” 이런 식으로 염불을 외는 걸 들을 수 있는데 그런 것이 바로 챈팅이다. 문제는 매시간 명상을 시작할 때와 끝낼 때 각각 5분씩 꼬박 들어야 하는 이 낯선 노래의 내용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70명 가운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거다. 이 역시 빨리(Pali)어(語)이기 때문이다.


경전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가 내용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차원에서 챈팅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처음 명상수련을 배워보러 온 알못들을 앞에 두고 아무도 못 알아듣는데 매 시간마다 앞뒤로 꼬박 5분씩 (요즘 웬만한 가요도 한 곡에 4분을 넘기지 않는데!!!!) 완창을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엔카라는 법사가 자신이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모르는 노래를 억지로 계속 듣고 있자니 자꾸만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챈팅의 노랫말이 아마도 무상함이 어쩌고 욕망이 어쩌고 등등 명상수련이나 해탈에 대한 내용일거라고 추측하지만 실제로는 “싱싱한 고등어가 왔어요~ 한 마리 오천원~” 혹은 “못쓰는 컴퓨터 삽니다~ 가전제품 처분합니다~” “계란이 왔어요~” 처럼 말도 안되는 내용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아 나의 불손함이여…) 하는 뻘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노래가 ‘모르는 인도민요’처럼 느껴져서 “지금 듣고 계신 음악은 인도 다르질링 지방의 차밭에서 농부들이 찻잎을 수확을 축하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같은 멘트를 떠올리기도 했다가 이를 또 변주해서 “지금 듣고 계신 음악은 남인도 방갈로르에서 외주 프로젝트의 코딩을 마친 IT 노동자들이 이를 기뻐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라고 하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싸다구 맞겠지? 따위의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아무튼 그런 바보 같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히죽대고 있는데 뒤에서 “큿흣”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나 말고도 이걸 웃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봐!” 하며 내적 친밀감을 느끼려던 찰나 “큿흣” 하던 소리는 “흑흑흐흑흑” 하는 소리로 이어졌고 나는 비로소 뒷자리에 앉은 수련생분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명상수련 도중 특별히 개인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거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불러오는 등의 과정이 없더라도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힘들었던 혹은 나를 현재 괴롭히고 있는 일들이 떠오르는 건 퍽 자연스러운 일이다 싶어 사실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 분 말고도 우는 사람이 한 두 명 더 있기도 했고.


진짜 깜짝 놀란 일은 코스의 마지막날 벌어졌다. 3일간의 아나빠나 수련, 6일간의 위빳사나 수련 후 마지막날인 Day10에는 ‘메따바와나’라는 이름의 새로운 명상법을 가르쳐줬다. 이름만 들어서는 뭔가 그럴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 위빳사나 명상 수련법에 납득하지 못해 불만스러운 상태였지만 새로운 명상법은 다를지도,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오전 단체명상에 참석했다.


그러나 만인에게 만물에 사랑과 자비를 전한다는 메따 바와나 명상의 실체는 너무나도 허무한 것이었다. 평소처럼 정좌한 채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오디오를 통해 고엔카 법사가 “May All Being Be Happy” 이런 식으로 사랑과 자비, 평화를 기원하는 말을 약 1분간 그러니까 “메에에에에이이이이이이이 오오오오오오올ㄹㄹㄹㄹㄹㄹ 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해애애애애앱ㅂㅂㅂㅂ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이렇게 태어나서 들어본 적 없이 느린 속도로 말하는 걸 듣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헐… 이게 뭐지???? 허탈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맨 앞 줄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9일차부터는 너무 지루한 나머지 단체명상 시간에 아예 눈을 뜨고 다른 수련생들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눈을 감고 있는 와중에 혼자 눈 뜨고 두리번거리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무튼 맨 앞줄에 앉아있던 파란 티셔츠를 입은 수련생분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아이고… 또 우는 분이 계시네…” 하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어깨와 등만 들썩이는 것이 아니었다. 끝부터 허리까지 상반신 전체, 그리고 온 팔을 마치 간질 발작을 하는 사람처럼 퍼들퍼들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헐…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당혹감이 밀려왔다.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리 봐도 우는 건 아니었다.


무서운 것은 메따 바와나 명상 시간 내내 그러니까 거의 40분 이상 계속 몸을 떨고 있었다는 거다. 당혹과 혼돈 속에서 단체명상 시간이 끝나고, 평소 같으면 누구보다 먼저 명상홀을 나서던 나였지만 덮고 있던 모포를 천천히 정리하며 그 분이 나오는 걸 기다렸다. 명상 시간이 끝나자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당연하게도 눈물자국도 없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걸어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뭐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또 다른 당혹감이 밀려왔다;; 어찌 됐건 큰 이상은 없어 보여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찜찜하게도 10일째인 그날, 하룻밤만 자면 코스를 무사히(?) 수료하게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시간부터 그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분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위빳사나 수련이 이런 거라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